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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연대 오창익 국장의 책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에서는 유독 한국사회에만 존재하는 여러 군상들을 만날 수 있다.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인신매매에 가까운 국제결혼 광고, 주민등록번호, 무소불위의 '검새', 무노조를 고집하는 기업, 네온사인 십자가 등 그야말로 한국사회에만 있을 법한 얘기들을 위트 있게 꼬집고 있다.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여러 풍경들 중에 '길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문화'에 대한 것도 있다. 오 국장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가히 한국은 현수막이 뒤덮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기업 광고에서부터 소상인들의 호객행위, 행정당국의 정책홍보와 행사안내, 정당의 의견표출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도 다양하다. 이제 곧 지방선거 국면이니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새긴 선거용 현수막들도 가세할 것이다. 불법 게시물 철거와 과태료 부과 등 행정당국의 엄포는 떼고 나면 곧바로 다시 붙는 현수막에 의해 간단히 무시된다. 현수막 하나 만나지 않고 길거리를 걷는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사실 현수막이 뒤덮은 거리의 모습은 문화라기보다는 공해라는 표현이 옳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시각의 어지러움은 물론이고 떨어져 너덜거리는 현수막의 위험성, 문구의 선정성 등은 다른 공해에 못지 않다. 현수막을 없앤다면 조금 불편함이야 있겠지만 별 이로운 구석도 없는 현수막이 꼭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국의 어지러운 간판문화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필요악이라기보다 그저 익숙해진 생활습관일 뿐이다.

그래도 이런 현수막은 봐줄 만하다. 어지럽고 볼썽사납기는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소외감을 만들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시기에 각 고등학교 정문에 붙어 있는 현수막은 좀 다르다. 혹 눈여겨보았을지 모르지만, 요즘 고등학교 정문에는 대게 이런 종류의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대 ○○명 합격, 수도권 ○○명 합격 등 대학 합격을 축하하는 내용들이다. 심지어 합격생 이름을 나열해놓은 학교들도 있다. 물론 그동안 대학진학이라는 목표 외에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 대다수일 테니 합격을 축하할 만도 하다. 하지만 합격 축하 현수막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우선 현수막에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의 졸업생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명문대 위주로 진학한 소수만을 위한 축하는 소위 '마이너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야 하는 학생들이나 재수생들,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은 아예 설자리조차 없다. 어쩌면 입시위주의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한국의 교육현실에서 학교당국에게 그들은 단지 패배자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학률이 높은 것이 곧 명문이라는 천박한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현실, 교육당국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합격 현수막이 담고 있는 문제를 지적하기 위한 의미 있는 행동이 나와 주목된다.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와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이 합격 현수막이 가진 반인권성을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들 단체는 합격 현수막이 학교교육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입시학원화를 조장하고, 진학만을 고집하는 학력차별, 특정 대학만을 지향하는 학벌차별을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현수막이 주는 패배감과 좌절감 때문에 심지어는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학생들의 피해도 양산하고 있다고 한다.

합격 현수막 철거를 위한 운동은 이미 2006년부터 광주지역에서 제기되었다. 처음에 각 학교와 교육청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일부 학교가 시정을 하기도 했지만 매년 게시와 시정이 반복될 뿐 근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난해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조사 과정에서 각 학교들이 지양하기로 함에 따라 "조치가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라며 기각되었던 사안이다. 그렇지만 올해도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자 또 다시 진정을 하게 된 것이다.

합격 현수막의 문제는 비단 고등학교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 현수막도 다르지 않다. 과거 대학의 현수막은 주로 대학생들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를 취업 관련 광고나 교내 행사 안내가 차지한 지 이미 오래다. 대학의 현실도 상아탑을 버리고 취업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니 그렇다고 치자. 그래도 이름까지 버젓이 공개하며 사법고시 등 국가고시 합격을 축하하거나 대기업 취업을 축하하기에 급급한 현수막은 도가 지나쳤다.

합격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미 행복하다. 더구나 동네에 자랑할 것도 아니고 교내에 내건 현수막이 '자위' 말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 의미 없는 행동이 도서관에서, 각종 취업준비 학원에서, 고시촌에서 시름하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처와 소외를 줄 수 있다. 청년실업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부의 성공만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성공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우선되어야 한다. 자극도 필요하겠지만 상처를 주는 자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합격 현수막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대학 또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이번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 권고가 반드시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입시경쟁을 부추기고 서열과 학벌을 조장하는 풍토는 반드시 차별과 연결된다. 고시합격을 자랑하고 대기업 취업을 자랑하는 대학의 풍토도 마찬가지다.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일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맡은바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허창영씨는 현재 전남대 공익인권법센터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이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현수막, #합격 현수막, #명문대,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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