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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먹었다는 이른 바 ‘대통령 막걸리’ 제1호로 손꼽히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100% 쌀로 빚는다
▲ 산성막걸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먹었다는 이른 바 ‘대통령 막걸리’ 제1호로 손꼽히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100% 쌀로 빚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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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막걸리'는 부산 산성막걸리이다. 금정 산성토산주라고도 불리는 산성막걸리는 혀를 톡 쏘는 신맛보다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깊어 사람들에게 인기가 아주 좋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먹었다는 이른바 '대통령 막걸리' 제1호로 손꼽히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100% 쌀로 빚는다. 알콜도수는 8~10도이며, 보존기간은 10일.

그래서일까. 산성막걸리는 경기도 포천 이동막걸리, 제2대 '대통령 막걸리'인 경기도 고양 배다리막걸리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막걸리로 손꼽히고 있다. 이 세 막걸리 가운데 1등을 뽑으라면 산성막걸리를 내세우고 싶지만 딱히 어느 막걸리가 '대한민국 1등 막걸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 그날 입맛과 취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배가 고플 때 마시는 막걸리 맛과 배가 부를 때 마시는 막걸리 맛이 어디 같겠는가. 비가 오는 날 마시는 막걸리 맛과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 마시는 막걸리 맛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음식도 마찬가지겠지만 막걸리도 마시는 시간과 분위기, 장소 등에 따라 그 맛이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막형은 '대한민국 1등 막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셔보고 2/3 이상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막걸리여야 한다고 여긴다. 근데, 산성막걸리나 이동막걸리, 배다리막걸리는 마셔본 사람들 가운데 2/3가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막걸리이니 감히 누가 1등이며, 누가 2~3등이라는 그런 판정을 어찌 내릴 수 있겠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먹었다는 이른 바 ‘대통령 막걸리’ 제1호로 손꼽히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100% 쌀로 빚는다
▲ 산성막걸리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먹었다는 이른 바 ‘대통령 막걸리’ 제1호로 손꼽히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100% 쌀로 빚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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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주전자에 따라 먹어야 제 맛이 나지예"

"산성막걸리는 지하 182m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어예. 이 물맛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산성막걸리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맛을 낼 수 없지예."
"그래요. 저도 부산에 있을 때 산성막걸리를 자주 마셨었는데 그 맛이 그 맛이던데요?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마셨다 해서 괜히 난리법석을 피우는 건 아닌지나 모르겠네요."

"산성막걸리는 예로부터 맛좋기로 유명했지만 일제 때 더욱 알려져 금정산성에서 누룩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드느냐 그 차이에 따라 부산 동래를 비롯한 동부 경남 일원의 곡물 값이 올랐다 내렸다 할 정도였지예. 산성막걸리가 그만큼 맛이 독특하고 좋으니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겠어예."

지난 3월 끝자락, 애인 입술을 닮은 빠알간 동백과 젖빛 목련이 곱게 피어나고 있는 봄날 저녁, 부산에 살고 있는 후배 노병일(48)을 앞세우고 찾은 산성막걸리 전문점 '산성진아집'을 찾았다. 이 집은 온천시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 온천장 홈플러스 앞 203번 종점에서 내리면 그 옆에 마치 길가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처럼 허름한 모습으로 쭈그리고 앉아 있다.

흑염소, 생오리, 옻닭, 파전, 순두부, 칼국수 등을 산성막걸리와 함께 팔고 있는 이 집 주인 하영순(63)씨는 "산성막걸리는 전통 양조방식을 그대로 일체의 인공재료는 사용하지 않는 자연 발효주이며, 우리나라 많은 막걸리 중에서 유일하게 향토민속주로 지정되어 있다"며 "금정산성부락 30여 가구가 산성막걸리의 본산지"라고 귀띔한다.

하씨는 "산성막걸리는 그 유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선 초기부터 이곳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며 "금정산성마을은 평지보다 기온이 4도 정도 낮아 여름 휴식처로 이름난 곳이며, 250년 역사를 지닌 산성막걸리는 전국에 널리 알려져 염소 불고기와 함께 이 마을의 명물"이라고 자랑했다.

알콜도수는 8~10도이며, 보존기간은 10일
▲ 산성막걸리 알콜도수는 8~10도이며, 보존기간은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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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막걸리 향과 구수한 깊은 맛이 참 좋지예"

"여기, 산성막걸리 두어 병하고 도토리묵 한 사발 주세요."
"하긴, 백번 입으로 떠들어대모 뭐합니꺼. 한번 묵어봐야 제 맛을 알지예."

하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니 어느새 산성막걸리 두 병과 밑반찬을 식탁 위에 주섬주섬 올린다. 밑반찬으로 나온 깍두기와 부추무침, 호박나물, 된장, 풋고추, 열무김치가 참 맛깔스럽게 보인다. '박정희 대통령 막걸리'라 불리는 부산 산성막걸리는 초록색 플라스틱 병에 든 서울 장수막걸리와는 달리 하얀 플라스틱 병에 들어있는 것이 눈에 띈다.

수저로 부추무침 조금 찍어 맛을 보고 있는데 하씨가 도토리묵과 덤으로 두부김치를 들고 다가와 "막걸리는 주전자에 따라 먹어야 제 맛이 나지예" 하며 산성막걸리 두 병을 찌그러진 노오란 양은주전자에 따르며 맞은편에 앉는다. 내친 김에 자신에게도 산성막걸리 한잔 따라달라는 투다.

"금정산성마을에는 한번 올라가 보셨어예?"
"그럼요. 4~5번은 간 것 같은데요. 그때 여름에 산성마을에 가니까 여기 저기 나무 그늘 아래 앉은 등산객들이 산성막걸리에 도토리묵과 파전을 먹느라 정신줄을 놓은 것 같던데요. 저도 그렇게 앉아 산성막걸리를 두 주전자나 마시다가 까빡 취해 겨우 산을 내려왔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네요." 

"산성막걸리는 누룩 질이 전국에서 으뜸인데다 금정산에서 나는 옥수로 술을 빚기 때문에 은은한 막걸리 향과 구수한 깊은 맛이 참 좋지예. 어서 드셔 보이소."

금정산 도토리로 만든 묵 한 점 입에 넣자 씹을 틈새도 없이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 도토리묵 금정산 도토리로 만든 묵 한 점 입에 넣자 씹을 틈새도 없이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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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지는 봄노을처럼 얼굴 발그스레하게 물들이는 산성막걸리

하씨가 사발에 따라주는 산성막걸리 한 잔 입에 대자 혀끝을 살짝 건드리는 신맛과 함께 달착지근 은근하게 달라붙는 깊은 감칠맛이 끝내준다. 알콜도수가 8도여서 그런지 한잔 쭈욱 들이키고 나자 속이 찌르르해지면서 은근한 술기가 얼굴을 금정산성 뒤로 뉘엿뉘엿 지는 봄 노을처럼 발그스레하게 물들인다.

다람쥐가 건드리기에 앞서 잽싸게 사람들이 주워낸 금정산 도토리로 만든 묵 한 점 입에 넣자 씹을 틈새도 없이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산성막걸리와 도토리묵, 참 잘 어울린다. 부드럽게 혀를 툭툭 치는 신맛과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잘 어우러진 산성막걸리를 마시고 난 뒤 약간 텁텁한 입속을 도토리묵이 들어가 깔끔하게 청소를 해주는 것만 같다.

"산성막걸리는 알콜도수가 높기 때문에 빨리 취하는 것 같지만 도토리묵이나 파전과 함께 먹으면 달착지근한 취기가 은근하게 올라오는 기 참 좋지예. 산성막걸리는 좀 많이 마셔도 그 다음날 머리가 아프다거나 속이 아프지 않은 기 특징이라예."

"그래도 알콜도수가 조금만 더 낮았으면 훨씬 더 많이 마실 수 있을 것을. 산성막걸리 두어 병 먹고 나니 얼굴에만 봄 노을이 지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봄 노을에 포옥 빠져드는 것 같구먼."

산성막걸리는 숙종 32년, 서기 1706년에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쌓을 때 전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중참으로 마시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 산성막걸리 산성막걸리는 숙종 32년, 서기 1706년에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쌓을 때 전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중참으로 마시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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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민속주 제1호 부산 '산성막걸리'

안내자료에 따르면 산성막걸리는 숙종 32년, 서기 1706년에 왜구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쌓을 때 전국 곳곳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와 중참으로 마시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 자료에는 "이때 성을 쌓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징발된 사람들이 산성막걸리 맛에 포옥 빠져 성을 다 쌓은 뒤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적혀있다.

산성막걸리는 그 뒤부터 한반도 곳곳으로 널리 알려졌고, 일제강점기 때에는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그 이름을 빛냈다. 산성막걸리는 1960년부터 정부에서 누룩 제조금지를 내려 한때 밀주로 단속을 받기도 했으나 금정산성마을 주민들은 단속을 피해 산성막걸리를 빚으며 실핏줄을 이어갔다.

그 뒤 1970년에 접어들면서 전통민속주 제도가 생겼고, 부산 산성막걸리가 민속주 제1호 자리를 꿰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식량이 모자라 쌀로 빚는 막걸리를 없앤 뒤 그 스스로 산성막걸리가 너무 그리워 쌀로 빚는 전통민속주 제도를 다시 만들어 부산 산성막걸리를 즐겨 마셨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니할 수 없다.   

연분홍빛 봄 노을과 봄 노을처럼 얼굴을 발그스레하게 물들이는 산성막걸리에 포옥 젖는 봄날 저녁. 금정산 계곡 곁에 다슬기처럼 붙어있는 작고 허름한 목로주점에 앉아 산성막걸리를 마시고 있으면 봄 노을이 산성막걸리에 취한 것인지, 산성막걸리가 봄 노을에 취한 것인지. 나그네가 봄 노을에 취한 것인지, 산성막걸리에 취한 것인지. 통 알 수 없이 알딸딸하기만 하다.

산성막걸리 빚는 법
누룩에 곰팡이가 피면 공기창을 열고 누룩이 마른 다음 곰팡이를 제거한다. 15일 정도  소요.
▲ 산성막걸리 누룩에 곰팡이가 피면 공기창을 열고 누룩이 마른 다음 곰팡이를 제거한다. 15일 정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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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정산에서 나오는 맑은 물에 밀을 깨끗이 씻은 뒤 부셔서 발로 밟는다.
2. 누룩틀에 넣어 동그랗게 형태를 만든 다음 누룩집에 넣어 실내온도 48~50도에서 띄운다.
3. 누룩에 곰팡이가 피면 공기창을 열고 누룩이 마른 다음 곰팡이를 제거한다. 15일 정도  소요.
4. 쌀로 고두밥을 지어 식힌 뒤 누룩과 버무려 물을 섞어 발효탱크에 저장한다. 이때 쌀 140kg에 누룩 80kg, 물은 약 10말 정도 비율로 하는 것이 좋고, 고두밥은 덩어리 없이 누룩과 버무려 눌러 20도 이상 온도에 저장한다.
5. 일주일 뒤 술을 걸러 병에 담는다. 이때에도 하루 정도 지나면 술이 발효되기 시작하지만 완전히 숙성된 술을 거르려면 일주일 정도 지나야 한다.


태그:#전통민속주 제1호 부산 ‘산성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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