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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그 마지막 장을 덮으며 오주석 선생이 아깝고 존경스러워 이런 인물을 왜 그토록 일찍 하늘나라로 불렀는지 정말로 하느님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소설책 아닌 인문 교양서 그것도 우리 옛 그림 감상하기 지도서가 너무 재미있어 수시로 낄낄대며 책을 손에 놓기 싫어 밤잠까지 설쳐가며 완독한 적은 내 머리털 나고 처음 있는 일 아닌가.

유홍준 교수 박물관장 내정에 가차없이 반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사진 좀 잘 찍으면 오죽 좋아...흑흑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사진 좀 잘 찍으면 오죽 좋아...흑흑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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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이란 미술사학자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대두되자 격렬한 반대의견이 터져 나왔을 때였다.

그 전까지 나는 그가 우리 주변에서 우리문화 전문가로는 최상급에 속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 상당히 놀랐는데 그 중에서도 생전 처음 그 이름을 들은 '오주석'의 반대이유가 가장 놀라웠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은 한마디로 유홍준이란 인물은 박물관장 감이 아니라는 것이다.

박물관을 운영할 만큼의 전문성과 능력도 떨어지거니와 여태껏 나온 책 중에도 여러 군데 오류가 많아 자신이 추천서를 써 줄 수 없을 정도인 인물이란 것과 함께 인품까지 거론해 놀람을 넘어 충격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토록 적나라하게 그것도 그 분야 직속 선배인 인물을 가차 없이 난타할 수 있을까? 얼마나 자신만만 하기에. 나는 은근히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그래서 검색한 것이 '오주석'이란 인물이다.

간단한 프로필을 보자니 쟁쟁하기는 했다.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대학원에서는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한 전통파. 게다가 기자, 호암미술관, 국립박물관 학예연구원에 내가 즐겨 찾는 간송미술관 연구위원. 그 분야의 주요 부분은 다 거친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옛 선비를 연상케 할 만큼 깐깐한 간송미술관 '최완수 선생' 사단일 정도면 얼핏 생각해도 고미술사학자로서의 실력은 상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사 본 것이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이다. 미술에 대해선 까막눈인 내가 괜히 보는 것이 좋아 미술관 순례를 한 지가 꽤 됐다. 마네, 모네, 고흐... 유명한 서양화가 전시회엔 전라도 촌구석에서 비싼 차비까지 들여가며 감상을 하는 극성을 떨었고 봄, 가을 간송 미술관 전시회도 거의 빠지지 않고 보기는 봤다.

그런데 감상 수준은 사람에 떠밀려 "아, 이 그림이 그 유명한 아무개 화가의 작품이네, 좋긴 좋구나"처럼 완전히 그림 상식을 익히는 정도의 수준이었고 또 돌아서면 잊어 버렸다. 이렇게 무식한 나에게 그림은 이렇게 감상하는 것이란다, 자상하고도 알기 쉽게 가르쳐 준 사람이 오주석 선생이다.

우리 옛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한다. 그리고 감상법은 첫째, 회화의 크기 대각선 길이나 아니면 그 1.5 배 정도 떨어져 감상해야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공책만한 크기는 코앞에서 찬찬히 봐야 하고, 병풍 같이 커다란 작품은 멀찍이 떨어져 볼 줄 아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옛 그림을 볼 때는 그림 위 우측에서 아래 좌측으로 이렇게 사선으로 쓰다듬듯이 감상해야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단다. 가로쓰기를 해서 가로가 긴 서양과 달리 우리 선조들은 세로가 긴 세로쓰기를 했기 때문에 회화나 글씨도 당연히 우상에서부터 시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세 번째, 그림을 찬찬히 오래 보라는 것이다. 사람을 만났을 때도 악수만 하고 건성 얼굴을 쳐다본다면 나중에 그 사람의 이목구비의 특징이 어떤지 기억이 나겠는가. 하물며 그림이야.

찬찬히, 오래 봐야 그림의 스토리와 환경은 물론 그 그림 속의 주인공의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우리 역사를 알면 그 시대상과 화가가 왜 이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이유까지 알 수 있다고 하면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며 자기가 봐서 그저 좋은 그림은 연인을 만난 듯 보고 또 보라고 했다.

단원 김홍도의 연구가로 김홍도가 너무 좋아 꿈속에서도 만날 정도였다던 오주석은 <한국의 미 특강>에서 주로 단원의 작품을 조목조목 예로 들며 제대로 된 옛 그림 감상법을 강의했다.

김홍도 그림 설명하는데 기가 막히게 설명하더라

<해탐노화도> 단원의 덕담 대로 이 그림을 받은 유생은 과거에 합격했을까?
 <해탐노화도> 단원의 덕담 대로 이 그림을 받은 유생은 과거에 합격했을까?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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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 단원의 '해탐노화도' 게 두 마리가 갈대꽃에 엉겨 붙어 게거품을 물고 있는 소품인데 이 그림은 우리 집과도 인연이 깊다. 몇 년 전인지 가물가물한데 어느 날 남편이 어떤 신문에 난 것을 복사했다며 그림 한 점을 표구해 들고 들어왔다.

원작품도 아닌 싸구려 복사품이라 하찮게 생각해 그 그림을 주방 싱크대 벽면에 걸어놓고 설거지 할 때나 음식을 만들 때나 시도 때도 없이 식구 쳐다보듯 올려다봤는데 바로 그 작품의 해설자가 오주석 선생이었던 것이다.

남편은 '오주석'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그 해석을 복사해서 아이들과 나를 앉혀놓고 열강을 했고 그것도 모자라 잔뜩 복사한 그림 해설서를 우리집에 오는 사람마다 나눠주며 단원의 '해탐노화도' 해석에 열을 올려 온 손님들 눈치 보느라고 나를 쩔쩔매게 했다.

게 두 마리가 마주 보며 갈대꽃을 꽉 끌어안고 있는데 한 마리는 발라당 뒤집혀 게거품을 물면서도 놓지 않고 있는 그림은 과거에 꼭 합격하라는 덕담의 의미란다.

갈대꽃 '로'자는 과거에 합격한 선비한테 임금이 하사하는 고기 '려'자와 발음이 비슷해 갈대꽃을 꼭 붙드는 것은 과거 합격을 의미하고 게 두 마리는 소과, 대과 두 과 다 합격하라는 뜻이라나.

게다가 딱딱한 게딱지를 한자로 쓰면 '갑'이니까 갑은 '갑을병정...' 중 첫 번째 글자라 과거 합격도 그냥 합격이 아니라 장원급제하라는 덕담이니 선물 받은 사람이 정말 행복했겠다.

그런데 그림도 그림이지만 우리 남편을 뿅~가게 만든 건 그림 위에 써진 단원의 '화제'였다. 원래 한자엔 무식하다만 휘갈겨 써 더 알아먹지 못하게 만든 단원의 화제 "해룡왕처야횡행"를 풀이하자면 "용왕님 앞에서도 나는야 옆으로 걷는다"란다.

즉 과거급제를 해 고관대작이 되어도 임금님 앞에서 바른 소리만 하라는 꼿꼿한 선비 정신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니 단원의 기개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조상은 이 조그만 종이 하나에도 이렇게 깊은 뜻을 담을 줄 아는 멋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림 통해 당시 상황 소상히 추리

단원의 <씨름> 엿판을 든 엿장수가 제일 신나 보인다.
 단원의 <씨름> 엿판을 든 엿장수가 제일 신나 보인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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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지정된 단원의 풍속화집 속에 있는 씨름의 각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는데 기가 막혔다. 용을 쓰고 있는 씨름꾼 두 사람을 중앙에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관전에 열심인 관중들. 시선이 모두 중앙을 향했는데 관중 개인마다 표정과 앉음새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우선 주인공 씨름꾼을 보자면 어떤 이가 승기를 잡았고 곧 어느 쪽으로 메다꽂을지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벗어놓은 씨름꾼의 신발을 보아 하니 한 쪽은 짚신이고 한 쪽은 가죽신이라 신분차이가 분명한데 입성으로 보아 소매가 짧고 헐렁한 앞 사람, 즉 승자가 짚신 주인이란 소리다.

구경꾼 중에도 눈빛이 초롱초롱한 소년에서부터 인자한 눈빛에 기운이 없어 뵈는 노인, 그중에 무릎에 깍지를 끼고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두 사람을 보니 그 다음 후보 선수가 틀림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리가 저린 듯 슬그머니 다리를 뻗고 있는 사람을 보니 씨름판이 꽤 오래 되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요즘 씨름은 꼭 샅바를 사용하던데 단원의 그림에선 샅바가 없어 씨름도장에 물어봤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림 속의 씨름은 지금은 전승되지 않는 '바씨름'이라고 해서 한양이나 경기도 일원에서 했던 씨름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씨름 속의 배경이 어느 지방이었던 것까지 알 수 있고, 관중 중에 부채를 든 사람이 있는 것으로 봐 계절은 아마 모내기를 끝낸 단오절 무렵이었을 것까지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원의 풍속첩 중 <무동> 춤사위가 사진 같다.
 단원의 풍속첩 중 <무동> 춤사위가 사진 같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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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동'을 통해서는 우리 춤사위뿐만 아니라 그림 속에 표현된 악사들을 통해 옛 음악 '삼현육각'을 설명해줬다. 즉 잔치에서 빼놓지 않는 악기로는 북, 장구, 피리 둘(굵은 향피리, 가는 세피리) 대금, 해금을 삼현육각이라고 하는데 흥겨운 장단과 가락에 맞춰 내리 꽂았다가 다시 튀어 오르는 듯한 옷소매를 표현한 각도와 주름선. 오른 발을 깡총 들어 올려 무동의 신명난 춤동작을 탄력적인 붓질 하나로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단원이란 천재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이다.

숙종, 영조 때의 문신 '이재' 초상화로 전해지는 작가 미상의 전 <이재 초상>을 오주석은 이재의 손자 '이채'의 초상화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숙종, 영조 때의 문신 '이재' 초상화로 전해지는 작가 미상의 전 <이재 초상>을 오주석은 이재의 손자 '이채'의 초상화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했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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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그림, 램브란트 못지 않은데...' 한탄

저자가 '인류 회화를 통해 최정상급 초상화'라고 경탄하고 경탄했던 작가 미상의 전 <이재 초상>. 작가는 극사실화로 그려진 '이재' 영감의 초상화를 보며 인물의 외면은 물론 눈빛을 통한 성격과 인품까지, 아니 마르고 주름진 피부결을 보아 주인공의 나이와 병색까지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탄을 했다. 서양화가 램브란트 작품은 4000억 원을 호가하는데 그보다 수백 배나 뛰어난 우리 옛 그림은 고작 수억 원 정도란다. 그러면서 "문화재의 값은 그 문화재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후손들이 얼마나 잘 사는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기 문화를 사랑하는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그리고 그렇게 찬탄한 작가 미상의 전 <이재 초상>과 이후 역시 작가 미상의 이재의 손자 <이채 초상>을 비교하면서 얼굴과 눈빛과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보면 틀림없이 두 인물이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아무리 같은 인물일 것이라고 주장해도 동료들이 믿어주질 않으니까 확인을 위해 해부학을 전공한 학자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도 모자라 그림을 보고 "지금 그림 속사람은 간암 말기 진행 중이다"라고 진단을 내릴 만큼 세계 의학계에서 알아주는 피부과 의사에게 감식을 의뢰했더니 두 사람 의견 모두 틀림없이 같은 인물이라는 평을 내더란다.

같은 인물인데 <이채 초상>을 보아하니 주인공 얼굴의 탄력으로 보아 10년 전쯤 젊었을 때 그려졌을 그림인 것 같고 전 <이재 초상>의 인물은 그보다 더 늙어 병색이 짙어져 피부색과 검버섯이 검어지고 눈 꼬리 아래 노인성 지방종이 더 도톰해졌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단원의 <송하맹호도> 오주석은 단원의 '조선호랑이' 그림을 초국보급이라고 극찬했다.
 단원의 <송하맹호도> 오주석은 단원의 '조선호랑이' 그림을 초국보급이라고 극찬했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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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로 전해지는 단원의 화첩은 사실 대중용으로 정성을 다 해 그린 그림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붓질 몇 번으로 때로는 흥취가 도도한 순간에 쓱싹쓱싹 그려진 그림이 많고 인류 회화 최정상급 명작 '이채 초상'처럼 단원, 아니 세계 통틀어 불후의 명작으로 불릴 만한 단원의 명작은 우리나라 토종 호랑이의 용맹을 유감없이 그려낸 <송하맹호도>라고 작가는 단언했다.

우리 조상이 남기신 위대한 문화유산을 사랑하고 알기 위해 평생 혼신을 다해 공부한 학자. 우리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역사는 물론 주역공부까지 게을리 않고 작품 속의 내용을 확실히 알고 싶어 그 분야 전문가 즉 목수, 씨름꾼, 의사, 악사 등 가리지 않고 쫓아 다니며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부지런한 미술사학자 오주석.

우리가 이유 없이 하대하는 우리 문화. 서양화와 서양음악에만 열광하는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에게 섭섭함과 안타까움을 책 행간 행간에 한숨 쉬듯 털어놓을 만큼 지독하게도 우리 문화유산을 많이 사랑했던 사람.

자식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책을 꼽으라면 단연 나는 '오주석 선생'의 저서들을 권하겠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년 내 인생 최고의 책' 응모글



태그:#오주석, #우리 옛그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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