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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꽃이 피기 전에 오길, 그리고 요즘엔 꽃이 지기 전에 오길 바랐는데.... 아무도 이 꽃구경을 못하네요."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앞에 있는 해군아파트에 사는 김아무개(32)씨는 활짝 핀 매화를 보며 말했다. 김씨는 천안함과 함께 실종된 병사들이 모두 꽃이 피기 전에 돌아오길 고대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 3월 26일, 평택 해군 아파트 단지에서 꽃을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매화, 산수유, 개나리, 목련 등이 활짝 피었다.

 

김씨는 "실종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죽거나 어디론가 흘러갔는데, 같은 해군 가족인 우리만 봄꽃을 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 김씨의 남편은 해군 2함대에서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36명의 실종자들이 시신으로 돌아온 15일과 16일. 해군 아파트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깊게 웅크린 모습처럼 고요했다. 햇살이 좋은 16일 오후에도 아파트에 활기는 없었다. 상황을 잘 모르는 듯 아이들만 놀이터에서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이런 모습은 지난달에도, 4월 초에도 비슷했다. 해군 아파트에 사는 해군 가족들은 웃음을 자제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아파트에 창밖에 거린 조기가 많아졌고 봄꽃이 활짝 피었다는 점이다.

 

집 베란다에 조기를 내건 양아무개(33)씨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뭐라 위로할 말이 없다"며 "나라를 위해 봉사하다가 목숨을 잃었으니 조기라고 내 거는 게 국민과 이웃의 당연하 도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군 아파트에는 애초 실종됐던 병사 46명 중 7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시신으로 발견된 고 남기훈·김태석 상사 모두 해군 아파트에 거주했다. 같은 이웃이었고, 동료였던 이들은 같은 배에서 함께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그리고 이젠 안타깝게도 비슷한 시기에 기일을 맞이할 처지가 됐다.

 

조아무개(36)씨는 "이웃끼리 같은 시기에 제사를 지내는 게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지 이제야 실감아 날 것 같다"며 "적어도 내 남편이 해군에 있는 동안에는 해마다 봄이 오면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는 "내 마음도 이렇게 착잡한데 유가족들이나 실종자 가족들은 앞으로 어떻게 봄날을 맞이하고 견뎌낼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해군 아파트 상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 역시 아픈 마음을 나타냈다. 한 식당 주인은 "먹고 살기 위해 가게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이웃들에게 미안할 정도"라며 "유가족들이 섭섭하지 않도록 국가가 사망한 분들에 대한 예우를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평택 해군 아파트에도 봄이 오고 꽃은 폈지만 분위기는 차가운 겨울이다. 해군 아파트에서 신나게 움직이는 건, 주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내건 조기뿐이다. 


태그:#천안함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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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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