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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 최고의 책>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전문가와 시민기자, 누리꾼 패널들이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기본 자료로 삼아, 선정자문위원회의 자문 그리고 누리꾼 투표 등을 거쳐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10권을 선정해 최종 결과를 5월중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와 더불어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 서평 기사를 공모해 좋은 기사로 선정된 경우 소정의 특별원고료(사이버머니)를 지급합니다. [편집자말]
<오마이뉴스>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시민기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최고의 책을 선정한다는 기사를 접하고 떠오르는 책이 있습니다. 이윤기씨의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2001년 무렵 논술교사를 2년 정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가르치는 아이들마다 열심히 보던 책이 원색적인 화면으로 도배된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입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사실 그리스로마신화 광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습니다. 어른들 또한 열심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었습니다. 그야말로 대유행이었지요.

남녀노소 애 어른 할 거 없이 보던 <그리스로마신화>

그런데 이런 유행의 시발점이 이윤기씨의 그리스로마신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도 서점으로 달려가 그의 책을 한 권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1>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유행을 몰고 올 만했고, 개인적으로는 의식의 대전환을 가져왔습니다.

신화는 그냥 애들이나 읽는 얘기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신화 속에는 죽음 후에 관한 사후세계관도 있고, 우주의 생성에 대한 고대인의 가치관도 보이고, 사랑에 대한 고민도 있고, 그야말로 철학이나 종교에 못지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의 가치관은 훨씬 편협하고 나의 상상력은 참으로 왜소해졌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은 다른 문명, 즉 유럽문화를 비롯해서 최신 할리우드 영화를 이해하는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개봉했음에도 신화가 된 영화 <아바타>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나비 족이 사는 판도라 행성의 존재입니다. 판도라라는 이름은 당연히 그리스신화에서 얻어왔을 것입니다. 이름에 내재된 의미 또한 그리스신화의 판도라이야기에서 취했다고 생각합니다.

판도라는 최초의 여자로 '판도라상자'로 더 유명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는 의미의 판도라 상자에는 인간을 향한 신들의 온갖 저주가 희망이라는 단 하나의 선물과 함께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호기심 많은 여자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금기를 깨고 상자를 개봉합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증오 질투, 분노 굶주림, 가난, 고통, 질병 등 인간이 겪게 될 온갖 재앙이 튀어나옵니다. 그런데 이런 재앙에 맞설 희망은 상자 안에 가둬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은 보이지도 않은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정작 현실은 어린 소녀가 강간당한 채 살해되고,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런  판도라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또한 영화 <아바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상자에서 뛰쳐나옴으로써 활동성을 갖게 된 재앙이 활개치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입니다. 반면에 영화 <아바타>에서 보여준 나비 족이 사는 판도라 행성은 희망이 존재하는 상자 속 세상이라는 것이지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인간은 신화의 시대에 비해서 지능적으로 많이 발전했지만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게 신화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신화를 토대로 성장한 유럽문화, 또 유럽문화를 고향으로 둔 미국 문화 그리고 미국문화를 지향하는 지금의 세계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 그리스신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왔다 사라지는 시간대별 신화는 재미없잖아?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
 신들의 우두머리 제우스.
ⓒ 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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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문장가입니다. 그의 문장은 명료하고 간단하면서도 감칠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글은 지루하지 않고 술술 읽히는 편입니다. 내용 또한 알찹니다. 신화학자인 이윤기씨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새롭게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읽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리스 신화 원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토마스 불핀치의 책을 비롯한 대부분의 책이 연대기 순으로 건조하게 나열해왔던 관행을  깨뜨리고, 키워드를 중심으로 신화를 새롭게 묶었습니다. 예를 들면 '나무'라는 키워드를 다룬 장에서는 월계수가 된 다프네 이야기에서부터 나무를 함부로 자르다가 걸신들린 에뤼시크톤 얘기까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나무 관련 얘기를 한 자리에 묶어놓는 형식으로 신화 책을 엮었습니다. 그래서 신화 상호간의 연관성도 꿰뚫게 하였습니다.

또한 이 책은 비주얼도 대단합니다. 저자가 직접 촬영해온 신화 관련 사진들이 올컬러로 생생하게 실려 있습니다. 화집을 보는 것과 같은 이 책은 쉽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유익한 신화 안내서입니다.

에로스와 프쉬케. 에로스는 사랑의 신으로 그가 가지고 다니는 화살에 맞은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에로스와 프쉬케. 에로스는 사랑의 신으로 그가 가지고 다니는 화살에 맞은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 웅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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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씨는 큰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 신화 광풍을 몰고 왔던 그는 앞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50여권을 발표하겠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는 4권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다룬 책은 장대한 계획의 신호탄인 시리즈의 첫 번째 권입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신화> 시리즈의 첫 번째이자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모두 12가지의 테마로 구성돼  있는데 첫 번째 테마는 신발과 관련한 이야기입니다. 신화에 등장하는 신발 모티브를 통해 그 상징성을 파헤쳐보는 것이지요.

신성한 가정의 수호신인 헤라와 이아손의 만남에서 외 짝 신발이 등장하는데, 신발은 영웅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신화의 이 모티브는 나중에 신데렐라 이야기에서도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사건 전개의 발단이 되는 외 짝 신발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 기록하고 이것을 '이력서'라고 부른다. 신발을 끌고 온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의 신발은 온전한가? 우리는 혹시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잃어버리고도 잃은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신화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인지도 모른다. (본문 40-41)

다음 테마인 '사랑'과 관련한 에피소드에서는, 신화에서의 사랑에 대한 관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는 화살을 들고 다니는데 그 화살에 맞은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육체적인 사랑과 정신적인 사랑을 갈라서 생각했는데 신화에서 사랑은 육체적인 사랑이 유일무이합니다. 종교의 시대를 거치면서 육체적 사랑을 터부시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그러한 배경에서 플라톤적 사랑이 생겨났지, 신화시대에는 에로스적 사랑이 유일했던 거 같습니다.

이밖에 인상적이었던 테마가 죽음에 대한 생각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죽으면 천국이나 지옥을 가고, 불교에서는 생전에 한 일이나 정신력을 바탕으로 해서 육도윤회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서는 저승의 신인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축복받은 사람들의 영혼이 영원히 사는 평화로운 들판 엘뤼시온과 이승에서 못된 짓을 한 영혼이 가는 타르타로스라는 지옥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지하세계로 가는 과정도 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저승으로 통하는 동굴에서 아흐레 밤낮을 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떨어지면 그곳이 저승인데 거기서 또 한참을 가야 하지요. 저승 세계를 가기 위해서는 네 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먼저 '비통의 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케론 강을 건너야 하는데, 이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은 돈이 없는 혼령에게는 강을 건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입 속에 엽전을 넣어주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시름의 강'과 '불의 강'을 건너고, 마지막으로 '망각의 강'을 건너면서 이승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게 되고, 드디어 지하세계의 백성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밖에 대홍수, 뱀 등에 대한 고대인의 생각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재미있고 기발한 생각에 혀가 내둘릴 정도입니다. 그냥 상상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찜찜한 구석이 남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고대도시국가 트로이의 유적이나 미로궁전이 실재로 발굴되는 것을 보면 신화는 어쩌면 역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우리가 신화 세계에서는 낯선 존재일 뿐인 것입니다. 고대인은 물질적이고 이성적인 우리와는 조금 다른 감성과 직관을 소유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0년 최고의 책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세트 - 전5권 (부록: 신화깊이읽기 포함)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2000)


태그:#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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