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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은 부모만의 문제일까?
 보육은 부모만의 문제일까?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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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98년에 결혼했으니, 햇수로 13년째다. 처음부터 맞벌이였고 지금도 맞벌이다. 그 사이 아이는 커서 5학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13년간 가정사의 중심에는 딸아이가 있었다.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 근심거리, 즐겁고 슬펐던 희로애락을 좌우했던 건 딸아이의 상태였고, 이에 따라 식단의 내용에서부터 집안 가구의 배치, 거주지를 선택하는 기준, 여유 시간의 배치 등이 모두 딸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임신의 기쁨과 동시에 다가올 육아의 힘겨움은 이미 노정되어 있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도 변함없이 가정사의 중심엔 딸아이가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아이가 아팠을 때다. 아침에 일어나니 불덩이처럼 아이의 얼굴이 벌겋다. 십중팔구 감기일 것이 뻔하지만, 혹여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은 '자폭' 수준에 가깝다. 부부 중 누군가 결근을 각오해야 할 순간, 아내의 눈빛과 마주친다. '나 오늘 바쁜 일 있는데…' 아내가 나에게 보내는 신호다. 아이가 아플 때 반복되는 일상의 모습이다.

갑자기 저녁에 일이 생길 때도 난감하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일정이라면 누군가는 아이를 데리고 일을 보거나, 아는 이웃에게 맡겨야 한다. 예정된 지방출장이었다면 장모님이 잠시 와 계시면 된다. 장모님께는 늘 죄송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그러나 급하게 잡힌 일정은 어쩔 수가 없다. 이럴 경우, 서로 얼굴 붉히며 감정을 드러낼 때가 태반이다. 요즘엔 워낙 숙련된 싸움의 기술(?)이 축적되어 고래싸움으로까지는 번지지 않는다.

주말에 잠시 봐줄 수 있는 보육시설이 없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굳이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항상 매달려 있을 수만 없는 상황이 때때로 벌어진다. 정말로 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1-2시간 정도 아이를 맡길 시설이 필요하다. 아이가 새로운 공간을 낯설어한다면 집으로 찾아와서 돌보는 서비스가 있다면 더욱 좋다.

방과후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 부부처럼, 아이가 싫어하는 학원만은 보내지 말자고 다짐하는 순간,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작년까지 우리 딸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아파트 1층 가정 놀이방에 가야 했다. 원장의 배려가 없었다면 방과후의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보육문제, 국가의 정책없이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어

생각해보자. 위에 열거된 난처한 상황들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국가의 정책 없이 지역 차원에서는 불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지역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보육정책의 모범지역이라고 할 만한 지방자치단체는 없지만, 몇몇 개별적인 정책사례가 시사하는 점들이 많다.

지난 2007년 10월. 경기도 안성시는 직장 여성의 처지를 고려하여 아픈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 간호보육센터'를 운영하였다. 관내 의료기관과 연계하여 아이가 아프면 언제라도 맡길 수 있도록 했다. 전염성을 우려하여 홀로 격리시키고 약으로만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의사와 간호사가 아이의 질병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 이 시설의 취지다.

2008년 안성시 예산안에 의하면, '어린이 간호보호센터' 위탁 운영비로 2억3천여만 원이 책정되었다. 낭비성 예산을 줄인다면 수요가 충분한 주거 밀집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다.

'시간연장형' 보육시설로는 인천 부평구의 사례가 눈에 띈다. '희망세상어린이집'은 밤 10시 30분까지 아이를 위탁해서 돌본다. 98년, 보육시설로 승인받을 때부터, 직장 여성들을 고려한 시간연장 보육이 이루어졌다. 10년을 훌쩍 넘은 프로그램이다. 현재 50~60여 명의 아이들이 이 혜택을 받는다. 부평구청은 1명의 교사 인건비만 지원한다.

그러나 50~60여 명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1명의 교사로는 부족하다. 관계자인 김혜은씨는 "실제로는 3명의 교사와 4~5명의 부모 자원봉사자들이 늦은 밤까지 아이들을 돌봅니다. 1명의 인건비로는 많이 부족하죠. 그나마 부모들의 자원활동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더 필요하죠"라고 말한다.

부평구의 '샘터어린이집'은 24시간 어린이집으로 유명하다. 사회복지법인으로서 아이를 중심으로 종합적인 보호가 가능하다. 이렇듯, 부평구는 시간연장 시설이나 24시 보육시설에 민간경상보조를 하고 있다. 2010년 예산안에 따르면, 특수보육시설에 지원되는 보조금은 1억8천여만 원 가량이다. 2억이 채 안 되는 예산으로 보육정책의 빈틈을 메우고 있다.

아산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역아동센터조례'를 만들었다. 관내 취학 아동들의 방과후 보호와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제정했는데, 빈곤 가구나 결손 가정의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뿐만 아니라 중학생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또한 오갈 데 없는 미취학 아동이나 중퇴아동도 지역아동센터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 조례에 따르면 교사 인건비는 물론이고 급식비, 종사자 교육비, 각종 사업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방과후 아동 보호의 필요성을 최대한 살렸다.

시간제 보육으로는 YMCA의 '아가야' 사업이 유명하다. 아이를 돌보다 급한 일이 생기면 잠시 맡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원주, 이천, 군포, 수원, 광주, 진주 등 7군데가 운영한다. 물론 이 사업은 노동부가 사회적 일자리 차원에서 지원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으면 1년 계약을 통해 최장 2년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가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지원가능하다.

최근 경상북도는 장애아 보육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은 바 있다. 가정의 형편과 상관없이 장애아동에게 균등한 보육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주요 취지다. 7개의 시설에 장애아 전용 승강기 설치, 통합보육시설을 50개로 확대, 방과후 통합보육시설 30곳으로 확대, 취학 전 모든 장애아동에게 무상보육료 지급, 종사자 처우개선비 지원, 장애아 전용 교재교구 설치 등 총 12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와 정책이 중요

현행 지방자치법 제9조는 아동의 보호와 복지증진은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로 정해놓고 있다. 국가가 동네의 실정을 전부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큰 틀의 보육정책은 국가가 짜고 지역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하자는 것이 보육정책의 기본 골격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육 영역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의지와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수백억 원을 들여 청사를 짓는 일보다 적은 예산으로 생활인들의 어깨에 짊어진 보육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지방자치단체가 보육에 더 많이 신경을 쓰고 더 많은 예산을 지원하려면, 보육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시민들과 같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지역정치인들이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조금씩 진전이 있어왔지만, 보육정책에 대한 비전과 의지를 가진 지역정치인들이 많아지면 보육정책의 기본틀을 확 바꿀 수도 있다. 아무쪼록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그런 지역정치인들이 많이 당선되었으면 한다.


태그:#바꿔 동네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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