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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2008년 9월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 앞서 노고단 정상에서 제를 올린 뒤 물을 나눠 마시고 있는 수경 스님(오른쪽)과 문규현 신부.
 2008년 9월 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에서 열린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 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출발행사에 앞서 노고단 정상에서 제를 올린 뒤 물을 나눠 마시고 있는 수경 스님(오른쪽)과 문규현 신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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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나 괴로워 죽겄어. 아주 힘들어…."

경기도 여주 신륵사에 '여강선원'을 개원한 수경스님이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와 아픈 심경을 토로합니다. 그 아름다운 여강이 눈앞에서 속절없이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하루하루 지켜보고 있자니, 뭇생명들의 아수라장을 보는 듯 탄식과 고통이 절로 밀려드는 것입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멀리 있는 제 가슴도 이렇듯 매순간 저미는데.

저는 지난해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위해 단식기도를 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중에 허리를 다쳐 큰 수술을 했습니다. 훌륭한 의사 선생님들 손길 덕분에 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일 정도로 경과가 좋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해결 안 되는 깊숙한 통증이 종종 밀려와 힘든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의사 선생님은 통증을 느낄 시기는 지났다고 의아해합니다. 그래도 제 육신은 엄살을 부리는 건지, 여전히 욱신욱신 아프다고 말합니다. 오래 앉아 있는 건 당연히 어렵습니다. 물론 나이 탓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멀쩡한 육체에 남긴 칼질의 흔적은 아무리 복원을 잘해도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내상과 장애를 남기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 4대강 사업의 미래가, 이 나라 운명이 제 몸뚱이처럼 그렇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복은 강물처럼 넘쳐흘러..."(집회 39:22) 
"강물처럼 지식이 흘러넘쳐..."(집회 47:14) 
"평화가 강물처럼..."(이사야 48:18) 
"정의를 강물처럼..."(아모스 5:24) 

고대로부터 굽이굽이 흐르는 강은 이렇게 풍요와 지복의 상징입니다. 생명력과 충만함의 근원입니다. 강과 인간, 강과 생명, 강과 역사를 빼면 성경도 문학도 문명도 다 보잘것없어집니다. 강은 흘러야 강입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아주 평범한 진리와 똑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 나라에선 그른 듯합니다. 큰 강줄기마다 거대한 댐이나 다를 바 없는 '보'를 설치한답니다. 그러니 이 나라에서 앞으로는 '복도, 지식도, 평화도, 정의도 강물처럼 흘러넘치라'는 아름다운 표현은 쓰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우리 후손들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강을) 전설 속 속담이나 판타지물로나 듣고 보게 되지 않을까, 안타깝습니다. 동요가사에도 나오는 얼마 남지 않은 금모래 은모래조차 다 사라지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강이 썩는 나라에 복이 들 리 없습니다

여강선원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경 스님.
 여강선원을 찾아온 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수경 스님.
ⓒ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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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으로 이제 강물은 무슨 장애물 넘기 하듯이 흐르는 길목마다 막아선 보 앞에서 멈추게 될 것입니다. 힘겹게 넘어서고 천천히 흐르며, 고이고 썩고 할 것입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지금 저 생명의 강들은 만신창이로 죽어가고 있고, 분명 죽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나라의 큰 강들에 함부로 손을 대고, 그 흐름을 제멋대로 바꾸는 나라에 복이 들 리 없습니다. 지식도 지혜도 흥할 리 없고, 평화와 정의의 품격도 말하기 힘들 것입니다.

저들은 국민의 자산, 후손들의 미래를 마치 맘대로 처분해도 되는 개인재산처럼 사유화해버렸습니다. 행정부나 공권력은 이를 방어하고 호위하는 데 동원되는 사병처럼 보일 뿐입니다. '4대강 사업을 두고서 저들은 다음엔 또 무슨 말로 자신들을 포장하고 둘러댈 것인가?', 사뭇 이런 궁금증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여전히 4대강 사업이 사기질과 독선적이고 반민주적인 태도로 가득한, 국민과 자연에 대한 패악질이라고밖에는 달리 생각이 안 듭니다. 저들은 이를 감추고 정당화하느라 새로운 논리라고 자꾸 들고 나오는데, 매번 초라해서 민망합니다. 기초논리부터 이미 참혹한 부실공사 덩어리입니다. 그래서 도무지 실제 공사를 용납하기 힘든 것입니다.   

포클레인만 가득한 현장에서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도 사라지고 녹색성장이라는 것도 교언영색일 뿐 공감을 얻지 못하니, 이제는 "공사 끝나면 다 좋아할 것"이랍니다. 그러니 입 다물고 얌전하게 보기나 하고 오해나 풀랍니다. 천안함 문제로 남북 전쟁기운을 한껏 고조시켜놓곤 이젠 4대강 현장에 군인까지 투입한 답니다. 이토록 한가하고 평화로운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천안함이 북의 기습공격에 당했다는 정부와 국방부 말이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이 말이 거짓이거나, 이 긴장된 와중에 군인을 4대강 현장에 투입해 숙영까지 시켜가며 공사를 하겠다든가 공군 사격장에 준설토를 쌓느라 훈련시간까지 줄였다는 그 행태가 정신줄을 아예 놔버린 미친 짓일 겁니다. 

사랑과 용서의 상징이신 예수님도 사실 꽤나 독설가이셨습니다. 종종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발하시는 모습이 성경에 적혀 있습니다. 십자가 처형을 판결 받는 그 순간에도 담담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도 자신을 죽이는 세상과 인간을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던 진정 선하고 온유한 양반이셨습니다. 그런 예수님도 특히나 불의한 자들과 위선자들에겐,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자들에겐, 성전을 비즈니스화하던 자들에겐 참을 바 없이 단호하셨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너희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지옥형 판결을 어떻게 피하려느냐?" (마태 23:27,33)

4대강 사업도 저리 될 것입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생명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거대한 썩은 저수지들이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한 '지옥형 판결'에 대한 감당과 뒤치다꺼리는 결코 사업을 추진한 자들이 책임지지 않을 것입니다. 위선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은 결국 또다시 국민들과 후손들 몫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소속 신부들이 4월 29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침묵 기도를 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소속 신부들이 4월 29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 계단에서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침묵 기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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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빛으로 이겨내야 할 어둠, 우리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나 많은 시대에 우리나라가 지금 이런 일로 이렇게까지 몸살을 앓게 된 데에는 당장의 편의와 물질적 안락만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선택한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양심과 신념을 존중해야 하는 종교인으로서는,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책임 있는 이들이 마음속 깊이 깨달아 잘못 들어선 길을 버리고 돌아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천주교 전주교구 교구장 이병호 주교님의 강론 중 일부입니다. 그분은 차분하게, 그러나 구절구절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가득 담긴 음성으로 강론을 이어가셨습니다. 천주교 전주교구 사제단은 지난 4월 28일 중앙 주교좌성당에서 이 주교님을 비롯하여 교구 사제단과 신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생명의 강을 살리자는 주제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주교님은 치열한 쟁점이 되고 있는 사회현안에 대해 이토록 분명하게 사제나 신자들이 행해야 할 바를 밝히셨습니다. 주교라는 위치에서 쉽지 않으셨을 텐데도 말입니다.

천생 학자이신 이병호 주교님의 생태주의와 관련된 강론을 들으며 저는 이 시대 생명의 소리, 양심의 호소에 더 깊이 침잠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강들, 생명들의 아우성에 가슴은 아프지만, 한편 기쁨도 희망도 커집니다.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많은 신부들이 신도들과 함께 전국 곳곳에서 생명의 강을 살려야 한다고 더불어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많은 이들의 굴하지 않는 기도와 호소는 분명 '천국형 판결'을 가져올 것입니다.

4대강 사업을 폭력적으로 강행하고 있는 저이들만 위선자고 독사의 자식들일 순 없습니다. 외면하고 침묵함으로써 불의의 손을 들어주고 힘을 실어주는 것도 예수님의 불호령을 듣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정신과 생활을 소박함과 상호존중, 의로움과 공존이라는 가치 속에서 진정 '잘살게'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병호 주교님의 강론 일부를 더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지구에 있는 수백, 수천만의 생물들은 하나의 줄로 이어져 있어서, 그 고리 가운데 어떤 것이 끊어지면 나머지도 큰 위협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탐욕스런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원시림을 파괴하고 숲을 없애고 바다를 메우고 산하를 파헤칩니다. 그래서 눈앞의 이익에 눈이 먼 인간들은 코앞의 편의를 위해서 자신이 타고 있는 배에서 널빤지를 떼어내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형국을 연출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인류는 제가 더럽힌 공기, 물, 파괴한 생태계 때문에 모두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태는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합니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미 때가 늦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정신이 제대로 든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인류가 함께 타고 있는 배를 구하는 일에 모두 마음을 써야 한다며 이 일에 뛰어들어 외치고 있습니다. 서양 여러 나라들이 장비가 덜 발달했던 옛날에 만들어져서 규모가 별로 크지도 않은 댐을 헐고 보를 철거해서 자연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등, 그렇게나 많은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요 종교계가 한목소리로 4대강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그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일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그 폐해가 자연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이 훼손하여 그 영향이 앞으로 수백·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우리 세대 뿐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서 살게 될 후손 대대로 그로 인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렵거나 무슨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게 되어 있고, 흐르기 위해서는 막힘이 없고 바닥도 제대로 조성되어야 하는데, 엄청난 규모의 둑을 막고, 바닥을 파헤치면 그 자연스런 흐름이 방해를 받고 습지와 모래가 사라져 물이 정화되지 못하고 생명의 고리에서 한 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될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으며,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또 믿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의 빛이 쳐 이겨야 할 어둠과 허위의 한 자락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문규현은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성당 신부입니다.



태그:#4대강, #문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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