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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청이 지난 호랑이 전시에 관련된 항의성 민원을 구청 게시판에 올린 시민 7명을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 노원구청 노원구청이 지난 호랑이 전시에 관련된 항의성 민원을 구청 게시판에 올린 시민 7명을 고소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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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청이 다시 시끄럽다. 노원구청이 지난 2월, 구청 홈페이지에 '호랑이 전시'에 항의하는 글을 올린 시민 7명을 경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노원구청은 지난해 12월 23일부터 지난 1월 28일까지 '호랑이 특별 기획전' 이벤트의 일환으로 생후 8개월 된 아기 호랑이 두 마리(강호, 범호)를 구청 로비에 전시해 비난을 받았다. 당시 '동물학대' 논란 속에서도 노원구청은 "변함없이 전시를 이어갈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거센 여론의 압박과 언론보도로 계획된 날짜보다 한 달 앞당겨 행사를 접었다.

낮에는 가로x세로 2m 남짓의 아크릴관에 호랑이들을 전시하고, 밤에는 동물원으로 보낸다는 당시 구청의 설명과는 달리, 지하주차장 트럭 안에 호랑이들을 밤새 방치한 것이 <오마이뉴스>를 통해 밝혀지면서, 노원구청을 향한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그런데도 노원구청은 전시를 그만두면서 어떠한 사과나 유감의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이 많은 구청장에게 반말로 글 쓴 잘못?

지난 1월 노원구청은 로비에 있는 아크릴관에 생후 8개월 된 아기호랑이들을 전시함으로써 '시민의 세금으로 동물을 학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 아기호랑이 지난 1월 노원구청은 로비에 있는 아크릴관에 생후 8개월 된 아기호랑이들을 전시함으로써 '시민의 세금으로 동물을 학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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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청으로부터 고소를 당한 시민 중 한 명인 한세미(34)씨는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구청로비에 전시하는 것을 '동물학대'라고 생각"해 노원구청 홈페이지 열린구청장실 '구청에 바란다' 게시판에 항의성 글을 세 차례 썼다고 말했다. 한씨는 두 번은 존댓말을 사용했고, 한 번은 반말을 사용했다. 한씨가 올린 반말 댓글은 아래와 같다.

"갑갑하겠구나. 방법이 잘못됐으면 수정을 해야지...이노근 구청장.
노원구청 총무과에서도 잘못을 시인하고 인정하는데 (자기도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하는데..총무과가 무슨 힘이 있겠어..다 구청장이 시킨 짓이지.) 스트레스 없다고 발표하면 호랑이의 스트레스가 없어진다니? 참...어떻게 살아온 인생이기에 구청장은 돼 가지고...
우기면 다 되는 줄 아는가 보구나... 네 인생이 몇 년이나 더 남았다고.. 생명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여러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생명을 인간 앞에 전시물로 이용하니?
네가 다른 생명을 그렇게 이용한다면 이노근..네 생명도 이용가치로 전락할테니...
살면서 느껴보거라..인과응보란다."

한씨는 이 일로 지난 17일 노원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는 "경찰도 이게 문제가 되는 건지 잘 모르더라"며 "조사과정에서 경찰이 '나이 많은 사람한테 왜 이렇게 얘기를 했느냐'는 정도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노원구청의 고소에 대해 한씨는 "반말을 써서 문제가 된 것이라면, 내가 70살이면 고소를 안 당하는 것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에) 1000개 넘는 민원 글이 올라왔음에도 구청 측은 '호랑이 전시를 철회할 생각이 없다, 학대 아니다'라고만 했다. 그래서 글을 더 쓴 거다. 나는 벌금이 나온다 해도 10원 한 푼 낼 생각이 없고, 구청장한테 사과할 생각도 없다. 동물을 학대한 사람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복수 아니라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 위한 것"

이번 '시민 고소'에 대해 "구청장의 지시 없이 자신이 진행한 것"이라 주장하는 노원구청 총무과 과장은 "정책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수긍한다"며 "구청장을 비롯한 구청직원들에게 심한 욕을 한 것들 중 객관적인 판단으로 골라냈다"고 이번 고소의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 1월 노원구청 '호랑이 특별전' 당시 좁은 아크릴관 안에 갇혀 전시 중인 아기 호랑이 모습.
▲ 아기호랑이 지난 1월 노원구청 '호랑이 특별전' 당시 좁은 아크릴관 안에 갇혀 전시 중인 아기 호랑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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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총무과 과장이 참을 수 없었다고 하는 글은 "이 XX들아 나이 처먹고 대가리에 똥만 들었네, 네 인생이 몇 년이나 더 남았다고, 니가 우리 안에 들어가라, 너는 동물에 비해 더 나을 게 없으니까"였다고 한다.

"정책적인 면에 대해서 그러면(글을 쓰면) 우리가 참고할 텐데, 대뜸 욕을 심하게 한 사람들은 수사기관의 판단을 한번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우리가 공무원이지만 그런 대접을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수사를 의뢰했다."

'이번 고소가 행사 방해에 대한 복수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 그는 "내가 무슨 복수를 하냐, 앞으로 비방, 육두문자 이런 건 우리나라 인터넷 문화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노원구청이 고소한 이들 중에는 중학생과 고등학생도 포함돼있다. 고등학생은 경찰의 연락을 받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변호사에게 상담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졌다. 총무과장은 이에 대해 "고등학생이 부모와 함께 구청에 왔다 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고등학생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인터넷에 올린 일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더라. 이제 학생이 인터넷을 심사숙고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거다. 그런 건(학생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조치할 거다. 그렇게 반성을 하고 그런다면 서로 취하 하든가 경찰에서도 뭐 어떻게 안 하겠나?"

"유인촌 장관도 그랬는데..."

노원구청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해 호랑이 전시를 계획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인해 한달 일찍 행사를 마무리했다.
▲ 노원구청 노원구청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2월 말까지 국립자연사박물관 유치를 위해 호랑이 전시를 계획했으나, 여론의 반발로 인해 한달 일찍 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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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이 게시판에 쓴 민원글을 문제 삼아 시민을 고소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유인촌 장관도 김연아 동영상 관련해서 그랬는데…"라고 말했다.

노원구청의 이번 시민 고소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문광부)의 누리꾼 수사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문광부의 누리꾼 고소와 노원구청의 시민 고소가 다른 점이 있다면, 노원구청은 이노근 구청장의 평소 행위가 아니라, 세금으로 행해진 구청 행사와 관련한 일을 비판한 시민들을 고소했다는 것. 하지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직자와 시민의 관계'를 '사적 관계'로 착각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전시 취소 이후까지 들끓다가 어렵게 잠잠해졌던 노원구청의 민원 게시판에는 다시 노원구청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규호씨는 "어디 무서워서 말이라도 하겠습니까? 주민 아니 국민에 대한 고소, 누구 생각인지 참으로 궁금하군요"라며 노원구청의 이번 고소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차성태씨는 "노원구청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노원구청의 이번 행태는 결국 국가권력 정부권력 지위를 이용하여 힘없는 개인을 위협하는 행태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며 구청의 '시민 고소'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왜 반말을 했냐'고 묻는 경찰서와 '반성하면 용서하겠다'는 구청의 태도에 교무실의 풍경이 겹쳐져 보인다. 이제 공직자를 비판하려면, 반드시 존댓말과 예의범절을 겸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태그:#노원구청, #시민고소, #호랑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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