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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동이>에서 장악원 노비인 동이(한효주 분)는 굵직굵직한 대형 사건들을 척척 해결한 공로로 하루아침에 감찰부 궁녀에 임명됐다. 동이에게 번번이 신세를 진 장옥정(장희빈, 이소연 분)의 추천에 의한 일이었다.

궁녀가 된 동이. MBC 드라마 <동이>.
 궁녀가 된 동이. MBC 드라마 <동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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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궁녀 임명을 둘러싼 드라마속 반응은 한 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다. 천민이 어떻게 궁녀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등장 인물들의 반응을 한번 스케치해 보자.

궁녀가 된 천비, 실제 가능했을까

동이의 열혈 지지자들인 장악원 악공들은 얼떨떨해하면서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느 악공은 "한번 천것이 되면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다"며 동이를 대견스러워했다.

동이를 동료로 맞이할 감찰부 궁녀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궁녀 애종(강유미 분)은 "뭔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른 감찰 궁녀들도 "말도 안 된다!"느니 "어떻게 천비(賤婢)가 우리와 같은 궁녀가 될 수 있어?"라느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라느니 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내명부 고위층의 반응도 다를 바 없었다. 명성대비(명성왕후, 박정수 분)의 방에 모인 세 여인의 대화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명성대비: "어찌 천인을 궁녀로 들인다 말이요?"
인현왕후: "국법에서는 천인도 궁녀로 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느 상궁: "그 규정은 이미 사문화되었습니다."

관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포도청 종사관 서용기(정진영 분)의 측근은 "천인이 궁녀가 되다니, 놀랄 일이 아닙니까?"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장옥정과 동이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동이: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항아님이 될 수 있습니까?"
옥정: "천비이기에 당치 않다는 말은 하지 말라."

27일 12부에 방영된 위의 풍경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MBC 드라마 <동이>에서는 궁녀란 자리가 '천것'들은 범접할 수 없는 위치로 설정되어 있다. 여느 사극에 비해 이 드라마에서는 '천것은 궁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특히 더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4월 13일에 방영된 제8부에서는 영달(이광수 분)이 동이에게 장옥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천출은 궁녀가 되기도 어려운데 (장옥정은) 후궁까지 넘보게 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드라마의 풍경은 과연 실제 역사와 부합하는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이 드라마의 내용은 역사적 실제와는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궁녀(나인·항아·홍수)는 '천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신분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법률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한다'

'천것은 궁녀가 될 수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조장된 데에는 어느 학술 논문의 오류도 한몫했다. 저명한 궁중생활사 연구자인 김용숙(2003년 작고)은 1964년에 발표한 '이조 후기 나인생활 연구'라는 논문에서 "(궁녀는) 양반과 평민의 중간 위치로 중인계급에서 뽑는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김용숙은 1987년에 발표한 <조선조 궁중풍속 연구>라는 저서에서는 위의 주장을 '살짝' 수정했다. 이 책에서 그는 "궁녀는 원래 비종(婢種, 여자 노비)에서 뽑는 것이었지만, 왕왕 그것이 지켜지지 않은 예도 있었던 것 같다"라며 앞의 견해를 정반대로 수정했다.

궁궐문제 전문가인 홍순민의 '조선시대 궁녀의 위상'이란 논문 등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김용숙의 나중 견해는 학계에서는 수용됐지만, 아직까지 일반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궁녀는 중인계급에서 선발됐다'고 주장하던 김용숙이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한다'는 내용이 조선시대의 법률 안에 엄연히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1865년에 편찬된 법전인 <대전회통> 권5 '형전'에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본문] 궁녀는 오로지 각 관청의 하전(下典, 노비)에서만 선발한다.
[주석] 내비(內婢)는 충분히 충원할 수 있으나, 사비(寺婢)는 (국왕의) 특명 없이는 선발할 수 없다. 양가(良家)의 딸은 일체 거론할 수 없다. 양인·사비를 추천하거나 들여보낸 자는 장(杖) 60대, 도(徒) 1년 형에 처한다. 종친부·의정부의 시녀는 시녀·별감으로 취하지 않는다."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한다고 규정한 <대전회통>. 밑줄 친 부분이 해당 규정의 본문이고, 본문 밑의 작은 글씨들이 주석이다.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한다고 규정한 <대전회통>. 밑줄 친 부분이 해당 규정의 본문이고, 본문 밑의 작은 글씨들이 주석이다.
ⓒ <대전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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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규정에 따르면, 궁녀는 관청 소속의 노비 즉 공노비 중에서만 선발하도록 했다. 공노비 중에서도 사비(寺婢) 즉 중앙관청 소속의 노비인 경우에는 국왕의 특명을 거쳐 궁녀로 선발할 수 있도록 하고, 내비 즉 내수사나 궁방(왕족의 집) 소속의 노비는 그런 제약 없이 궁녀로 선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종친부·의정부 소속의 노비는 궁녀로 선발할 수 없도록 했다. 참고로, 위의 규정에서 사(寺)는 사찰이 아니라 중앙관청을 의미한다.

한편, 위의 규정에서는 양가 즉 양인은 궁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양인이 궁녀가 되는 일은 형사처벌의 대상이었다. 양인을 궁녀로 만드는 자 혹은 국왕의 특명 없이 사비를 궁녀로 만드는 자는 장 60대 및 도 1년 형에 처한다고 했다. 장(杖)은 몽둥이로 때리는 형벌이고, 도(徒)는 강제노역을 시키는 형벌이었다.

위와 같은 <대전회통> 규정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의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런 점을 본다면, 궁녀를 '천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분'으로 설정한 드라마 <동이>의 내용은 역사적 실제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양인이 궁녀가 된 게 오히려 '불법'

신입 궁녀 동이(왼쪽에서 2번째)를 따돌리는 감찰부 궁녀들.
 신입 궁녀 동이(왼쪽에서 2번째)를 따돌리는 감찰부 궁녀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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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 제12부에서는 "국법에서는 천인도 궁녀로 들일 수 있도록 했다"느니 "그 규정이 이미 사문화되었다"느니 하는 대화들이 오갔지만, 실제로는 천인'만' 궁녀로 들일 수 있도록 했으며 이런 규정이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생명력을 발휘했다.

"전 판서 김원호의 딸을 궁인으로 삼았다"는 태조 6년(1397) 3월 5일자 <태조실록>의 기록처럼 양인이 궁녀가 된 사례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조선 초기의 일이었다. 시스템이 완비된 후에도 양인이 궁녀가 되는 사례는 여전히 있었지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적이고 불법적인 일에 불과했다.

사실, 궁녀는 노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공노비들보다는 처지가 나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본질적으로 공노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높은 곳에 근무하는 '천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1865년 법전인 <대전회통> 규정이 드라마 <동이>의 시대적 배경인 17세기 후반에도 유효했겠느냐?'라는 것이다. '최숙빈(숙빈 최씨, 1670~1718년)의 시대에는 양인이 궁녀로 선발됐을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궁금증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위의 규정은 조선왕조의 시스템이 정착된 이래 줄곧 시행돼 왔다. 최숙빈이 태어나기 이전인 효종 4년(1653) 9월 24일자 <효종실록>은 '각 관청의 노비 가운데에서 궁녀를 선발하는 것이 국법'이라고 했다. 또 1698년까지의 155년간의 왕의 전교 즉 왕명을 수록한 불문법 자료집인 <수교집록>에도 동일한 규정이 있다. 조선왕조 시스템이 정착된 후로는 '궁녀는 공노비 중에서 선발한다'는 원칙이 지켜졌던 것이다. 최숙빈이 살던 시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1698년까지의 155년간의 왕의 전교를 수록한 <수교집록>.
 1698년까지의 155년간의 왕의 전교를 수록한 <수교집록>.
ⓒ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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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위의 원칙이 100% 완벽하게 지켜진 것은 아니었다. 양인이 궁녀가 되는 것을 처벌한다는 법률 규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양인 중에서 불법적으로 궁녀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공노비 중에서 궁녀를 뽑는 것이 원칙이었고 양인이 궁녀가 되는 것은 예외적이고 불법적인 일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최씨 같은 천민이 궁녀로 뽑힐 경우 주변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을 수 있는 있었지만, 드라마 속에서처럼 "어찌 천민이 궁녀가 될 수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올 가능성은 드물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왜 공노비 중에서만 궁녀를 선발했을까? 궁녀가 되면 잘하면 왕의 여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인데, 왜 그런 기회를 '천것'들에게만 부여한 것일까? 제2편에서 그 의문을 풀어보기로 하겠다.

(이어집니다.) 


태그:#동이, #최숙빈, #숙빈 최씨, #궁녀, #공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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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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