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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표지. 학생의 표정이 섬뜩하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표지. 학생의 표정이 섬뜩하다.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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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역의 작은 모임에 나갔습니다. 여섯 가족의 부모들이 둘러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죠. 사는 곳이 떨어져 있어서 모이려면 서로 한참 차를 타고 나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더불어 부모도 공부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였습니다.

사람들은 한국 교육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공감하고 맞장구칩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토론이 되어 '어떤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결론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교육을 고민하는 이 모임이 지향하는 바는 '작업장 학교'입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노동을 통해서 생산물을 내서 생계에 이용도 하고, 스스로 독립적인 교육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내딛었던 첫걸음이었습니다. 모임에서 책을 같이 읽습니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그 책은 아주 귀한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돈 있는 이들은 자식을 유학을 보내고, 조금 있는 이들은 이사를 해서 좋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모인 학교에 다니게 하고, 평범한 부모들은 애써서 학원과 과외비용을 지원하고, 돈이 없는 부모들은 학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이 지금의 대안인가요.

대안이라고 등장하는 자율형 사립고와 특목고 역시 돈에 의한 순위가 정해지고 계급이 세습됩니다. 돈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지금의 경쟁시스템에서 상위 그룹에 들기는 힘들죠. 알면서도 끌려가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선택할 방법이 있을까요. 돈이 없다면 선택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대안학교가 떠오릅니다. 학교가 초기의 인성과 사고의 '대안'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중평입니다. 게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아서 중산층 이상의 부모들의 경제력이 아니면 다니기 힘든 '귀족학교'라는 비아냥거림도 듣습니다.

두 번째, 공교육 시스템 내에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프로그램의 차별로 성공적 사례로 꼽히는 몇 학교들의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 외곽의 몇 학교와 지방 시골학교들이 등장하고 있죠. 치열해지는 경쟁률과 부모의 개입으로 (별로 좋지 않은 의미의)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하죠.

세 번째, 학교를 그만두는 일은 분명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답니다. 아이가 '자율'에 대한 욕구로 결심하면 부모가 걸림돌이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설득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한 주관과 교육에 대한 가치관이 서 있지 않은 경우 부모와 아이 모두 혼란을 겪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완전히 주변사람들과 독립해서 살아야 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누군가와의 만남조차 힘이 들게 됩니다.

힘듭니다.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교육은 죽었다. 학교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변화를 꾀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1969년 미국 최초의 대안학교.  두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교육받을 방안으로 작게 출발했다.
 1969년 미국 최초의 대안학교. 두가정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교육받을 방안으로 작게 출발했다.
ⓒ albanyfreesch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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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교육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해볼까요. 학교를 다니고 훌륭한 대학을 나온 자녀가 어떻게 되길 바라십니까. 혹시 세속적인 성공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승승장구해서 '기득권'층에 편입되는 신분상승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는 것 아닙니까?

그 기준은 성공의 척도를 신분상승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학교 책상과 교과서, 경쟁, 성적평가, 충분한 숙제 따위가 주어지기를 바랐다. 진짜 학교가 지닌 그런 장신구가 없다는 것은 이런 학교를 계속 다니다가는 아이들이 사회의 저쪽 편에 대항해 경쟁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기르는데 충분한 토양이 되었다.-본문 중

미국 내 대안교육의 훌륭한 모델로 존재하는 알바니 프리스쿨의 관계자가 말하는 어려움의 하나입니다. 학부모들의 생각이 완고해서 자유로운, 자율적인 학교운영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옆집, 친척, 친구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제도권의 교육과정을 이수해나가는 동안 자신의 아이들이 빈둥거리는 것을 참아낼 부모는 없을 겁니다. 문제는 빈둥거림을 통해서 뭘 배우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결국 사회생활에서 경쟁해야할 수많은 경쟁자들에 뒤처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대한 불안감이죠.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는 지금 교육이 가진 불안과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봅니다. 그 선언은 그저 던지는 말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을 통해서 얻은 고귀한 결과들이 빚어낸 '물음'입니다. '지금 제도권 교육 시스템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도 가지지 않겠다' 는 선언을 몸에 담고 살아야 하는 학생들은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겪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초등학교로 점점 내려가는 경쟁의 강화는 '일제고사'라는 틀을 통해 점점 단단해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유아들의 흙놀이 수업광경
 유아들의 흙놀이 수업광경
ⓒ albanyfreesch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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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그저 이를 악물고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두려움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잠재된 정서다. 두려움은 두뇌가 더 높은 차원의 사고를 하지 못하게 만들며 자동적 생존반응이라는 옆길로 가게 한다. 이 자동적 생존반응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제멋대로의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교실로 돌아온다. 그 교사들 또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교장의 감독 밑에서 애태우며 견뎌내고 있는 처지임은 말할 것도 없다.- 본문 중

덧붙이는 글 |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씀, 공양희 옮김/ 민들레/ 9,000원



바보 만들기 - 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존 테일러 개토 지음, 김기협 옮김, 민들레(2005)


태그:#프리스쿨, #알바니프리스쿨, #대안교육, #교육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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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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