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엠블럼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엠블럼 ⓒ 대한축구협회

지난 해 11월 28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는 '2009 전국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 결승전'이 열렸다. 그 결과 김인완 감독이 이끌고 있는 광양제철고(전남 드래곤즈 U-18팀)가 풍생고(성남 천마 U-18팀)를 3-2 펠레 스코어(축구 경기에서 3 대 2의 스코어를 가리키는 용어)로 물리치고 이 대회 초대 챔피언의 영광을 누렸다.

 

이 경기는 우리의 학교 스포츠 현장에서 늘 봐왔던 그런 형식의 전국대회가 아니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을 이용하여 연중 리그제를 실시했고 그 마지막 열매를 거두는 상징적인 결승전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학교 스포츠(운동부) 역사에 굵은 획을 긋는 순간이었다.

 

이 결승전에서 혼자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광양제철고를 우승팀으로 만들어놓은 골잡이 지동원은 '포스트 이동국'을 꿈꾸며 K-리그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 현재 소속팀의 핵심 골잡이(2010 K-리그 10경기 3득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결코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유스 팀 소속으로 꾸준히 성장하여 최고의 경연장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는 일도 이같은 연중 리그제가 바라보고 있는 지점 중 하나라고 본다.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 그 길을 꼭 이렇게 가야만 할까?

 

아직까지는 이러한 주말 리그제가 축구 종목에 국한되어 있다. 하지만 학생 운동선수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등 다른 종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도 마련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육과학기술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3일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을 위한 학습권 보장제'를 2011년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확대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선진형 학교 운동부 운영시스템 구축 계획'에 포함된 것이라 한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야 할 길이기는 하다. 승부 조작, 심판 매수, 부정 선수 파문 등의 불편한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으며 지나치게 성적에만 집착해 왔던 학원 스포츠가 바닥부터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그 길을 꼭 이렇게 가야만 하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있다. 한 마디로 이들에게 또 하나의 성적 지상주의 과제를 던져준 점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부와 문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학생선수의 잦은 대회 출전에 따른 수업 결손으로 성적이 저하되어, 운동을 중도에 포기할 경우 '사회적 열등생'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초4~고3 학생 운동선수)을 대상으로 '최저 학력 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미치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체육단체 등에서 개최하는 경기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최저학업기준인증제도 등의 종합대책 마련을 제시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2007년 12월) 등을 이제서라도 받아들여 실천하려는 노력은 고맙다. 하지만 최저 학력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에 대한 제재 및 구제 방안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먼저 밀려온다.

 

마치 포환을 어깨에 짊어지고 던지는 훈련을 하는 학생 운동선수에게 그보다 조금 더 무거운 책들을 얹어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습권 보장'이 맞는 말인지, 그동안 거의 관심을 갖지 않던 내용을 포함하여 이들에게 '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맞는 말인지 따져봐야 할 필요성까지 느꼈다.

 

'학습권 보장'인가 '학습 강요'인가

 

나는 고등학교 교사다. 우리 학교에도 몇몇 운동선수들이 있다. 선수들은 대체로 아침 운동을 끝내고 1교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올라온다. 그리고 4교시가 끝나면 조용히 다시 연습하러 간다. 사실 수업에 참여한다기보다는 그냥 형식적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내려간다. 선수들은 때때로 대회 출전을 위해 사흘 정도씩 자리를 비우기 때문에 수업에 참가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 줄어든다.

 

문광부가 제시한 최저학력 기준은 전교생 평균 성적 대비 초등 50%, 중학 40%, 고등 30%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 운동 선수 중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수업 장면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 개인적인 보충학습의 기회도 만들지 않는 이들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에게 교과 성적의 잣대를 제시하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구제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차기 중간고사에서 그 기준에 이르거나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기초' 이상으로 나올 경우에 그 기준에 도달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또한, 올림픽이나 월드컵, 아시안게임 등 국제경기대회에는 그 기준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도 참가할 수 있단다. 역시 국가대표급은 여기서도 열외다.

 

이처럼 그 기준에 대한 제재나 구제 방안이 비교적 느슨한 것도 문제이지만 이것으로 '공부하는 학생선수상을 정립하고 전인적 체육 인재를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뭔가 잘못 짚고 있는 셈이다.

 

학생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 학원 생길지도

 

학습권 보장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그들에게 별로 익숙하지 않은 수업 참여를 강제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반 학생들이 보기에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도달하는 운동선수들이 많지 않을 것 같은 최저학력 기준에 도달할 것을 기대하는 이 제도는 그 근본 취지만 남기고 새 판을 짜는 것이 낫다.

 

'학습부진 예방-진단-관리시스템 구축, 맞춤형 학습지도 서비스 강화' 등의 학력 증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환경개선 및 훈련시스템 개발 지원, 운동부지도자 자질 향상 및 처우 개선' 등의 제도와 학습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뒷받침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일정 점수 이상을 받아내야 하는 학습을 강요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 운동선수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바람직한 취지의 제도를 시행하는데 '성적', 그것도 '국어, 수학, 영어 중심의 교과 성적' 이라는 기준에 매달리기만 하면 그들에게 해당 운동 종목의 기능 이외에 또 하나의 엄청난 부담을 얹어주는 것이 될 것은 뻔하다. 학생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영수 보습 학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쓴웃음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들이 교과 성적 제한 규정 때문에 또 한번 사회적 열등생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말로 그들이 부득이하게 운동을 중간에 포기한 뒤에 사회로 나가서 열등 의식을 느끼지 않게 하려면 오히려 '국어-수학-영어' 교과에 찌들어 있는 우리 사회를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는 정말로 '전인적 체육 인재'를 요구하는가? 또, 그 전인적 체육 인재는 운동 능력도 뛰어나고 국어, 수학, 영어 실력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하는가?

 

학생 운동선수들의 처진 어깨를 곧게 펴 주려면 우리 사회가 '국어-수학-영어'에만 매달리는 병리 현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학생 운동선수들 말고도 우리 대부분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지만 그들에게 운동 능력 이상의 큰 짐을 너무 한꺼번에 지우려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공부하는 학생 선수상을 바라거든 그들의 삶이 다른 사람들의 삶과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부터 함께 고민해야 하며, 그들이 해당 종목 선수 또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떠났을 때 정말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충분히 들어봐야 한다.

 

자기가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를 제대로 알지 못할 때 배움에 대한 진정한 흥미와 기쁨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자명한 일이다. 여전히 그들 앞에 '국어-수학-영어 교과 성적표'가 놓여지는 상태에서 공부하는 학생 선수상이나 전인적 체육 인재는 정말로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조금 더디더라도 체험 중심, 의사 소통 중심의 교육이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면 그 좋은 뜻을 절대로 살려내지 못할 것이다.

2010.05.07 10:19 ⓒ 2010 OhmyNews
학습권 운동부 문화체육관광부 학력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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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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