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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연중 특별기획 '유러피언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독자들의 많은 관심 속에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을 극복했는가'를 27회에 걸쳐 심층보도한 데 이어 오늘부터 수회에 걸쳐 '스위스의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나의 한 표는 알프스보다 아름답다'를 현지에서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오연호, 엔드류 그룬
[공동취재]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스위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기자(팀장), 안성호(편집자문위원, 대전대 교수), 윤석준(기획위원), 남소연 기자(사진), 박정호 기자(동영상), 엔드류 그룬(Andrew Gruen, 영문판)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글라루스역에 도착한 오마이뉴스 취재팀. 오른쪽부터 윤석준 기획위원, 오연호 대표, 앤드류 그루엔 영문판 기자, 방송팀 박정호 기자.
 스위스의 직접 민주주의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글라루스역에 도착한 오마이뉴스 취재팀. 오른쪽부터 윤석준 기획위원, 오연호 대표, 앤드류 그루엔 영문판 기자, 방송팀 박정호 기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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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방자치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치가 정치다울 수 있을까?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쉽지 않는 질문에 답하고자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특별취재팀'이 스위스를 찾았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유럽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스위스는 약 4만 평방 킬로미터(대한민국의 41%)에 770만명(대한민국의 15%)이 살고 있는 작은 나라다. 면적으로는 지구의 1500분의 1에, 세계인구의 1000분의 1이 살고 있지만, 많은 비교정치학자들은 이 나라가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에서 세계 1위'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스위스는 알프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정치도 아름답다는 말이 가능하다. 그렇게 정치도 아름다울 수 있기에, 그것을 바탕으로 스위스는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에 육박, 세계 선두그룹에 속한다.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안착... 국민통합 세계에서 '으뜸'

스위스는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를 안착시킴으로써 경제적으로는 강소국을 만들 수 있었고, 정치적으로는 국민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다. 스위스 국민들은 4개의 언어권(독일어 64%, 프랑스어 20%, 이탈리아어 7%, 레토·로만어 0.5%)으로 나뉘어 있고, 종교도 구교(42%)와 신교(35%) 양분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에서 가장 국민통합을 잘 이뤄내는 국가 중의 하나다. 그 비결이 바로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 다시 말해 지방분권과 주민참여에 있다.

지구상에 있는 여러 나라 중에 왜 스위스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까? 지난 20여년간 스위스 정치를 연구해 온 안성호 교수(서울대 행정학 박사, 현 대전대 교수)는 "그것은 스위스의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특성에서 자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라며 "스위스인들이, 스위스의 정치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나의 한 표가, 정치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스위스는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와 직접민주주의가 일상화된 스위스에서 권력은 오뚝이형이다. 아래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스위스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식의 4대강 사업 추진은 상상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지방자치, 지방분권, 주민참여가 스위스 수준의 절반만이라도 제대로 되어 있다면 국민 과반수 이상이 반대하는 것을 대통령이 밀고 나갈 수 없다. 왜 그런지 오늘의 글라루스 주민총회 현장이 보여준다.       

20대 여성들 "오늘을 기다렸다, 나도 참석할 것"

글라루스 중앙 교회에서 만난 20대 여성들. 이들은 주민총회에 꼭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 "나도 꼭 갈 거예요" 글라루스 중앙 교회에서 만난 20대 여성들. 이들은 주민총회에 꼭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 앤드류 그루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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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알프스 산맥의 한 산자락에 있는 소도시 글라루스(Glarus). 이곳에서는 일요일인 오늘(5월 1일) 한 판의 정치축제가 벌어진다. 란쯔게마인데(Landsgemeinde)라 불리는 주민총회가 열린다. 이 총회에는 스위스의 한 주(州)인 글라루스의 유권자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년에 단 한 번만 열리는 직접민주주의 현장이다.

글라루스에 주민총회 란쯔게마인데의 날이 밝았다. 5월 1일 일요일, 날씨는 비가 간간이 뿌리고 있지만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주민총회를 막지는 못하고 있다. 알프스 산이 올려다보이는 글라루스 시내의 넓은 광장에는 오늘 참석할 유권자들이 앉을 자리가 마련돼 있다. 글라루스의 성인 유권자는 약 3만명인데 그 중에 약 7천명 정도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오전 9시부터(한국시각 오후 4시) 시작되는 주민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글라루스 주민들은 아침부터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주민총회는 며칠 전부터 글라루스 주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총회 이틀 전에 만난 레이철은 올해 21살인데 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점심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민총회에 갈 것이냐는 질문에 "매우 큰 파티다, 맛있는 음식들도 먹을 수 있고 아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으니 꼭 갈 것"이라고 답했다.

테이블에 함께 앉은 알렉산드리아(19)는 "매해 열리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본다"고 했고 시나 스테들러(23)는 "글라루스를 떠난 사람들도 이날은 돌아오기 때문에 기대된다"고 했다. 글라루스에서 취재진이 만난 두 아이의 엄마도, 도서관 사서도, 식당 종업원도 모두 '일요일의 정치축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총회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광장. 이곳에 유권자들이 꽉찰 예정이다.
 주민총회를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광장. 이곳에 유권자들이 꽉찰 예정이다.
ⓒ 앤드류 그루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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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총회 준비를 총괄하는 한지아그 더스트글라루스 의회 사무총장은 "란쯔게마인데는 직접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주의회나 주정부에서 예비법안을 란쯔게마인데에 제출하지만 늘 긴장합니다. 어떤 한 주민이라도 무대에 올라와서 '나는 이 법안의 이 대목을 찬성하지 않는다, 이렇게 바꾸고 싶다'고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토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거수로 투표하여 다수가 그를 지지하면 그의 안대로 통과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민총회에서는 22개 어젠다를 다룬다. 주의 세금을 올릴 것인지, 대중교통을 모두 공짜로 할 것인지, 강제금연 식당의 크기를 어떻게 정할지 등에서부터 주의회가 예비선출한 주지사의 동의여부까지도 모두 총회에 참석한 주민들의 직접 거수 투표로 결정한다.

글라루스의 이 독특한 직접민주주의 축제는 이 작은 주를 하나의 관광도시로 만들었다. 오늘의 행사를 지켜보기 위해 독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다. <오마이뉴스> 취재진처럼 직접민주주의를 취재하고 연구하려는 언론인들과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왔다.

글라루스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미켈라 에버하드씨는 "오래 전부터 방이 거의 다 동났다"면서 "우리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보통 30명이 저녁식사를 하는데 작년에 렌츠게마인데가 끝나고 300명이 먹을 정도였다, 올해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의 정치는 3차원으로 이뤄진다. 하나의 연방정부와 26개의 주정부, 그리고 그 밑에 코뮨(Communs)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군에 해당되는 2596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이 3차원이 원활하게 맞물려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방분권과 시민참여다.

스위스의 유권자는 이 3차원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계속 공급하기 위해 평균적으로 한 해에 약 24번의 직접투표를 한다. 스위스 유권자들은 연방의회나 주의회의 의원들에 의해 주어진 이슈에 대해 투표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의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한 평범한 시민은 연방헌법 개정안 발의에서부터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의 초등학교 선생님 공채 방안에까지 직접 '주민발의'를 시도할 수 있다. 

22개 안건 직접 투표... 정치도 관광상품이 될 수 있다

주민총회를 준비중인 한지아그 더스트 주의회 사무총장은 "란쯔게마인데는 직접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주민총회를 준비중인 한지아그 더스트 주의회 사무총장은 "란쯔게마인데는 직접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말한다.
ⓒ 앤드류 그루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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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행되고 있는 글라루스의 주민총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스위스인들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하나다. 글라루스는 아펜젤 주와 함께 스위스 연방을 구성하는 26개의 주(Cantons) 가운데 주민(州民) 전체 유권자가 오프라인에서 참여하는 주민총회를 최고의결기구로 둔 2개의 주 중 하나다. 스위스는 1387년부터 대부분의 주에서 이런 주민총회를 했는데 인구 증가 등으로 지금은 주 차원에서는 대부분 사라지고 그 아래 단위인 코뮨(Communs)에서 유지되고 있다.

스위스 글라루스주의 주민들이 모두 모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란쯔게마인데 현장.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열리는 이 주민총회 현장을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지켜봤다.
 스위스 글라루스주의 주민들이 모두 모여 투표권을 행사하는 란쯔게마인데 현장.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에 열리는 이 주민총회 현장을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지켜봤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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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총회 개회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총회 광장(Zaunplatz)으로 몰려들고 있다. 스위스의 관광상품은 알프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정치도 관광상품이 되어 있었다. 오늘의 정치축제는 현지시간으로 오전 9시에 시작돼 쉬는 시간 없이 오후 2시경에 끝날 예정이다. 알프스 산 밑에서, 광장에 밀려오는 인파들을 보며 상상해본다. 대한민국 정치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그런 날을. 


태그:#직접민주주의, #스위스, #유러피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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