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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나를 비교하면 행복에 해악 끼쳐

최근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조사 결과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행복도가 최하위라고 한다. 조사 내용 중 특히 주목할 것은 '주관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라고 답한 학생이 각각 26.5%과 18.3%를 기록했다.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외로움을 느낀다'는 대답 또한 16.7%로 일본(29.8%)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을 불행으로 내모는 것은 지나친 성취지향적인 사교육 열풍과 그에 따른 인문학적 교육 결여 등 다양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과도한 성취 지향은 부모와 학교의 삐뚤어진 교육으로 이어져 최근에는 고등학교에 체육 과목 시간까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의 건강 상태가 나쁜 것이 아이들의 주관적 느낌만도 아닐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걱정도 제치고 '명문대 합격'에만 절박한 부모와 교사들에게 인문학적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일지 모른다.

아이들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 결여되어 빈 공간을 온갖 미디어는 욕망을 자극하면서 물질주의 신화로 채워넣는다. 미디어의 자극은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실시간으로 광고와 드라마, 온갖 오락프로그램들을 무의식중에 소비하면서 알 수 없는 대상과 비교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삶의 행복에 해악을 끼치는지는 많은 학자들이 수많은 연구결과를 가지고 강조하고 있는 바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법>(how to make yourlself miserabele)이란 책을 쓴 댄 그린버그는 '만약 자신의 삶을 정말로 불행하게 만들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하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끝도 없이 타인과 경제적 비교를 하고, 입시만을 전제로 한 숨막히는 교육시장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탈출구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과도한 경쟁논리에 저항하고 싶어도 미디어를 통한 불행한 비교 앞에서 두려움을 갖지 않겠는가.

알고보면 부모들의 과도한 사교육 열풍도 아이들이 돈을 '안정적'으로 '잘'버는 성인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부동산 열풍과 막연한 부자열풍의 회오리 속에서 미래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아이에게만은 물려주지 않고 싶은 부모 마음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나약한 마음을 지닌 부모조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미디어와 물신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수많은 유혹 앞에서 흔들린다.

신용카드를 긁으면 광고 속 여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신용카드는 당장 지갑속이 텅 비어 있어도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누르는 불편 따위에 구속당할 필요 없는 기가 막히게 편리한 도구다. 사진은 한 신용카드 회사 사이트
 신용카드는 당장 지갑속이 텅 비어 있어도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누르는 불편 따위에 구속당할 필요 없는 기가 막히게 편리한 도구다. 사진은 한 신용카드 회사 사이트

우리는 아무리 소비해 봐도 광고 속 여주인공처럼 냉장고 옆의 우아한 인간 인테리어가 될 수는 없다. 박지성이 튀어나올 듯한 TV는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아봐야 좁은 집을 탓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들의 일은 여성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물건에 불만을 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반세기도 전에 미국의 소매점 연합회의 회장이 한 말이다.

우리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광고판,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들의 마케팅을 실시간 접하면서 나의 삶에 대해 비관하거나 나만 가난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갖기 충분한 현실을 살고 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너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어'라고 실시간으로 속삭이는 수많은 유혹 앞에서 불행해진다.

물론 이런 류의 유혹은 시간을 두고 냉정히 돌이켜 보면 금세 부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냉정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유혹의 손길을 덥석 잡는다는 것이다. 부모들에게는 그런 유혹을 쉽게 채울 신용카드라는 기가막힌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지갑 속이 텅 비어 있어도 '갖고 싶다'라는 욕구를 누르는 불편 따위에 구속당할 필요 없는 기가 막히게 편리한 도구 말이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쉽게 욕구를 채우면 채울수록 만족은커녕 더한 욕구불만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신용카드 한도가 늘어나는 것보다 신상품이 더 빠른 속도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결국 끝도 없는 신상품을 쏟아내며 소비를 강요하는 지금의 사회는 '이것만 가지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속삭이는 것들로 인해 불행해지는 아이러니에 빠져있다.

<행복의 경제학>의 저자 쓰지 신이치는 이런 소비사회에서 행복이란 '말의 코 끝에 당근을 늘어놓은 것처럼 언제나 손끝보다 조금 앞에 놓여있다. 손 안에 넣어버리면 이미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라며 소비사회의 아이러니를 꼬집고 있다.

절대로 행복해 지지 않을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왜곡된 삶의 공식에 갇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명문대 입학과 전문직 종사자로 '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명문대 졸업생과 전문직 종사자의 경제적 미래도 불확실할 만큼 무시무시한 세상에서 말이다.

품위 있는 결핍이 필요한 시대

정수기 대신 하루에 한번만 물을 끓이는 수고를 마음먹는 것이 불가능한 것일까. 집의 평수가 넓으면 청소기 돌리는 것이 더욱 번거롭다는 생각이 좀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하루에 몇 번 사용하지 않는 전자레인지, 비데, 식기 세척기와 오븐과 제빵기 들이 좁은 집안을 가득 메우는 필수품으로 둔갑해 가고 있다.

대형 냉장고와 대형 TV, 컴퓨터와 프린터기, 김치 냉장고까지. 가족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온갖 수납 장치들은 대형화되고 종류도 다양해진다. 조명을 받고 매장에 전시되어 있을 때는 탐나는 것이었겠으나 집에서 관리할 때는 조금만 게을러도 눌러앉는 먼지에 짜증만 늘어난다. 오래되어 낡은 품격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유행에 뒤쳐진 것이 구질구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도구 패러다임이다. 약간의 수고를 덜기 위해 도구를 소유하고 그 도구를 구매하기 위한 돈을 벌려고 뼈 빠지게 일하는 것이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아이들 미래의 경제적 풍요가 이런 모습이다. 게다가 그 도구들을 유지 관리하기 위해 답답한 공간을 감수하고 관리하는 에너지까지 낭비해야 한다. 어느 건축업자는 '모든 부자는 자신 소유물의 관리인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는 어느새 없어도 좋을 것들을 관리하고 사느라 끝도 없이 돈이 필요한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소비 중독에 시달릴 때 그들은 국민 일인당 4장의 신용카드를 가지고(4인가족이면 가구당 16장의 카드를 소유한 셈이다) 해마다 냉장고를 교체하고 일회용 접시에 냉장 냉동 반조리 식품을 일상적으로 먹었다고 한다. 우리 중산층 서민의 냉장고 속도 점점 대량으로 소비하고 유통기한 지난 쓰레기들이 들어차고 있다.

적게 소유하고 어렵게 소비하는 것, 구질구질하지 않다

우리들은 광고판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들의 마케팅을 실시간 접하면서 나의 삶에 대해 비관하거나 나만 가난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갖기 충분한 현실을 살고 있다. 사진은 한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우리들은 광고판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들의 마케팅을 실시간 접하면서 나의 삶에 대해 비관하거나 나만 가난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을 갖기 충분한 현실을 살고 있다. 사진은 한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적게 소유하고 어렵게 소비하는 것은 절대 구질구질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많이 소유하고 쉽게 소비하는 것은 우리를 끝도 없는 불행으로 이끈다. 지금 부모들의 어린 시절은 결핍했기에 행복한 기억이 많다. 우리의 기억 속에는 학용품이 부족해 연필 한자루 선물에도 신나는 기분을 느꼈던 동심이 들어 있다.

지금 아이들은 학용품이 넘쳐나 너저분한 책상을 치우라는 엄마들의 잔소리에 피곤할 뿐이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과 유혹에 이끌려 쉽게 소비하려는 욕망을 구분하는 품위있는 경제 철학이 절실하다. 지나친 풍요보다는 의도적인 결핍이 더 품위있는 경제 생활이다.
심리학의 동기 상태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동기를 실현할 때보다 동기를 실현할 것이라 예상될 때 더 행복하다고 한다. 여행가는 날과 여행가기 전날 중 어느 날이 더 행복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가는 전날의 들뜨는 시간이 더 행복했다고 답한다. 결핍은 그 자체가 불행한 것이 아니다. 다소 불편한 것일 수는 있으나 불편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 또한 아니다. 오히려 불편한 과제를 수행하고 났을 때 성취감에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 가정의 살림살이를 불편한 구조로 꾸려간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그 만큼 하나하나 정성스런 살림살이를 산다는 의미이다. 정성스러운 살림살이는 온갖 전자제품과 잡동사니들로 가득한 살림살이보다 품위있다.

물론 심리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동기 상태이론에는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다. 동기를 실현할 것이란 예상은 실현가능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기다림은 사람에게 스트레스와 욕구 좌절을 경험하게 함으로 무기력감을 줄 위험이 있다.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을 기다리는 것은 동기를 실현했을 때보다 더 한 행복감을 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표를 정해 달성해 나가는 즐거움,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의 의도적인 결핍은 아이들에게 행복을 경험하게 해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신용카드로 구질구질한 풍요를 사기보다 소비를 지연시키고 적금통장으로 품위있는 결핍을 연습하자. 



태그:#결핍, #신용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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