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봄은 발걸음이 유난히 더디다. 그래서일까. 세상도 겨울저녁처럼 어둑하고 전깃줄을 스치는 바람처럼 시끄럽기만 하다. 분명 봄은 우리 곁에 다가와 매화, 산수유, 벚꽃, 개나리 등을 활짝 피우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 봄을 시샘하는 꽃샘바람처럼 천안함 침몰, 4대강 삽질, 세종시 수정안, 6.2 지방선거 등으로 아프고 어지럽다.

    

올봄에는 새롭게 피어나는 저 꽃처럼 뭔가 환하고 향기로운 소식이 많기를 기대했건만 아무래도 '꽝'인 것 같다. 그러니까 이 땅에 봄은 다가왔지만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어루만지는 그런 새봄은 아직도 다가오지 않고 있다는 그 말이다. 이럴 때 춥고 허기진 몸과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다독이는 뭔가는 없을까.

 

그래, 맞아. 올봄 들어 쑥국을 한 번도 끓여먹지 못했지. 봄을 제대로 맞으려면 쑥국부터 먼저 끓여 먹어야 하는데, 쑥국을 아직 끓여먹지 않고 있었으니 꽃샘추위가 자꾸 볼썽사납게 설치고 있는지도 몰라. 어릴 때 어머니께서는 쑥국을 먹어야 몸과 마음에 봄을 심을 수 있다고 그랬었는데...

 

그래. 오늘 저녁에는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표' 쑥국을 소매 걷고 끓여보자. 봄내음 물씬 풍기는 그 쑥국을 먹으며 큰딸은 물론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 몸과 마음에 진짜 봄을 심어야겠다. 여기서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라는 것은 큰딸이 올 봄 서울에 있는 미대에 들어가 예전 '기러기 아빠'와 함께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반쪽짜리'라 부르는 것이다.  

 

      

 

늙은 암탉에게 쑥 먹이면 알 쑥쑥 낳는다

 

입맛을 잃기 쉬운 봄철... 춘곤증을 몰아내고, 살과 피를 깨끗하게 걸러 여러 가지 성인병을 막아주는 쑥. 쑥은 특히 우리나라 된장과 참 잘 어울린다. 오죽했으면 봄에 갓 돋아난 여린 쑥순을 된장에 찍어먹으면 백만장자가 먹는 100억 원에 이르는 보약보다 100억 배 이상 낫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겠는가.   

 

1970년대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부모님께서는 알을 제대로 낳지 못하는 늙은 암탉에게 쑥을 자주 먹였다. 그렇게 하면 신기하게도 알을 쑥쑥 잘 낳았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쑥을 먹인 닭을 백숙 등으로 조리해 먹으면 질긴 고기까지 연해지면서 맛이 아주 좋다. 쑥을 먹인 닭은 보약과 같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는 해마다 봄이 다가오면 잊지 않고 된장에 쑥을 풀어 향긋하고 구수한 쑥국을 자주 끓여먹었다. 하지만 올봄에는 지금까지 쑥국을 한 번도 끓여먹지 못했다. 날씨가 하도 볼썽사납게 굴어대니, 봄이 온 것인지 겨울이 다시 시작하는 것인지 헛갈리기 일쑤인데다 가까운 재래시장에 나가도 한동안 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들 생명을 지켜주는 알칼리성을 띤 쑥. 조선시대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 "쑥은 독이 없고 모든 만성병을 다스리며, 특히 부인병에 좋고 자식을 낳게 한다"고 적혀 있다. 이 건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이지만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린 뒤 가장 먼저 살아난 식물이 쑥이었다고 하니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하겠는가.

 

'기러기 아빠' 어언 10년에 쑥국 하나 못 끓이겠어요?

 

"쑥 이거 한 무더기 얼마씩 해요?"

"천 원씩입니다. 제가 직접 캔 쑥이라서 오늘 저녁 쑥국을 끓여 드시면 맛이 훨씬 더 좋을 거예요. 춘곤증 쫓는 데는 쑥이 최고지요."

"두 무더기 주세요. 달래는요?"

"달래도 한 무더기 천원입니다. 아저씨! 쑥 사면서 달래 달라고 하는 거 보니까 쑥국을 제대로 끓일 줄 아는 모양이네요?"

"기러기 아빠 생활을 어언 10년 넘게 했는데, 그깟 쑥국 하나 제대로 못 끓이겠어요?"

 

18일(일) 저녁 6시. 쑥과 큰딸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음식재료를 사기 위해 가까운 동원시장(중랑구 면목역)으로 간다. 큰딸은 점심때쯤 알바(아르바이트) 갔다가 밤 10시가 넘어야 집으로 들어온다. 그래도 참 대견하다. 대학 입학과 함께 곧바로 건대 가까이 있는 서점에서 알바 자리를 구했으니 말이다.

 

큰딸이 서울에 올라오면서 생활비가 두 배나 든다. 어찌나 입고 싶은 것, 신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많은지 보는 것마다 다 사달라고 조르기 일쑤다. 이 때문에 '반쪽짜리 기러기 아빠'이자 '가난한 시인아빠' 등골이 빠질 지경이다. 그래도 어쩌랴. 누군가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가장 보기 좋다'고 그랬지 않았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쑥과 밑반찬거리를 산 뒤 채소가게와 과일가게, 생선가게 등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재래시장을 흘깃거린다. 큰딸이 좋아하는 새빨간 딸기와 싱싱한 조기, 고등어도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3천 원짜리 딸기만 한 팩 산 뒤 그냥 돌아선다. 조기와 고등어가 아직 냉동실에 조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향긋한 쑥국 먹고, 향긋한 꽃놀이도 즐기고

 

쑥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것은 우리 된장이다. 쑥국은 이른 봄날 갓 돋아난 여린 쑥과 된장만 있어도 끓일 수 있다. 하지만 요즈음 워낙 먹을거리와 양념거리가 흔하고, 그에 따라 우리들 입도 꽤 간사스러워져서 쑥과 된장만으로 쑥국을 끓이기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쑥국에도 여러 가지 재료를 곁들여야 더 맛있다는 그 말이다.    

 

쑥국을 끓이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먼저 쑥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은 뒤 맑은 물에 막걸리식초 몇 방울 떨어뜨려 10분 정도 담가둔다. 그래야 쑥에 붙어 있는 불순물이 사라진다. 이때 쑥국에 들어갈 멸치+다시마+무 맛국물, 모시조개, 달래, 쌀뜨물, 찧은 마늘, 송송 썬 대파, 송송 썬 양파, 된장, 고추장 등 재료를 준비한다.

 

그 다음 막걸리식초에 담근 쑥을 건져 다시 한번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뒤 된장과 고추장(3:1)을 푼 냄비에 담아 멸치맛국물와 쌀뜨물(1:1)을 붓고 모시조개를 넣어 센불에 올린다. 이때 입맛에 따라 쑥에 찹쌀가루나 들깨가루를 적당히 버무려 넣으면 국물이 걸쭉해지면서 향긋하고도 깔끔한 맛이 훨씬 더 깊어진다. 

 

냄비에 넣은 쑥국이 봄 안개처럼 허연 김을 내며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달래와 찧은 마늘, 송송 썬 대파, 양파를 넣어 다시 한번 중간불에서 보글보글 끓인 뒤 간을 맞추면 끝. 이때 싱겁다고 간장을 자꾸 더 넣으면 나중에 국물이 식으면 짜질 수 있으므로 아주 싱겁게 간을 맞추는 것도 쑥국 잘 끓이기 포인트.

 

 

"큰딸! 작은딸한테 쑥국 먹으러 오라 전화해. 빛나가 쑥국을 참 좋아하잖아."

"ㅋㅋㅋ! 알았어, 아빠! ... 빛나야! ㅋㅋㅋ... 아빠가 쑥국 끓여놓았다고 얼른 먹으러 오래."

"......"

"작은딸은 왜 빨리 안 와?^^"

"아빠! 빛나가 쑥국을 빠른 택배로 창원으로 보내래.^^"

 

입 안을 향긋하게 감싸면서도 구수한 깊은 맛이 아주 좋은 쑥국. 보약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비켜갈 만큼 건강에도 아주 좋은, 우리 조상 대대로 봄철이면 한 번도 건너뛰지 않고 온 식구가 밥을 말아 오순도순 향기 나게 먹었던 봄날 음식 대명사 쑥국! 입맛 없는 나른한 봄철, 향긋한 쑥국 한 그릇 먹고 향긋한 꽃놀이 가는 건 어때요?


태그:#쑥국, #기러기아빠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