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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 종자은행 폐쇄! 10년 전부터 일본이 1000여종, 미국이 8600여종의 종자로 종자은행을 운영해온 데 반해, 한국은 겨우 200여종으로 명맥을 이어오다 더는 토종을 구할 수 없어 문을 닫게 되었다."

한국농업의 종자시장 형편을 살펴보면 이런 신문기사를 보게 될 날이 멀지 않을 듯싶다. 토종종자가 사라진 농촌현실은 어떨까.

씨드림 모임 때 토종종자와 이를 보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옥수수를 보관하는 모습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 토종씨앗을 보관하는 모습 씨드림 모임 때 토종종자와 이를 보관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전시회도 함께 열렸다. 옥수수를 보관하는 모습의 사진을 다시 찍었다.
ⓒ 씨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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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금줄이 풍부하기로 소문난 곡물회사 카길은 종자회사 몬산토에서 파는 종자로 농사를 지은 농가의 농산물만 사들인다. 충청도 괴산에서 희귀한 고추토종을 받아 수확한 고추를 시장에 가져간 살구농장 김재영씨는 1kg도 팔지 못한 채 집으로 되돌아왔다. 몬산토에서 정해준 고추씨를 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을걷이가 끝날 때마다 처마 끝에 달아놓고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쓸 수 있었던 토종, 수백 년간 우리 입맛을 결정하고 산야를 빼곡히 채워온 수백 가지 토종곡물은 거의 사라졌다. 카길과 몬산토는 한반도의 원예사가 된 듯 원하는 곡물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봄이면 카길은 전량 구매를 내걸고 한국의 곡창지대에 곡물 대신 사료작물을 심을 것을 제안(?)한다. 농사를 잘 지어놓고도 판로에 고민하는 농민들이 선뜻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다. 한국의 들판은 카길에 납품할 사료작물로 출렁거린다. 한국인이 먹어야 할 식량은? 걱정 없다. 카길 푸드에서 공급하는 값싼 시리얼이 있지 않은가."

오늘은 가상 기사지만 내일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이야기다. 

토종씨를 지키기 위해 <씨드림>회원들이 한 해 한 번씩 모여 토종종자를 나누고 농사정보를 교환한다.
▲ 토종씨드림 정기모임 토종씨를 지키기 위해 <씨드림>회원들이 한 해 한 번씩 모여 토종종자를 나누고 농사정보를 교환한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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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5일, 충남 예산에 있는 공주대학에서는'2010년 토종 씨 드림 정기모임'이 있었다. 씨 드림은 '씨앗(Seed)과 드림(Dream)'의 한글과 영어를 합친 말로, 토종종자를 지킴으로써 종자에 담긴 지역특성과 식량주권은 결코 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만든 모임이다.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주고받다가 일 년에 한 번씩 모인다. 이 날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농가들이 토종 씨앗을 들고 와서, 종자를 서로 나누며 채종 일자와 방법, 농사정보도 교환했다.

전국에 있는 토종 씨앗을 발굴하는 데 평생을 바친 안완식 박사(씨드림 대표)가 소유한 620여 종의 씨앗을 흙살림, 전국귀농운동본부, 연두농장,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4개 기관에 나눠주는 행사도 함께 진행했다.

안 박사로부터 토종종자를 받은 4개 기관은 '소농학교' '탈석유 농법' '한 농가 한 토종종자 갖기 모임' '제철 채소꾸러미' 따위 소모임 활동부터 우리농업을 지켜갈 다양한 활동계획과 다짐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20여년간 모아온 60여 작물 600여종 토종을 나눠준 안 완식 박사. 현재 '씨드림' 회장이다.
▲ 600여종의 토종종자를 나눠준 안 완식 박사 20여년간 모아온 60여 작물 600여종 토종을 나눠준 안 완식 박사. 현재 '씨드림' 회장이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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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수원, 괴산, 영주, 서울, 구례, 서산, 부산, 안성 따위 방방곡곡에서 모인 300여 명의 농민과 예비농민들은 직업과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저마다 농촌의 어머니할머니가 해왔던 육종(토종 씨앗을 받아내는 일)을 떠맡겠다고 나섰다. 우리 식탁을 시리얼이 독차지하는 걱정은 당분간 하지 않아도 될 듯싶다.

그러나 농업과 농촌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헛일이다. 홍성에서 콩 농사를 지으며 40여 가구를 도시지원농업(도시에 있는 회원들이 주마다 농민이 보내주는 농산물에 대해 미리 대금을 지불하고, 농민은 매주 농산물 상자를 회원의 가정이나 집합지로 배달하는 형식) 회원으로 확보하고 있다는 금창영 농민. 자기소개 시간을 빌려 "농촌에서 먹고 살 만하다"면서도 "작년에 지은 콩이 아직도 창고에 가득하다"는 걱정을 내비친다.

이 모임에 참여한 농민과 예비농민들은 농산물을 사고파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생명창고'인 농촌을 지키겠다는 깊은 생각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 혼자 힘으로는 단박에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도시 소비자들이 농촌을 마트와 시장에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공장 정도로만 여긴다면 한국인의 식탁이 허접스런 시리얼로 바뀔 수도 있음이니. 도시 소비자 몫이 크다.

강화에서 땅을 얻어 올 해부터 농사를 지을 작정이라는 30대 귀농인은 "난, 소비자 얼굴을 보면서 농산물을 팔 겁니다"라며 "얼굴을 보면 내 가족과 이웃이 먹는 것 같아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짓게 되고, 나중에는 소비자도 농민을 믿게 되겠지요"라고 말했다. 도시와 가까운 농촌의 농산물을 사먹고 농민과 도시민 사이가 돈독해지면 도시 자투리땅에 심을 토종까지 나눌 수 있음이니 중간 도매상이나 대형마트 배만 불려주는 소비를 멀리하고, 농촌이란 번지수를 제대로 짚어가며 사먹어 줄 것을 강조한다.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토종씨앗다. 토종씨앗을 나누며 채종과 수확 등 농사정보도 교환한다.
▲ 토종씨앗 농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가져온 토종씨앗다. 토종씨앗을 나누며 채종과 수확 등 농사정보도 교환한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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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 참여한 농민과 예비농민들이 토종종자를 나누며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
▲ 토종씨앗을 나누는 농부들 모임에 참여한 농민과 예비농민들이 토종종자를 나누며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있다.
ⓒ 김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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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도시는 흙으로 이어진다. 콘크리트 더미로 칠갑을 하고 농촌과는 한참이나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어 보이는 도시도, 몇 삽만 파내려 가면 푸슬푸슬한 흙 위에  걸터앉아 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농민과 도시민은 몇 백년간 내려온 토종 종자로 동질감을 나누며 하나였다. 된장이며 김치 쌀밥로 차려진 밥상은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가 담긴 토종의 발효다. 

생명을 좇는 이. 흙을 가까이하고 토종을 지켜라! 이날 모인 농부들의 아우성이었다.


태그:#토종종자 지키기, #토종종자와 식량주권, #토종종자와 지역살리기, #토종을 점령한 몬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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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그리고 조경일을 배웁니다. 1인가구 외로움 청소업체 '편지'를 준비 중이고요. 한 사람 삶을 기록하는 일과 청소노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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