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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을 둘러보고 찾는 책을 펼쳐보고 있다.
 책방을 둘러보고 찾는 책을 펼쳐보고 있다.
ⓒ 서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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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이 지긋한 주인, 어지럽게 쌓여있는 책들, 켜켜이 먼지 쌓인 책장, 노랗게 빛바랜 책갈피, 퀴퀴한 곰팡이 냄새.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화하는 헌책방을 모르는, 쪼금 불행한 사람이다. 이제 헌책방은 단순히 책만을 구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리고 토론하며 공부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바로 3세대형 헌책방의 모습이다.

과거 1세대형 헌책방은 폐지로 처리되던 책들을 난전으로 펼쳐놓았다. 2세대형 헌책방에 와서 비로소 특정 분야의 책을 취급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책을 매개로 다양한 문화활동을 교류하는 곳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이를 흔히 3세대형 헌책방, 버전 3.0의 헌책방이라 지칭한다. 그동안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는 이런 헌책방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런 가운데 대구에서 처음으로 3세대형 헌책방이 문을 열었다.

 물레책방 입구 간판의 모습
 물레책방 입구 간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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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레책방 내부 모습, 한 벽면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물레책방 내부 모습, 한 벽면에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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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으로서의 책이 아닌 만남으로서의 헌책

책의 날인 지난 4월 23일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물레책방'(이하 물레)이 개업식을 가졌다.

"비폭력 평화운동의 상징인 '간디의 물레'에서 따온 '물레'는 순환의 의미도 있다"고 책방지기인 장우석씨가 말했다. 덧붙여 "대형서점에서 책은 철저하게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그러나 헌책방에서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순환한다.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다"라며 상품인 책이 아니라 만남으로서의 헌책의 의미를 강조했다.

장우석씨가 수년간 모아온 1만여 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있는 물레에는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로 대표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관련 책이 유독 많다. 그리고 17년 동안 녹색평론사가 있던 건물 지하에 위치한 만큼, 생태와 환경에 관한 책들도 적지 않다(참고로 녹색평론사는 2008년에 대구에 있다가 서울로 옮겨갔다).

무엇보다 특색이 있는 건 대구지역의 출판물을 비중 있게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대구에는 시인들이 많아 흔히 '시인들의 도시'라고 불린다. 물레에는 이 대구 시인들의 시집만 2천 권 가까이 소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지역의 소설과 수필, 평론집 등도 찾아볼 수 있다.

책방지기 장우석씨는 "일반 헌책방들을 운반업자들이 가져오는 책을 들여놓는데, 우리는 하나하나 발품을 팔아서 골라온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다"며 좋은 책만을 엄선한다고 말했다.

 책방에 새로 들어온 책을 한편에 진열해 놓았다.
 책방에 새로 들어온 책을 한편에 진열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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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녹색평론'책들.
 책방 한편에 자리잡고 있는 '녹색평론'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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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물레에는 수험용 책이 없다. 보통 헌방책은 참고서나 교과서 같은 책이 주요 수입원이다. 그러나 양서를 취급한다는 의도에 맞게 수험용 책은 갖다 놓지 않는 것이다. 물론 무협지, 로맨스 소설, 판타지 소설도 거의 없다.

아직까지는 헌책을 직접 구해오거나 기증만 받고 있다. 앞으로 책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순환도서제'를 시도해 볼 요량이라고 한다. 누구나 책을 가져오면 책꽂이에 두고, 그 책이 팔리면 마일리지가 생긴다. 그 마일리지로 다른 책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23일 '물꼬 트는 날' 공연 모습
 23일 '물꼬 트는 날' 공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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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활동을 위한 공간

물레에선 헌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활동도 벌어진다. 작은 무대, 빔 프로젝트와 스크린이 있어서 커피를 마시면서 공연을 즐기거나 토론회도 가질 수 있다. 이미 지난 4월 27일에 법정 스님 수필 낭독회와 같은 달 30일에 단편영화 상영회를 열었다.

 한 여자 아이가 동화책을 집중해 보고 있다.
 한 여자 아이가 동화책을 집중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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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위한 인문학 서점인 '인디고 서원'의 대구 학생들이 매달 독서토론회를 물레에서 가지기로 약속돼 있기도 하다.

인디고 서원 학생들은 그전까지 대학의 빈 강의실을 전전해 왔었다. 이제 물레책방에서 달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월례 정기 영화 상영회도 계획하고 있다. 장우석씨는 "5월 중순에는 권정생 선생 3주기를 맞이해 영화 <몽실언니>를 상영하고 이지상 감독을 초청하려 한다"며 "앞으로 서울독립영화협회와 연계해 평소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독립영화들도 상영하고 감독들도 모셔오겠다"고 밝혔다.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지역 저자들을 모셔와 출판기념회도 열고, 대구지역의 교수와 같이 지역의 지식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림, 조각, 사진 등 각종 미술 전시회를 위한 대관도 준비하고 있다.

 차를 마시며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
 차를 마시며 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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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공동체를 꿈꾸며

23일 개업식 날, 물레가 벤치마킹한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의 주인장인 윤성근씨도 자신의 책방을 잠시 닫아두고 기꺼이 와 주었다. 윤씨는 "책방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선 지역민이 많이 이용해야 한다"며 "책도 사고, 자주 찾아와 다양한 문화활동을 즐겨야 한다"면서 지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이처럼 책방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책방이 지역에서 하나의 문화공동체로서 뿌리내리길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독립영화 감독이라는 이력을 가진 책방지기 장우석씨는 북 마스터이자 문화 안내자 역할을 한다. 찾는 책이 있으면 찾아주고, 책과 저자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친절히 답을 해준다. 또 곁들여 읽을 만한 책도 추천해 준다. 책과 관련된 영화나 접하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에 대해서 해박하게 설명해준다.

물레에 오면 장우석씨와 함께 다른 책방지기도 만날 수 있다. 녹색평론 편집주간을 지냈고 지금은 인문학연구실 실장인 변홍철씨와 대안교육 학교인 '산 자연학교' 선생인 조동현씨도 책방을 지키고 있다. 이들 역시 인문과 생태, 예술 등에 문화전반에 대한 다양한 안내자 역할을 맡았다.

책방지기들은 "물레책방이 책을 읽고 살 수 있는 책방으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로, 토론과 세미나를 즐길 수 있는 공부방으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으로,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그리고 지역민이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사랑방으로 이용 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많은 지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편하게 찾아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고 있는 책방지기 장우석 씨.
 새로 들어온 책을 정리하고 있는 책방지기 장우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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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레책방 약도
 물레책방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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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책방에서만 볼 수 있는) 책방지기 장우석씨가 권하는 책 5권
 권정생의 <몽실언니>
 권정생의 <몽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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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실언니> 84년 초판-지은이 권정생
"올해로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을 맞았다. 그리고 권정생 선생의 3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화이면서도 전쟁의 참혹함을 그리고 있다. 특히 80년대 나온 책으로는 드물게 북한 사람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그렸다."

 책 <꼬마 인디언>
 책 <꼬마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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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인디언> 지은이-프레스트 카터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이란 책 제목으로 더 유명한 책이다. 한 소년이 인디언 할아버지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틀트리'라는 영화도 있다. 93년 처음으로 변역된 책을 물레책방에 오면 볼 수 있다."

 문인수의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문인수의 시집 <늪이 늪에 젖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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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이 늪에 젖듯이> 지은이-문인수
"변방인 대구에서 40세 넘어 등단했고,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주목 받는 문인수 시인의 시집이다. 나이가 들수록 완숙함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시집은 86년도에 나온 시집으로서 초기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이필동의 <대구연극사>
 이필동의 <대구연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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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연극사> 지은이-이필동
"저자는 '밀양' '박하사탕'을 만든 이창동 영화감독의 형이다. 저자는 대구 연극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왔다. 특히 이 책은 지역의 문화 사료로서 의미가 있다."

 <오래된 미래> 초판본
 <오래된 미래> 초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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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지은이-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이 책은 녹색평론사의 첫 스테디셀러이자 생태학의 고전이다. 그 초판본을 물레책방이 소장하고 있다. 지금은 삼성계열의 대형 출판사에 판권이 넘어갔다. 그래서 이 책의 소박한 초판본이 더욱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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