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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여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진민정 시민기자
공동취재: 오마이뉴스<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한국의 부모들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살인적인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이것은 공교육의 부실과 연관되어 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취재팀은 파리에서 프랑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했다. "몇 명의 아이를 갖고 싶은가? 아이 키우기 힘들지 않은가?" 이때마다 그들은 "2명 이상"이라면서 "그리 힘들지 않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이 그렇게 답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교육비가 대학까지 거의 무료이고, 한국과 같은 살인적인 사교육 경쟁이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공교육의 질적인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프랑스는 진정 모두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나라일까?

도미니크 피두띠(Dominique Pidutti)와 샤를린 비오(Charline Viault)씨.
 도미니크 피두띠(Dominique Pidutti)와 샤를린 비오(Charline Viault)씨.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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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 파리 샤이요 궁 맞은 편의 한 카페에서 두 고등학교 교사를 만났다. 파리 시내 한 고등학교의 역사지리 교사인 도미니크 피두띠(Dominique Pidutti, 47)씨와 치안 문제가 늘 거론되는 악명 높은 파리 외곽 93지역(Seine-Saint-Denis)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 중인 샤를린 비오(Charline Viault, 35)씨. 두 사람은 동거인이다. 두 교사는 "프랑스 공교육은 다른 나라에 비해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여기저기에서 위기의 징조가 보인다"고 말했다.

점점 소외되는 이민자 가족 자녀들

도미니크 피두띠씨는 우리의 취재 목적을 듣자마자 이민자의 자녀들과 프랑스인 가족 자녀들 사이의 융합의 문제를 거론했다.

"이민자들은 대체적으로 가난하다. 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사회적 소외감을 종종 폭력으로 해소하려 든다. 그래서 이민자 가족의 아이들이 많은 학교는 늘 경계의 대상이다.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는 프랑스 부모들은 그런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재건사업을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수는 프랑스 총 인구의 거의 10%를 차지한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가 그들을 적극적으로 껴안기보다는 방치하는 정책을 펼쳐 서민층인 이민 2, 3세대는 그들끼리 도시 외곽에 모여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자녀들이 그런 이민 2, 3세대와 어울리는 것을 꺼려 하는 프랑스 부모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샤를린 비오씨는 그 선택으로 위장전입과 과외를 꼽았다.

"바칼로레아(대학입학자격시험)가 끝나면 언론들이 학교별로 성적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데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학교가 '좋은 학교'가 된다. 그런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자 하는 부모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는데 이들은 종종 부동산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단지 주소를 바꾸기 위해 좋은 학교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몇 달 동안 얻거나 하는 식이다. 아니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부터 성적을 위해 과외를 시키곤 한다. 물론 가난한 가정에서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위장전입, 과외…. 인터뷰를 하던 취재팀의 입에서 일제히 "우리랑 똑같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물론 이런 사례가 모든 지역에서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프랑스의 공교육 현실이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좋은 예였다.

사라져가는 교육 평등의 기회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으로 소풍 온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맥도날드 버거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으로 소풍 온 고등학교 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맥도날드 버거로 허기를 채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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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부모의 부의 정도에 따라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결정된다. 프랑스는 어떨까?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가능한 사회일까? 이에 대해 피두띠씨는 프랑스에서도 고등교육에서 교육평등의 기회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예전에는 서민층의 성적이 우수한 자녀들이 엘리트 그룹에 낄 가능성이 아주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서민층의 우수한 학생들이,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교육의 폐해를 겪고 있다. 왜냐하면 현 교육 시스템으로는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나쁜 학생'들을 학교 교육에서 격리 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교육이 서민층 자녀들에게 계급상승의 도구가 되어주지 못한다."

그는 또 바칼로레아를 통과만 하면 입학이 가능한 대학 시스템으로 포화 상태에 이른 프랑스 대학의 문제를 덧붙였다.

"지금 프랑스 대학 교육의 문제는 일반 대학과 그랑제꼴의 차이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 그랑제꼴(하단의 박스 기사 참조)은 여전히 우수한 학생들만 받아들이는 폐쇄적인 시스템이라 학생 수의 변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일반대학의 경우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대부분 학생들의 입학이 가능해 학생수가 거의 폭발할 지경이다(30년 전에는 30% 가량의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진학률이 60% 가량이다). 그래서 일반 대학에선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실력 없는 학생들을 탈락시킨다(심지어 약대나 의대는 1학년 때부터 다수의 학생들을 탈락시킨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학위를 받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고 있다
. 물론 석사 이상의 대학원 과정에서는 교육의 질을 담보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1대학 경제학연구소 입구
 프랑스 파리1대학 경제학연구소 입구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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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권위 땅에 떨어져

한국에서 무너지는 공교육 현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예로 드는 것이 수업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의 모습이다. 프랑스의 고등학교에도 그런 풍경이 있을까?

샤를린 비오씨는 이 질문을 받고 "교사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교권 실추가 사교육 시장의 팽창과 맞물려 있다면 프랑스의 경우는 그 원인이 다른 데에 있었다.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엄격한 교육을 해오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소비문화의 변화와 미디어의 영향으로 물질적인 가치를 중시하게 된 요즘 아이들은 보수가 그리 많지 않은 교사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부유한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경우, 그들의 옷 한 벌 값은 거의 교사의 한달 월급과 맞먹는 수준이다."

그녀는 "학생들이 집중을 하지 않아 한 시간 수업에 정작 수업은 10분 정도만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를 무시하는 이런 아이들 때문에 수업 한 시간 동안 정작 수업은 십분 정도 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떠드는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 데 할애하느라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다."

그녀가 일하는 곳이 이민 2, 3세대들이 많은 파리 외곽지역이기에 아이들의 수업 집중도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지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교사의 권위 추락은 "프랑스 전역에 널리 퍼진 최근 현상"이라고 두 교사는 입을 모았다.

도미니크 피두띠씨는 이 변화의 원인 중 하나로 68혁명의 영향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68혁명은 '모든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모토로 이 땅에 개인주의를 정착시켰다. 그런 부모들의 사고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아직 청소년이지만 어른들에게 자신들의 권리를 인정할 것을 주장한다. 결국 수직관계였던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사라졌다."

그렇게 68혁명이 만들어낸 권리 우선주의가 무상교육 시스템과 맞물려 학교교육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게 일종의 특혜라는 생각이 들어 교사를 존중하고 학교의 규율을 지켰다. 지금은 학교교육이 더 이상 가치를 갖지 못하고 있다. 교육의 의무화는 평등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선택이었지만 이 평등의 가치가 물질을 숭배하는 자본주의와 만나 기형적인 형태를 만들어낸 건 아닌가 싶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에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젊은이들.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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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프랑스에서도 한국처럼 사교육비가 너무 높아서, 혹은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아이를 낳기 부담스러워하는 커플들이 있을까? 피두띠씨는 프랑스에서 아이를 낳지 않은 커플들은 대부분 자유로운 삶을 위해 아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단정했다.

"상경계열을 제외하고는, 등록금이 비싼 대학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학비가 감면된다. 사립고등학교를 보내는 경우 등록금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2000유로(3백만 원) 정도로 평범한 가정에서 부담을 느낄 만큼 아주 비싼 금액은 아니다. 그러나 굳이 그런 곳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과는 다른 이유이지만, 프랑스의 공교육 역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을, 인터뷰 내내 어두운 얼굴로 답했던 프랑스의 두 현직 교사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2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사교육비와 학비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기 힘들어하는 현상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만의 리그, 그랑제꼴
프랑스 대학교육은 일반대학과 그랑제꼴이라는 독특한 이중적인 구조를 가진다. 일간지 <리베라시옹>에 의하면 2008년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14.1%의 학생들이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위한 선택(그랑제꼴 준비반, 엔지니어 그랑제꼴, 상경계 그랑제꼴 등- 50% 가량의 상경계, 엔지니어 그랑제꼴에서는 그랑제꼴 준비반인 '프레빠'를 요구하지 않는다)을 한 반면, 53.9%의 학생들이 일반대학에 등록하고 21.8%의 학생들은 IUT(단기 기술교육 전문대학)에 등록했다.

일반대학은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성격이 강하며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깔로레아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소수 명문 그랑제꼴은 프랑스에만 존재하는 유일한 교육제도로 전문직의 고급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통해 소수의 학생들에게만 입학이 허용된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이 그랑제꼴에 입학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반대학 입시와 달리 학생들은 프레빠(그랑제꼴 준비반)에서 2, 3년 준비한 이후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고등학교 성적이 좋지 않으면 학생들은 이 준비반에 들어갈 수가 없다. 가난한 가정의 자녀가 그랑제꼴에 들어가기 힘든 이유는 일단 그들이 학업에 전념하기 쉽지 않은 교육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데 있다.

프랑스 불평등 관측소(Obervatoire des Inégalités)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랑제꼴의 경우 수업 강도가 높아 따로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없어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부모가 없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의 자료에 의하면 2007년 프레빠에 등록한 학생 7만8000명 중 기업이나 정부의 고급 간부 등 상류층 자녀들의 비율은 55%에 달한다. 반면 중하층 자녀들 중 프레빠에 등록한 경우는 단지 9%에 불과하다.

일부 상경계 그랑제꼴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랑제꼴은 국립이다. 대표적인 그랑제꼴은 대부분의 국가관료들을 배출한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 국립행정학교 (ENA)가 있고 고급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폴리 테크닉(Ecole Poly Technique), 광산학교(Ecole des Mines), 에꼴 상트랄(Ecole Centrale), 상경계 그랑제꼴로 유명한 고등상업전문학교(HEC) 등이 있다. 그랑제꼴 187개(그랑제꼴 협회에 등록된  수) 중 10여 개쯤 되는'진짜' 그랑제꼴 출신들이 프랑스의 정계와 재계를 주름잡고 있다.

국립의 경우 대부분의 그랑제꼴의 학비는 일반 국립대학과 비슷한 수준이다. 2009-2010년에 결정된 일반 국립대학의 학비는 1년에 학부 171유로(약26만원), 석사과정 231유로(약34만원), 박사과정 350유로(약52만원)이다.

그러나 최고의 명문, 고등사범학교와 국립행정학교, 폴리 테크닉의 경우는 학비가 무료인데다 학생들에게 상당한 장학금을 지불하기도 한다. 고등사범학교와 국립행정학교 학생들의 경우 한 달에 1300유로를 국가로부터 지급받고 폴리 테크닉의 학생들은 700유로를 지급받는다. 대부분 사립인 상경 계열의 그랑제꼴은 학비가 일년에 1만 유로(1500만 원) 정도로 비싼 편이다.

중상층의 프랑스인들이 자녀를 그랑제꼴에 보내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경제 침체의 상황에서 대학보다 비교적 취업하기가 쉽고, 상경계열, 행정 분야에서 좋은 지위와 직장을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의 간부들과 국가관료들이 대부분 명분 그랑제꼴 출신이어서 그들만의 인맥을 형성할 수 있어 소수의 명문 그랑제꼴은 출세를 위한 지름길이 되어주고 있다.

한편, 몇 해 전부터 그랑제꼴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랑제꼴이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엘리트들만을 배출해 사회 발전에 부흥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회 의원인 사회당의 뱅상 페이옹(Vincent Peillon)은 최근 "그랑제꼴이 사회계급을 재생산하고 정보기술이나 산업경제 부문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못해 국가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그랑제꼴 폐지를 주장했다고 <리베라시옹>(2010년 2월3일)이 보도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태그:#프랑스, #공교육, #위장전입, #그랑제꼴, #사교육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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