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상경(上京), 즉 서울 가는 것이 예전과 같지 않게 당일치기로도 쉽게 다녀 올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5월 4일)은 내가 그런 경험을 한 날이었다. 새벽같이 올라갔다가 오후에 내려오긴 했는데, 겪은 황당함은 나를 꼼짝없이 촌놈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촌놈은 달리 일컫는 말이 아니다. 못 배워서 촌놈이 아니고, 못 살아서 촌놈이 되는 것도 아니다.

 

따지고 보면 난 30년을 서울에서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왔다. 촌놈이 서울 가서 산전수전 다 겪고 거대 메트로폴리탄 서울에 적응 잘 하고 살다가 시골로 내려온 지 10년이 되었다. 충북 옥천에서 만 7년 그리고 이곳 김천에서 만 3년. 그럼에도 내 의식 속에는 아직도 '서울 사람'이라는 향수 비슷한 것이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가끔 서울 갈 일이 있을 때에도 어색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색함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를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복잡한 서울 생활 더 이상 하라고 해도 안 하겠다고 소리치면서도 은연 중 급박하게 변하는 시대 조류에서 탈루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되는 마음도 없지 않다. 오늘이 그랬다. 정말 다른 때보다 더 황당함을 맛본 하루였다. 대학원 발표 준비로 국회도서관을 찾을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해왔다. 발표를 좀 특별하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또 기왕 하는 발표인데 학술지에 등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준비하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다.

 

두 주제 발표가 한꺼번에 밀려 있는데, 하나는 '복음주의의 사회적 관심'이고 다른 하나는 '성 어그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것이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자료가 많지 않은 것이 큰 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오늘은 특별히 김천에 가끔 서는 KTX를 탔다. 오전 6시 24분 기차이니 새벽기도 끝나고 바로 출발해야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이었다. 서울역에 오전 8시 15분에 도착하니 대도시 러시아워와 맞물려 다소 걱정이 되었다.

 

서울역 전철을 타는 것에서부터 브레이크가 걸렸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지하철은 인산인해였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멈춰 서 있으니 뛰다시피 내려가는 사람들로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 저렇게 바쁘게 뛰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서울을 생각하니 겁이 났다. 지난 해까지 서울역에서 국회도서관까지 몇 가지 교통 편을 번갈아 이용하며 다녔다.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신길역까지 가서 5호선으로 환승, 여의도역에 내리면 역 앞에 국회도서관을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었다. 그것을 타면 국회도서관 바로 앞까지 비교적 수월하게 갈 수가 있었다.

 

여의도역에 내렸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지하 1층의 공간 구조가 예전과는 딴 판이었다. 새로운 통로가 보였을 뿐 아니라 출구도 여러 개 새로 생긴 것 같았다.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이용하던 엘리베이터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안내 창구에 가서 물어보았다. 국회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는 국회의사당역에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국회도서관역이 생긴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시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리니 국회의사당역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생긴 지가 일 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아마 내가 도서관에 오지 않은 때가 그 기간만큼 되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 조금 걸으니 국회도서관 현관에 닿을 수 있었다.

 

어 이것 봐라!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도서관에 입실하려면 신청서를 써서 신분증과 함께 창구에 맡겨야 했다. 그러면 열람증을 준다. 그것을 착용하고 들어가면 하루가 무척 짧게 느껴질 정도로 도서관 안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전산화가 되어 컴퓨터로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 있었다. 창구에서 접수 담당하는 여직원이 자세히 설명해 주는 데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가 창구 밖으로 나와서 자세히 순서를 따라 컴퓨터를 진행시켜준 뒤에야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전산 시스템이라는 것이 알고 나면 쉽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마치 20세기 초 한글을 모를 때 당하는 안타까움이 이것보다 더 할까? 국회도서관에서의 어려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책을 대출받으려고 했다. 그것도 완전 컴퓨터화되어 있었다. 이전에는 대출 신청 카드를 작성해서 카운터에 제출하면 그것을 일일이 서고에 보내서 찾아 보내오는 체계였다.

 

하지만 그런 절차가 다 생략되고 컴퓨터에 직접 입력해서 접수하는 형식이었다. ID도 있어야 하고 또 비밀번호를 넣어 책이름과 청구 기호를 입력하면 접수가 완료되었다. 또 책이 준비되면 휴대폰 문자로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편리하고 좋은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좀 불편하더라도 느리게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살려는 내가 받아들이기에 마음이 흔쾌히 내키지는 않았다.

 

또 곰곰이 생각해 본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고 국민은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다양한 국민의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는 발전된 자동 시스템의 운영 체계에 수작업을 더함으로써 후자를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그들이 편한 대로 그대로 두면 좋지 않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편리함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앙에 거주하는 배운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국회도서관도 중앙 중심의 사람들과 지적 편중성에 자기도 모르게 매몰될 수가 있다.

 

몇 시간을 동분서주하며 자료를 수집했다. 프린터에서 직접 출력하기도 하고 그것이 안 되는 것은 해당 자료실에 올라가서 직접 책을 찾아 복사를 했다. 책이 그런대로 찾기에 편리하도록 잘 정리되어 있었다. 국회의사당 코 밑에 전철역이 생겼기 때문에 셔틀 버스는 없어졌다고 한다. 김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서 서울역에 가야 했다. 쉽게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국회의사당역에서 9호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환승하면 서울역에 쉽게 갈 수 있다고 했다. 초행이라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을 가지고 전철에 올랐다.

 

내가 서울에 살 때 노량진역을 이용하면서 느낀 것은 계단이 많아 연로한 분들이나 장애인들에게 친근한 역은 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벌써 10년이 훌쩍 흘렀으니 많이 나아졌겠지? 특별히 9호선 안내판에 노량진역을 1호선 갈아타는 환승역으로 표기하고 있지 않는가. 환승이라고 하면 갈아타는 것을 말한다. 환승할 조건들이 나름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그야말로 환승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驛舍)가 같아야 하며, 승객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한 구조를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예를 들어 갈아타기 위해서 엘리베이터 혹은 에스컬레이터 등의 시설을 갖추어 이용객들에게 최소한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노량진역을 1호선과 9호선을 갈아타는 환승역이라고 한다면 이것보다 조금 더 떨어져 있는 역끼리도 쉽게 '환승역'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 인근 역 모두가 환승역이 될 수도 있게 된다.

 

노량진역은 환승역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9호선을 타고 출구로 나와서 한참을 걸으니 구 노량진역이 다시 나왔다. 계단도 옛적 그대로 가파르고 많았다. 입구 여나무 개의 높은 계단을 기다시피 올라 서울역 가는 전철을 타려고 하니 앞이 캄캄해져 왔다. 수십 개의 계단을 걸어 오르고 또 같은 수의 그것을 다시 내려가야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역으로 갈 마음을 접었다. 장애인인 내가 계단 오르내릴 자신이 없어 그냥 영등포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기로 했다. 김천에 일찍 도착하여 볼 일까지 생략하면서 말이다. 코레일(KORAIL)이 민영화되고 나서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노량진역과 같은 곳을 편리한 환승역으로 만드는 데 더 정성을 쏟아야 할 것 같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서울 생활 다시 하라고 해도 못할 성 싶다. 하지만 그 뒤로 솟구치는 또 다른 마음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에 도태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없지 않다. 지방의 한촌(寒村)에 사는 것이 이런 점에서 좋기도 하고 우려되기도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급변하는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사는 농촌의 삶이 좋다. 가끔 상경해서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황당함을 겪는다고 해도, 전장(戰場)에 나가는 전사의 자세를 가진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서울 생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나는  농촌에 사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태그:#상경기, #국회도서관, #노량진역, #환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