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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내게는 임무가 있었다. 세상에 어둠이 내리기 전, 빛을 준비하는 일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났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그것은 나를 꽤 귀찮고 성가시게 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빛으로 어둠이 환히 밝혀지면 제법 어깨가 으쓱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남포등을 보자, 어린시절이 떠울라 반가웠다.
▲ 남포등 남포등을 보자, 어린시절이 떠울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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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룩스 안에 있는 조명박물관
▲ 조명박물관 필룩스 안에 있는 조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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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준비한 빛이란 바로 남폿불. 남폿불이 나오기 전에는 등잔이 있었지만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등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게 했다, 위험하다고. 등잔은 주둥이가 뾰족하게 위로 올라와 있는 하얀 병이었다. 병에 석유를 넣고 주둥이에 심지를 꽂으면, 심지는 석유를 빨아들여 늘 같은 모양의 빛으로 주위를 밝혀주었다.

그러나 등잔은 불빛이 약한데다 그을음이 나고, 또 바람이 불면 곧잘 꺼졌다. 그래서 단점을 보완해 나온 게 남포. 남포는 등잔보다 크면서 불을 유리병 안에 넣게 돼 있어 그을음도 안 나고 바람이 불어도 끄떡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유리에 묻은 그을음을 닦아내고 심지를 올려 불을 붙였다. 

등잔, 관솔, 횃불...
▲ 인류와 함께 한 빛 등잔, 관솔, 횃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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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옛날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이라고 해도 곧이 들을 만큼 까마득한. 불현듯 남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 건 양주에 있는 조명박물관이었다. 조명 박물관이라면 전기로 만들어 낸 온갖 빛을 말하는 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전기뿐 아니라 인류가 맨 처음 사용했을 관솔에서부터 빛이 걸어온 역사가 몽땅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아주 다양한 빛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 조명의 역사 아주 다양한 빛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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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사용해야 하니 에디슨도 한 자리...
▲ 에디슨 발명품 전기를 사용해야 하니 에디슨도 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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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인간이 가공한 빛이라면 전기를 빼놓을 수 없으니 발명가 에디슨이 등장하고, 얼마전까지도 동네마다 자리 잡고 있었던 전파사도 있다. 더구나 요즘은 조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쓰임새도 광범위해졌다. 미술관이나 영화관 같은 문화공간에서부터 학교나 학원, 병원, 그리고 우리가 매일 먹고 자는 집까지. 정말 조명은 어둠이나 밝혀주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모든 사물이나 개체를 한층 빛나게 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감성조명 체험관으로 가는 길의 조명
▲ 감성조명 체험관 감성조명 체험관으로 가는 길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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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현관과 주방의 조명...
▲ 아파트 아파트 현관과 주방의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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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이야말로 조명의 역할이 중요하다.
▲ 미술관 미술관이야말로 조명의 역할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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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박물관은 '필룩스'라는 조명을 만드는 회사 안에 있다. 1층은 조명역사관과 기획전시장, 조명 아트관 등으로 꾸며져 있고 지하층은 감성 조명 체험관이다. 1층을 다 둘러보고 지하로 내려가자 제일 먼저 화려한 크리스마스 관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마치 진짜 크리스마스인 것처럼 울긋불긋 화려한 조명이 춤추고, 캐롤이 울려 퍼지고 하얀 눈속처럼 눈사람과 사슴도 있었다. 이곳은 4계절 크리스마스인 셈이다.

사계절 크리스마스인 체험관...
▲ 크리스마스 체험관 사계절 크리스마스인 체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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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는 모델하우스 같은 아파트가 있고, 침실은 편안한 조명이, 주방은 생동감 있는 조명이, 은은하게 흐르고 있다. 병원도 있고, 미술관도 있고, 교실도 있고. 각각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감성 조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늘 우리 곁에 있지만 고마움도 또 어떤 역할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는 지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직접 와서 보니 놀라웠다. 어떤 곳도 조명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바로 밖에는 야외 공연장이 있어 따뜻한 날에는 산책을 해도 좋을 것 같다.
▲ 야외 공연장 바로 밖에는 야외 공연장이 있어 따뜻한 날에는 산책을 해도 좋을 것 같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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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둘러보고 휴게실에 앉았다. 휴게실도 꽤 넓었다. 소파도 있고 탁자도 있고 편안한 조명도 있었다. 아직 소문이 나지 않아서인지 너무 한산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른들은 추억을 떠올리면서 조명의 쓰임새에 대해 생각해보고, 아이들은 전기가 우리에게 와서 어떤 고마운 존재가 되었는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하는 분명 좋은 놀이 공부가 될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양주시청 사거리에서 법원리 방면 진입-직진 15분 정도-우정식당 왼쪽 길 진입-직진 1분-필룩스 본사 진입



태그:#남포, #등잔, #전기, #조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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