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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 걷기모임은 14일(일) 아침 10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 모여 대로를 따라서 강북삼성병원의 경교장을 둘러보고, 서울성곽 길을 따라 딜쿠샤까지 간 다음, 길을 우측으로 잡아 사직단과 서촌한옥마을을 둘러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경기감영' 안내문
 '경기감영' 안내문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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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역전에 있는 서울적십자병원 입구에 경기감영터(京畿監營址)를 알리는 표식이 보인다. 깜짝 놀랐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경기도를 다스렸다는 말인가?' 표식에는 분명하게 경기도 관찰사가 이곳에 머물면서 경기도 전역을 관할했다고 되어 있었다.

사대문을 기준으로 보자면 서대문인 돈의문의 바로 앞에 경기감영이 있었다는 것이다. 놀라웠다. 당시 한양의 크기와 국가조직의 규모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현재는 표지석만 세워져 있는 것이 초라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발견이었다. 서울의 중심에서 옛 경기도의 중심을 운 좋게 발견한 느낌이 들어 매우 기쁘다.   

1896년(건양 원년)에 경기감영이 수원으로 옮겨가지까지 무려 500년을 넘기는 기간 동안 경기관찰사가 민정·군정·사법 업무를 보고, 관하의 수령을 지휘 감독했던 관청이었던 자리다.

당시 경기감영에는 소속 노비가 450명이었고, 감영의 유지비용을 대는 토지로 관둔전 20결, 늠전 20결, 공수전 15결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다.

19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12폭 화폭의 관아도인 '경기감영도병(보물 제1394호)'에는 '기영(畿營)'이라는 편액이 걸린 경기감영의 솟을대문과 본관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은 물론 관아의 측간과 작은 창고들까지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4.19혁명기념회관
 4.19혁명기념회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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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4.19혁명기념회관이다. 벌써 50년이 다 되어 가는 4.19민주혁명을 기리는 기념회관으로 10년 쯤 전에 완공되었고, 역사적인 자료를 모아두는 곳이라고 한다. 한 번도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시간을 내어 평일에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농업박물관
 농업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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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농협중앙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농업박물관(農業博物館)이 보인다. 작년에 연우랑 한 번 가본 이곳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농업의 발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박물관으로 유물·자료·농기구·운반도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

농업박물관이 위치한 자리는 조선전기의 문신 김종서(金宗瑞)의 집터였다고 한다. 예전에 갔을 때 나의 눈을 끈 것은 역사관으로 신석기· 청동기· 철기· 삼국시대의 농업관련유물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굴지농구(掘地農具), 운반도구 등 재래농업의 유물들이 좋았다.

아울러 생활관은 논밭의 사계절 농사모습과 전통농가, 전통장터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도시에서 자라 농사를 전혀 모르는 연우에게는 좋은 교육장으로 초등학생을 둔 부모라면 한번쯤 방문을 권유해보고 싶은 곳이다.

문화일보 사옥
 문화일보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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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옆이 문화일보(文化日報)사다. 예전 동양극장이 있던 곳이다. '홍도야 울지마라' 등의 신파극을 공연하던 유명한 공연장이었지만, 연극 공연이 인기를 잃은 이후 건물이 사라지고 문화일보가 들어섰다.

문화일보는 석간신문이라 나도 퇴근을 하면서 가끔 가판대에서 사보는 관계로 늘 익숙하다. 지방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돈의문 터
 돈의문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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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내 서대문이라고 불리던 돈의문(敦義門)이 있던 경향신문 앞 사거리다. 서울의 4대문 가운데 서쪽 큰 문으로 1396년(태조 5) 한양 도성의 제2차 공사가 끝나고 8문이 완성되던 때 처음 세워졌다.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다. 최근 정부에서 조만간 복원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쁜 일이다.

보이지 않는 문이 2~3년 후면 보이게 될 것 같다. 돈의문은 돌축대 한 가운데에 무지개문을 큼지막하게 내고 축대 위에는 단층 우진각지붕집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하여 모양이 아름다웠던 대문이었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이어 강북삼성병원 안에 위치하고 있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인 경교장(京橋莊)으로 간다. 이화장(梨花莊)·삼청장(三淸莊)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 건국활동 3대 명소의 하나로 불린다.

경교장
 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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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은 원래 광산업자였던 친일파 최창학 소유의 별장으로 1938년 완공 당시에는 죽첨장(竹添莊)이라 하였으나, 최창학이 김구에게 넘긴 이후에는 김구가 경교장이라 개칭하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국무위원들과 함께 귀국한 김구는 1949년 6월 26일 경교장 집무실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되기까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건국에 대한 활동 및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서울시교육청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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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은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건물 2층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김구 선생의 옛 집무실이 원형대로 복원되어 김구 기념실로 운영되고 있다. 김구 선생을 위해 잠시 묵념을 한 다음, 서울시교육청을 지나 서울복지재단을 둘러본 다음, 산언덕 위에 있는 기상청서울관측소로 간다.

기상청 분소
 기상청 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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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에 세워진 흰색의 2층 건물이 멋있었고, 계절관측 표준목이나 온도를 측정하는 백엽상 등을 오랜만에 보아 기분이 좋았다. 참 경관도 좋고, 특히 날씨가 좋아서인지 시야도 좋아 한참을 쉬어가고 싶었지만, 길이 멀어 다시 내려왔다.

계절 관측 표준목
 계절 관측 표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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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가옥으로 가는 길에 언덕 위에 있는 공원과 기상청, 교육청 건물의 담장 아래에 서울성곽의 옛 석축이 보였다. 옛 경희궁 경내에 위치하고 있는 정부기관도 마음에 안 들지만, 이곳에 성곽의 석축이 방치된 사실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교육청과 기상청의 담장 아래 남아있는 서울성곽
 교육청과 기상청의 담장 아래 남아있는 서울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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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홍난파 가옥을 지나, 도원수 권율 장군과 백사 이항복 선생의 집터가 있던 곳에 1923년에 지어진 서양식 벽돌건물인 '딜쿠샤(Dilkusha, 희망의 궁전,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로 간다.

홍난파의 집
 홍난파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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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는 3.1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UPI 특파원(통신원) 알버트 테일러가 살던 집이다. 그는 1896년 금광기사였던 아버지와 함께 조선으로 건너온 미국인인데, 금광개발을 하며 지내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행촌동에 집을 짓고 1942년 일제에 의해서 추방될 때까지 이곳에 거주했다.

딜쿠샤는 서양 근대 주택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인데, 특히 3개의 박공면을 건물 앞면에 배치하는 등의 인상적인 건축양식과 독특한 벽돌쌓기 방법이 국내에서는 아주 드문 사례라고 한다.

인도의 이상향 '딜쿠샤'
 인도의 이상향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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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라는 명칭은 알버트 테일러씨의 부인인 메리 테일러씨가 1917년 인도에서 결혼을 할 즈음에 인도 북부에서 본 어느 고성의 실제 명칭이었다. 이름의 뜻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메리 테일러씨가 자신이 결혼 후에 살게 될 집의 명칭을 이것으로 하리라 다짐을 했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미-일관계가 악화되자 서울에 있던 외국인들이 감금되고, 테일러씨도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을 도운 이유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다 1941년 태평양 전쟁을 계기로 조선에서 추방된 뒤, 미국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48년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딜쿠샤
 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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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그와 그의 부친의 묘소는 양화진 외국인묘원에 안장되어 있다고 한다.

역사문화와 함께하는 종로 중구 걷기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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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돈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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