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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하면 수도호스처럼 포장마차에 납품하는 1롤에 몇 천원 하는 순대부터 순대전문집에서 속에 별의별 것이 다 들어가는 퓨전순대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순대는 대포집이나 재래시장에서 먹는 순대가 제격이다.

태백 재래시장에 가면 커다란 국수기계 같은 순대기계가 있다. 커다란 깔대기에 선지와 갖은 재료를 넣고 아래쪽에 돼지창자를 갖다 대면 속이 차면서 순대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보는 것처럼 맛도 있어서 태백시 근방만 가면 꼭 들러 차 안에서 주전부리 삼아 먹곤 한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면 어떤 사람은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도 하고, 나같은 경우는 비내리는 경치를 구경하면 더 좋고... 뜨끈한 국물안주를 즐겨 찾는 편이다.
자, 일잔 하시고오~
 날씨가 꾸물꾸물하면 어떤 사람은 부침개가 먹고 싶다고도 하고, 나같은 경우는 비내리는 경치를 구경하면 더 좋고... 뜨끈한 국물안주를 즐겨 찾는 편이다. 자, 일잔 하시고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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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지긋한 분들과 젊은 사람들이 합방?
 나이가 지긋한 분들과 젊은 사람들이 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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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국물 있는 거 좋아하잖아.'

친구가 얘기하는데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히 날씨가 우중충하면 이런 증상이 더욱 심해지는 것 같다. 그날도 비가 추적여 <종로 설렁탕>에서 전골로 친구와 한잔하려다 갑자기 맘이 바뀌어 바로 옆 <함경도 왕순대>라고 쓰인 집으로 들어갔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지만 군데군데 젊은 사람들도 자리를 꽤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집의 순대탕이라는 음식. 처음에는 이렇게 허연 사골국물이라 별 감흥을 주질 못한다
 이집의 순대탕이라는 음식. 처음에는 이렇게 허연 사골국물이라 별 감흥을 주질 못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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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본 집이라 무얼 시킬지 망설이는데 순대탕을 하나 들어보라 권한다. 이 집 순대탕과 순대전골, 술국의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술국이라는 메뉴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은근히 술맛을 당기게 만든다. 식탁 위 항아리에는 깍두기와 김치가 담겨있고 삼계탕 집처럼 고추장에 절인 마늘이 나온다. 가스불에 올린 전골냄비에는 사골국물에 머리고기와 순대를 넣고 깻잎 등 야채와 고춧가루를 올렸다.

그러나 끓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나 끓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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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끓듯 전골이 끓기 시작하며 허옇던 국물이 뻘개지고 김을 타고 구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국물을 한 숟가락 퍼드니 걸쭉하고 찰기가 느껴지는 국물이 식도를 도포하며 내려간다. 한 국자 퍼서 접시에 담으니 끓는 국물에 머릿고기는 후들후들해지고 순대는 전골용이라 당면이 팽창해서 터져 나오기 직전인데 입안에 넣으니 쫀득쫀득해서 선지맛 보다는 씹는 맛이 강조된다.

물렁뼈가 박힌 귓살
 물렁뼈가 박힌 귓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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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쉰'세대가 되어 버렸지만 아이들과 밥을 먹으면 갈비 골막, 닭뼈 관절, 닭날개, 목뼈, 먹기도 그렇고 안 먹기도 그렇다는 계륵, 생선구이 껍질 등, 내가 좋아하는 부위는 전부 먹는 둥 마는 둥 침칠만 해놓고 접시 위에 올려놓으니 뭐라 그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애비란 사람이 궁상맞게 남의 접시에 먹다 남은 것을 집어 먹을 수도 없으니 아깝긴 하지만 그저 마당에 강아지나 포식하도록 좋은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요샌 삼계탕집에서도 이런 마늘을 잘 주질 않아 나를 섭섭하게 한다
 요샌 삼계탕집에서도 이런 마늘을 잘 주질 않아 나를 섭섭하게 한다
ⓒ 이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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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탕에 들어간 순대. 당면이 주재료다. 국물에 불어 '난닝구' 사이로 삐져나온 뱃살처럼 탱글탱글하다
 순대탕에 들어간 순대. 당면이 주재료다. 국물에 불어 '난닝구' 사이로 삐져나온 뱃살처럼 탱글탱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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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시킨 모듬순대의 순대, 흐트러져도 이게 좋지!
 따로 시킨 모듬순대의 순대, 흐트러져도 이게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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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고기에도 이런 부분이 있는데 순대집에 가서 물렁뼈가 들은 귓살을 달라하면 어떤 집에서는 아예 취급을 안 하는 곳도 있어 황당할 때도 있다. 비가 와서 술이 잘 들어가는 건지 술이 안주를 부르는 건지 건더기가 점점 줄어들어 모듬순대를 시키니 전골순대와는 다른 선지가 더 많이 든 순대를 가져온다. 함께 나온 머리고기에는 술맛을 돋게 만드는 물렁뼈가 든 귓살이 푸짐하게 들어있어 그거 달라고 더 이상 궁상떨지 않아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흡족하다.

따로 시킨 모듬순대. 귓살과 순대를 더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시키면 순대가 한줄밖에 안나온다
 따로 시킨 모듬순대. 귓살과 순대를 더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시키면 순대가 한줄밖에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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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까지 넣어서 마지막 국물까지 빡빡. 사리를 시키면 사골국물에 면을 넣어 부어준다
 사리까지 넣어서 마지막 국물까지 빡빡. 사리를 시키면 사골국물에 면을 넣어 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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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닥.다.리.즈.포.토.갤.러.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종로2가맛집, #함경도왕순대, #순대탕, #피맛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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