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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佛家)에는 고승대덕(高僧大德)의 우화(寓話)가 즐비하다. 중국 단하(丹霞) 선사가 목불(木佛, 나무로 만든 부처님)을 불쏘시개로 쓴 일화도 그중 하나다. 최근 속가(俗家)에서 뉴스의 중심인물이 된 명진(明眞·60) 스님도 대중 법회에서 이 우화를 즐겨 인용하곤 한다.

단하 선사가 추운 겨울 어느 날 병든 도반(道伴)을 이끌고 혜림사(慧林寺)라는 절을 찾았다. 그런데 주지 스님 방은 쩔쩔 끓는데 객승 방은 냉골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병든 도반이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선사는 불을 지피려 한밤중에 밖에 나왔지만 마땅한 불쏘시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법당 안에 들어갔다가 목불을 발견하고는 마당에서 도끼로 팍팍 쪼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단하 선사의 우화, "어느 것이 진짜 부처냐?"

명진 스님.
 명진 스님.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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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끔찍한' 광경을 지켜본 행자는 총알같이 주지에게 달려가 고했다. 그 귀하신 부처님을 도끼로 쪼개 땔감으로 쓰고 있으니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주지가 소리쳤다. "야, 이 땡중아! 부처님을 땔감으로 쓰는 놈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그러자 선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부처님을 땔감으로 쓴 게 아니고 사리(舍利)를 찾으려고 화장(火葬)한 겁니다."

더 화가 난 주지는 단하 선사의 목을 움켜잡고 소리쳤다. "이 미친놈아! 나무에서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

그러자 선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부처가 아니네, 뭘!"

명진 스님은 이 우화를 들려주면서 대중에게 이렇게 묻는다.

"목불(木佛)은 불을 못 이기고, 니불(泥佛)은 물을 못 이기고, 금불(金佛)은 용광로를 못 이기니 어느 것이 진짜 부처냐?"

'표'와 '돈'은 정치와 불교의 '약한 고리'

한국 불교는 전통 문화재의 보고(寶庫)다. 국보와 보물 같은 국가 지정 문화재 통계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국보(307종)의 56.4%, 보물(1469종)의 65.1%가 불교 문화재다. 쉽게 말해 한국의 국보와 보물 열 개 중에 예닐곱 개는 불교 문화재라는 얘기다.

전통 문화재의 유지 관리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불교 문화재의 태반이 화재와 풍화에 취약한 목재 문화재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불교는 문화재를 유지 관리하는 데 적지 않은 예산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그것이 정치에 대한 불교의 '약한 고리'다.

종교에 대한 정치의 약한 고리는 '표'다. 신도들은 정치인의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지만, 교주의 말은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기적'이라며 믿는 경향이 있다. 당연히 종교 지도자의 말씀은 유권자인 신도들에게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인들이 대형교회와 큰절의 행사를 찾는 이유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정치와 종교 사이에 '돈'(예산 지원)과 '표'가 거래되는 '공생' 관계가 성립한다. 지난해 11월 1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고흥길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그리고 신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3인의 서울 프라자호텔 조찬 회동이 마련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과 종교 간 공생의 한 양식이었다.

그 자리를 주선한 사람은 전임 지관 총무원장의 종책특보였던 김영국(현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씨다. 김 위원은 23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그 자리를 주선한 의도와 역할을 이렇게 밝혔다.

11월 13일 '3인 조찬회동'에서 무슨 말이 오갔나

"종책특보는 불교계와 행정부, 정당 간 정책현안을 조정, 조율하고 협의하는 일을 한다. 그날 자리도 그런 자리였다. 불교는 대한민국 문화재의 60%를 갖고 있다. 불교가 의도하지 않게 국가 법령으로 지원도 받지만, 제한도 받는다. 우리 불교가 정부 문화재 정책만큼은 대등한 위치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해서 마련한 자리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가 주선하고 배석한 그날 그 자리 3인 조찬회동의 '그림'이 훤히 그려진다.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한 김 위원은 재학 중에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대불련) 중앙회장을 지냈다. 그 뒤로 동국대 출신인 서석재 의원 보좌관을 거쳐 손학규 의원 보좌관, 한나라당 부대변인, 국회 문방위 소속인 고흥길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굳이 정치적 성향을 따지자면 '친한나라당' 인사다.

그러니 '총무원장 종책특보' 직함을 가진 김씨가 조계종 총무원과 정치권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가 주선한 불교계와 정치권의 '정책 현안'은, 양측의 해명에서도 일치하듯, 관광객들이 절에서 숙박하며 사찰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템플 스테이'(Temple stay) 사업이었다.

'템플 스테이'는 정부와 불교의 '공생 사업'이다. 한국관광공사는 2008년부터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과 함께 템플 스테이를 한국의 대표 관광문화상품으로 육성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템플 스테이를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 선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템플 스테이 사업이 문화국가 이미지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국민들의 건전한 여가문화 조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로서는 관광수입을 늘릴 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가생활을 풍요롭게 하고, 불교계는 사찰문화 체험을 통해 불교에 대한 관심을 증대할 수 있으니 템플 스테이는 그야말로 '1석3조' 사업이다. 그러나 템플 스테이를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수행 도량인 전통 사찰에 숙박 및 주차장 같은 편의시설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이 사업의 콘텐츠에 해당하는 문화재 보존관리에 대한 정부의 예산 및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

김영국 조계종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 2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명진 스님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배석했다"고 말하고 있다.
 김영국 조계종 총무원 불교문화사업단 대외협력위원이 23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해 명진 스님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배석했다"고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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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의원 '1호 제정법' 문화재보호기금법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의 예산 지원은 늘 '시혜적'이다. 김 위원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불교가 정부 문화재 정책만큼은 대등한 위치에서 조정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예산 지원을 '우는 아이 젖 주기' 식이 아니라 법으로 제도화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 문화유산의 태반이 불교 문화재이기 때문에 불교 문화 원형을 발굴해 정리하는 작업은 포교의 성격을 넘어 공공재의 성격을 갖는 문화 자원적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불교계의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치권의 주도로 전국 국립공원을 무료로 개방했지만, 국립공원 내의 사찰들이 '문화재 관람료'를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4월 30일 국회를 통과해 올해부터 시행된 문화재보호기금법도 불교계의 숙원사업이 반영된 것이다. 문화재의 효율적 관리 및 보존을 위해 기금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이 법은 4선인 박근혜 의원이 처음으로 입법한 '1호 제정법'이다. 이 법은 정부출연금 및 복권기금 전입금, 문화재 관람료 수익금 등으로 5천억 원 상당의 기금 재원을 마련하고, 이를 문화재 보수와 복원, 매장문화재 발굴 등에 사용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예산이 뒷받침되지 않은 모든 법은 '죽은 법'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그 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템플 스테이 사업이 연관된 '종교'와 '관광'이 다 소관 업무다. 그러니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총무원장 스님과 함께 아침공양을 하는 광경은 자연스런 '그림'이다. 문제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왜 그 자리에 합석했냐는 것이다.

그 의문은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의 오랜 친분과 '공생' 관계로 풀린다. 집권여당 원내대표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서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인 두 사람은 '성장 기반'이 같다.

안상수 원내대표와 자승 총무원장, '성장 기반'이 같다

조계종에는 총무원장이 주지를 맡아 관할하는 3개 직영사찰로 조계사 선본사(갓바위) 보문사가 있고, 중앙의 예산을 특별히 분담하는 도선사 봉은사 연주암 내장사 보리암 석굴암 낙산사 봉정암 등 8개 특별분담사찰이 있다. 이번에 사단이 된 봉은사가 직영사찰로 전환됨으로써 직영사찰은 4곳으로 늘고, 특별분담사찰은 7곳으로 줄었다.

직영사찰과 특별분담사찰으로 정하는 첫 번째 기준은 시주금이 많은 '부자 절'이라는 점이다. 영험하기로 소문나 입시철만 되면 불자가 아닌 사람들도 바위에 시주금을 척척 붙이는
대구 팔공산 갓바위가 대표적이다.

총무원 소속 스님과 주지처럼 종단이나 절의 재정과 행정을 관리하는 사판승(事判僧)의 세계에선 '정치력'과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최고다. '정치 10단'이라는 대구 출신 서의현 스님은 선본사와 갓바위를 기반으로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세 번이나 총무원장을 연임했다(이후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밀려나 승려 신분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승 스님은 1994년부터 과천 지역 최대 사찰인 관악산 연주암 주지를 지냈고 과천종합사회복지관 설립자이기도 하다. 자승 스님은 관악산 기슭의 작은 암자에 불과한 연주암을 조계종 중앙예산을 분담하는 특별분담사찰로 키웠고 그것을 기반으로 지난해 11월 총무원장에 선출되었다.

알다시피 안 원내대표는 지난 1996년부터 경기도 과천-의왕에서 내리 당선된 4선 의원이다. 과천종합사회복지관 같은 복지시설을 건립하는 데는 지역구 의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정치과 종교의 공생 관계에 비추어 두 사람 사이에 '표'와 '돈'(예산 지원)을 주고받는 공생관계가 이뤄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와 종교의 현실에 비추어 이런 공생 관계가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표'와 '돈'을 거래하는 '그림'은 안 봐도 비디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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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안 원내대표는 자신이 가톨릭 신자인 점을 들어 그 자리에서 불교계 예산 문제를 논의했을 뿐 다른 말을 주고받을 사이가 아님을 애써 강조했다. 이런 해명은 역설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명진 스님의 말대로 "보통 이상의 관계"임을 입증한다. 불교계 예산을 논의하는 자리라면 가톨릭 신자인 고흥길 문방위원장과 자승 총무원장이 만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결국 봉은사 사태의 본질은 "(불교가 정부 문화재 정책만큼은 대등한 위치에서 조정해야 한다고 해서 마련한) 애초 의도와 달리 안 원내대표가 어울리지 않는 발언을 해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영국씨의 증언에 담겨 있다. 그 '어울리지 않는 발언'은 명진 스님을 '좌파-운동권 스님'으로 지목해 "현 정권에 저렇게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냥 나둬서 되겠느냐"라고 한 것이다. 

이와 관련, 안 원내대표는 23일 "조계종에 외압을 가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이 점에 관해 앞으로 일절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무대응 모드'로 돌아섰다. 총무원은 "외압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그 자리에서 오간 대화 내용은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사실 "종단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안 원내대표의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불교계 사정을 잘 모르는 가톨릭 신자인 안 원내대표가 구체적으로 '봉은사를 직영사찰로 전환해 달라'는 압력을 넣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입신'(10단)은 아니어도 '정치 9단'쯤 되는 경지에 오른 집권여당 원내대표와 총무원장 사이에 그런 압력은 구차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템플 스테이 사업과 문화재보호기금법 법제화에 따른 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안 원내대표가 "(한나라당 '표밭'인 강남) 부자 절의 (좌파-운동권) 주지를 그냥 나둬서 되겠느냐"고 했을 때 이미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은 것이다. 총무원장이 불교계를 대표해 '돈'(예산 지원)을 요청하는 자리에서 집권여당 원내대표가 "좌파 스님을 그냥 놔둬서 되겠냐"고 했다면 '표'와 '돈'을 암묵적으로 거래하는 '그림'이 떠오르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법정 스님 입적한 야단법석의 날에 직영사찰 전환한 까닭은?

그리고 그 자리에 배석한 김 위원은 '자리에 어울리지 않은 당혹스런' 발언을 듣고서 정치권과 불교계를 넘나든 오랜 경험칙상 '불길한 조짐'을 감지했기에 "집권여당 간부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앞으로 스님께서 조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에서 그 직후에 명진 스님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로부터 4개월이 흐른 지난 3월 11일, 하필이면 한국 불교의 큰스님 법정 스님이 입적해 야단법석(野壇法席)인 날에 종단의 의회에 해당하는 조계종 중앙종회는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을 의결했다. 송광사 출신의 종회 위원인 봉은사 부주지 진화 스님이 같은 도반인 법정 스님의 다비식 때문에 의결을 말릴 틈도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다.

종단은 '종법 절차에 의해' 합법적으로 처리했음을 강조한다. 문제는 봉은사의 지위변경을 결정한 종회와 총무원이 지난 4개월 동안 정작 당사자인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들과는 아무런 '소통'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날 그 자리가 정치와 종교의 공생 관계를 넘어선 '밀통'과 '야합'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목불(木佛)의 우화를 속세(정치)의 어법으로 바꾸면, 강도는 합심한 식구를 이길 수 없고, 머슴은 주인을 이길 수 없고, 총무원과 종회는 깨어 있는 신도를 이길 수 없고, 대통령과 국회 역시 그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주권자인 국민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결국 이길 수 없는 것들이 이길 수 없는 것을 이기려 하는 데서 갈등이 시작된다.

명진 스님의 말대로, 갈등이 불거졌을 때 안 대표가 '명진 스님이 대통령을 자주 비판해서 총무원장에게 말려달라고 부탁했을 뿐이지 주지를 사퇴시키려고 압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안 대표는 10년 동안 연주암 선원장을 지낸 명진 스님과 부처님 오신 날이면 한 상에서 공양과 덕담을 주고받았으면서도 "명진 스님을 알지도 못한다"고 잡아뗐고, 자승 총무원장 역시 "외압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두 사람이 자초한 '자승자박'(自繩自縛)을 푸는 길은 '결자해지'(結者解之)뿐이다.

14일 오전 봉은사 법왕루 앞, 대형 전시판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여러 편이 크게 붙어 있다.
 14일 오전 봉은사 법왕루 앞, 대형 전시판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총무원장 자승)이 봉은사를 특별분담금사찰에서 직영사찰로 전환했다는 내용의 신문 기사 여러 편이 크게 붙어 있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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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봉은사, #안상수, #명진스님, #자승, #단하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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