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노무현대통령 1주기 추모공연 안내 동영상
ⓒ 탁현민

관련영상보기

지난해 여름, 뜨겁고 잔혹했던 시간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연출했던 노무현 대통령 추모공연 <다시, 바람이 분다>의 연출노트를 꺼내 보았습니다. 노트 앞장에는 짧은 한마디가 쓰여 있었습니다. '잊지 말자'. 다시 공연을 준비하며 저의 고민은 내내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또 '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말입니다.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시간도 있었고, 뜨거운 후회의 시간도 있었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사뭇 냉정하게 잊어서는 안 되는 가치에 대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노보다, 후회보다, 희망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잊지 않는 것,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잊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그것은 다만 추모공연을 연출했던 어느 연출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500만의 추모시민 모두가 그러한 생각들을 거쳤고 그러한 시간들을 보냈을 터입니다. 하지만 어느새 기억하려 애써 봐도 자꾸만 희미해져가는 그날의 감정들에 대해 고민스러운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잊지 말자' 저는 그때 무엇을 잊지 않기 위해 그런 말을 써 놓은 것이었을까요? 분명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단지 그것을 잊지 말자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의 죽음이 비극적이었던 것은 그가 단지 한명의 자연인으로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을 요구했던 분명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단지 노무현의 죽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죽음이었고, 민주주의 죽음이었고, 저항의 죽음이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또 다시 공연을 준비하면서 예상대로 이전의 공연보다 더 어려워진 현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과 1년 사이에 변화치고는 너무나 많이 그리고 너무나 절망적으로 변해 버린 상황들은 단지 추모공연을 준비하는 일조차도 이러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은 오죽할까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리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출연진의 문제, 장소의 문제, 그리고 여러 불편부당한 제약들은 당연히 겪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쯤은 걱정 '꺼리'도 안될 정도로 맷집이 좋아졌습니다. 바다는 어민이 지키고, 산과 강은 신부님과 스님들이 지키고 거리는 촛불 든 시민들이 지키고 있는지 이미 오래입니다. 때 아닌 의병활동에 심신이 피곤하지만 공연장 정도는 제가 지켜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1차 라인업에 들어가 있는 모든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각 지역에서 공연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 공연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가수들과 접촉하고 부탁하고 사정했지만 결국 우리들과 함께 하는 가수들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들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한편으론 아쉽지만 그러나 한편으론 무엇보다 든든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번에도 공연은 준비되고 있습니다. 연출가가 있고 가수가 있고, 노무현 재단이 있습니다. 어렵지만 장소도 하나씩 확정되고 있으며 구성도 끝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해야 할 어려움이야 당하면 그만이지만 무엇보다 큰 걱정은 공연의 안쪽이 아니라 공연의 바깥쪽입니다. 무대가 아니라 객석입니다. 그것이 이 공연이 결코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공연이 아니라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자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1주기 추모공연 <파워투더피플2010>은 관객들이 가수들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이는 자리가 아니라 가수들이 관객들을 바라보기 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보기위해 모이는 자리입니다. 눈부신 조명이나 호화로운 세트, 화려한 출연진을 보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그리고 우리가 함께 노래하는 이유는, 그런 것에 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저항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닙니다. 비록 추모공연으로 이미 죽은 그를 되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의 죽음을 우리들의 삶으로 바꾸어 놓을 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지 하나의 공연에 모여, 노래하고 흐느끼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음악으로는 세상이 바뀌지도 않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관객 여러분, 아니 내 뜨거운 왼쪽과 오른쪽의 어깨를 맞댈 여러분, 우리는 음악으로 그리고 이번 공연으로 우리들을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기억해내야 할 것들을 떠올리며 우리들의 마음을 바꾸어 냈을 때, 그때부터가 시민이 권력을 가지게 되는 순간 일 것입니다. 5월 한 달,  Power to the people의 선언에 관객으로 주인공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태그:#노무현, #추모공연, #탁현민, #노무현재단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