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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몽마르트르를 걷다>
 책 <몽마르트르를 걷다>
ⓒ 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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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프랑스에 가면 파리를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를 가면 누구나 방문하는 당연한 코스로 루브르 미술관, 에펠탑, 상델리제 거리, 그리고 몽마르트르 언덕이 꼽힌다. 하지만 <몽마르트르를 걷다>의 저자처럼 이곳에 푸욱 빠져 지내는 이도 드물 것 같다.

"몽마르트르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한 손에 몽마르트르 지도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곳의 흔적을 공책에 메모해 가며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줄 비디오까지 찍어대느라 개똥을 꽤나 많이 밟았던 기억도 난다. 몽마르트르는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려는 전통과 똑같은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창조를 모색하려는 프랑스인의 개혁 정신이 이곳에서는 살아 숨쉰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의 서문은 저자가 얼마나 이곳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지 증명해 준다. 원래 몽마르트르는 시골 풍광이 그대로 남아 있던 포도밭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오스만 남작이 단행한 파리 재개발로 예술가와 몽마르트르의 카바레를 드나들던 부르주아,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들이 함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저자는 사람들이 몽마르트르를 계속 찾는 이유에 대해 '몽마르트르는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색채와 선율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몽마르트르의 여러 카페와 들판, 선술집은 로트렉, 드가, 르누아르 그림의 무수한 소재로 등장한다. 이런 장소들은 현재도 그대로 남아 방문하는 이들에게 향수와 여운을 준다.

화가들의 모델로 출발하여 그들의 연인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자신이 스스로 화가가 된 전설의 여인 쉬잔 발라동의 향기도 이곳에서 비롯된다. 옛날에는 화가의 모델로 일한다는 건 곧 매춘을 하는 행위와 비슷하게 취급되었다. 둥근 얼굴에 작은 키, 밝은 갈색 머리카락과 파란 눈의 발라동은 여러 유명 작가의 그림에 등장한다.

몽마르트르에 머물던 많은 화가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그려나가며 사랑을 탐닉했다. 발라동은 화가들의 모델이 될 때 자유로움을 느꼈고 아틀리에의 분위기에서 평온함을 느낀다. 그녀는 모델로, 연인으로 화가들의 열정을 불살랐다.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무수하게 많은 인상파 화가들의 멋진 그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몽마르트르에는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몽마르트르의 예술과 문화의 메카였던 '세탁선'도 그대로 존재한다. 입체파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도 이곳에서 그려졌는데, 이름이 탄생한 유래도 재미있다. 센 강을 오가던 세탁선과 비슷하다는 뜻에서 막스 자코브라는 시인이 지었다고 한다.

몽마르트르의 상징이라고 하면 그 유명한 '물랭 루즈'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거대한 코끼리 상으로 장식한 정원, 거울로 둘러싼 실내, 대단한 소음, 춤을 추는 화려한 무희들을 보거나 당나귀 위에 한번 앉아보기 위해 너나없이 블랑슈 광장으로 몰려들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지금은 퇴락한 이곳에 서면 소란스러움과 함께 성을 상품화하는 모습, 쓸쓸한 환락가로 변해버린 모습에 실망하기 쉽다. 하지만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많은 예술가와 유희의 장소를 찾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발걸음을 바쁘게 옮겼을 것이다.

몽마르트르와 가장 깊은 관련이 있는 화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코 툴루즈 로트렉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 지병으로 꼽추가 되어버린 불운을 타고난 그는 1800년대 후반의 몽마르트르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진정으로 몽마르트르와 함께 호흡하고 이곳에서 삶을 지탱해 온 화가다.

그의 작품에서는 당시의 화려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는 몽마르트르의 밤거리를 볼 수 있다. 처음엔 별 관객을 끌지 못해 고전하던 물랑 루즈도 로트렉의 광고 그림 덕분에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벽에 포스터가 붙자마자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사람들은 그걸 떼어가려고 한동안 혈안이 되었다고 하니, 로트렉이 지닌 천재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몽마르트르를 대표하는 또 다른 화가로는 고흐와 르누아르가 있다. 고흐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는 도시화되지 않은 전원적인 몽마르트르의 풍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르누와르가 그린 것도 있는데 우울한 그림은 그린 적이 없는 그답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아름답고 경쾌하게 화폭에 담았다.

르누아르는 '그림이란 소중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림은 아름다운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그림은 항상 밝고 아름답다. 로트렉의 어둡고 냉철한 그림과 대조적이라고 할까? 똑같은 몽마르트르를 묘사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

나도 몽마르트르 언덕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 책에서 언급하는 곳들 중 가 본 곳이 별로 없다. 저자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찾아 이 지역의 예술적 가치를 전한다. 다음에 프랑스를 찾는다면 책에서 말하는 작은 선술집과 카페, 포도밭과 '사랑해' 라는 단어들이 쓰인 주 템므 벽 등을 꼭 가보고 싶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서려 있는 몽마르트르. 이곳을 거닐면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환상적인 꿈을 꿀 것 같다. 와인 한 잔을 기울이며 문학과 사랑과 예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 이래서 파리는 더더욱 '낭만의 도시'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몽마르트르를 걷다 - 삶이 아플 때, 사랑을 잃었을 때

최내경 지음, 리수(2009)


태그:#여행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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