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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체 : 19일 오후 4시 49분]

"이 대통령은 하야하라!"

17일 서울 종로구 종각. 교련복을 입은 청년 2명이 '이 대통령 하야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경찰은 '이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이 대통령' 사이에 '승만'이라 적을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급하게 매직으로 '이 대통령' 사이에 '승만'이라고 적어 넣었다. 그래도 불안했는지, 몇 시간 뒤 경찰은 이 플래카드마저 빼앗아갔다.

하루 뒤인 18일 오후 2시경 서울 종로구 동승동 대학로 한복판. 2명의 청년이 교련복을 입고 거리에 섰다. 이들의 손에는 전날 경찰이 조언해준 대로 수정한 플래카드가 들려있었고, 이들은 '이 대통령 하야하라!'고 외쳤다. 경찰이 다시 제지에 나섰다. 그들은 5분만에 퍼포먼스를 중단하고 플래카드를 접었다.

5시간 후 동료들과 함께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으러 가던 이들은 경찰로부터 미란다 고지도 듣지 못한 채 어디론가 끌려갔다.

1970년대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김아무개(28)와 이아무개(30)씨는 지난 18일 서울 한복판에서 4.19 당시 상황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은 집시법 위반 혐의라고 설명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과잉 수사가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무법인 한결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번 연행에 대해 "집회 개념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경찰이 집회라 하면 그냥 집회가 되는 실정"이라며 "이러한 퍼포먼스조차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법을 과잉 해석해서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4.19 혁명 정신 기리자고 모인 민주올레

펼쳐든 플래카드
 펼쳐든 플래카드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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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퍼포먼스는 지난 18일 진행된 4.19 민주올레 도중에 이루어졌다. 민주올레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출발해 4·19 혁명 유적지를 둘러보며 4.19의 정신을 기리자는 의미로 기획된 행사이다. 이날 민주올레에는 한명숙 전 총리, 이해찬 전 총리, 정세균 민주당 대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등 각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퍼포먼스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쫓겨난 후 기거했던 이화장 앞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씨 등 2명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 '못 살겠다 갈아엎자'는 플래카드를 들었다. 이들은 교련복까지 갖춰 입고 "이 대통령 하야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들의 플래카드는 5분도 채 걸려있지 못했다. 사복을 입은 경찰 몇몇이 퍼포먼스를 하는 이들에게 다가와 "플래카드를 접으라"로 요구했고, 퍼포먼스는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올레 참가자들은 "퍼포먼스인데 왜 막느냐"고 경찰에 따져 묻기도 했다.

현재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 강동경찰서 측은 "우리는 현장 검거를 한 것이 아니고 조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혐의로 체포된 것이라고 말씀 드릴 수 없다"며 "현행범 검거를 한 남대문서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대문서 지능수사팀은 "기동대가 체포한 것이라 우리는 모른다"고 발뺌했다. 기동대가 어디 소속이냐고 묻자 "그것도 모른다"며 "강동서쪽에 다 자료가 있으니 거기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지난 천안함 촛불집회 때 경찰은 4인 이상이면 집회라고 했는데 이번엔 2인인데도 집회라고 하면 도대체 기준이 뭐냐"며 "학설에서는 적어도 3인이나 4인 이상이 모여야 집회라 본다"고 밝혔다.

경찰, 집회와 현행범 판단 기준이 뭔가

경찰은 이들이 '현행범'이라며 긴급 체포 형식을 취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연행은 퍼포먼스를 했던 때가 아닌 민주올레 행사가 끝난 후 정치권 인사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 갑작스레 진행됐다.

서울 강동경찰서에 연행된 이아무개씨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후 6시 45분쯤 민주올레를 다 끝내고 가지고 온 사복으로 갈아입고 밥을 먹으러 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연행되었다"며 "그때 현행범이라고 우리를 잡아 갔는데 그때는 플래카드를 펼친 상태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퍼포먼스 때문에 연행된 것이냐 묻자 "그런 것 같다"며 "2시 이후에 두 번 정도 퍼포먼스를 더 했는데 그것 말고는 한 게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경찰이 플래카드를 접으라 요구할 때 곧장 접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퍼포먼스를 한 시각은 5시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공동대표는 "마지막으로 퍼포먼스를 한 것은 5시 좀 전이었다"며 "기념촬영을 할 때 플래카드를 펼치기는 했지만 따로 퍼포먼스를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아무런 행위를 하고 있지 않은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아갔다는 지적에 대해 강동경찰서 수사과 우희철 반장은 "현행범에는 딱 그 장소, 시간이 아니더라도 그 근방에서 일을 한 것도 다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주민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현행범 관련 판례를 보면 현행범은 범죄를 행하고 있거나 범죄를 시행하여 끝마친 시간에 아주 근접한 때에 체포해야 현행범으로 볼 수 있다"며 "범죄를 시행한 후 2시간 정도가 지난 상태라면 현행범이라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퍼포먼스 하는 게 무슨 죄입니까"

경찰들에 막힌 좁은 길을 통과하고 있는 민주올레 참가자들
 경찰들에 막힌 좁은 길을 통과하고 있는 민주올레 참가자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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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민주올레 운영위원회 기획단 간사인 강욱천씨는 "민주올레는 단일 단체의 행사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해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참여한 것"이라며 "서로 소속된 단체가 어딘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강씨는 "(그럼에도) 경찰 측은 단일 집단의 집회로 사안을 몰아가려는 것 같다"며 "기획성으로 이들을 잡아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아무것도 안 하고 있던 사람들을 현행범으로 잡아간 황당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연행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포털에 오른 <오마이뉴스>기사에 댓글을 단 누리꾼 '줄탁동시'는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는 없는가? 북한과 다른 게 무엇인가?"라고 글을 올렸다.

누리꾼 '포도나무'는 "독재시대 별 거 아니었겠구나, 이런 식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가서 처리 했었겠네"라고 글을 남겼다.

누리꾼 조아무개씨는 "이승만이 아니라 이명박이라 해도 이들이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무슨 죄입니까, 그런 자유가 제한되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습니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하듯이 올레에 참가한 시민들의 몇 배 수인 경찰들이 나타났습니다"라고 울분을 터트렸다.

한편, 민주올레를 평화롭게 걷는 시민들을 경찰들이 막아서 한 때 가벼운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과도한 간섭에 민주올레 참석자들은 경찰들에게 "인도를 막으면 차도로 가라는 것이냐", "길 비켜"라고 항의하기도 했다.


태그:#4,19, #이승만 , #이명박, #집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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