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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 입구엔 망원경과 함께 찍은 고 조경철 박사의 사진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아폴로 박사'가 먼 우주로 영영 떠나는 날. 그 곁을 지킨 건 60~70년대 그를 통해 우주를 꿈꿨던 '아폴로 키드'들이었다.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가 6일 오전 10시 향년 81세로 별세한 지 만 하루가 지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일요일 아침이어서 조문객 발길은 주춤했지만 수십 개의 조의 화환들이 전날 밤새 이어진 조문 열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조문 현장 밤새 지킨 '아폴로 키드들'

 

유가족들과 밤새 조문객을 맞은 박종현 전자통신연구원(ETRI) 박사는 1985년 출발한 경희대 우주과학과 1회 졸업생이었다. 당시 경희대 교수로 재직하던 조 박사에게 1년 동안 수학한 박 박사는 고인을 '순진무구하고 가식 없는 스승'으로 기억했다.

 

박 박사는 "당시 '우주과학'과 '조경철'에 매력을 느껴 들어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1회 졸업생 50명 가운데 10명이 박사가 돼 뒤를 잇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문적으로 더 큰 일을 한 분도 있겠지만 고인은 학생과 일반 대중들에게 천문학을 인식시키고 그들에게 꿈을 안겨줬다"고 평가했다.    

 

 고 조경철 박사 영정. 색안경과 나비 넥타이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1929년 4월 평안북도 선천 출신인 조경철 박사는 50년대 연희대(현 연세대)에서 '국내 최초 이학박사'인 이원철 박사에게 천문학을 배운 뒤 미국 유학을 떠나 1962년 미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천문학 관련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 해군천문대, NASA 연구원 등으로 일하다 68년 모교인 연세대 교수로 고국에 돌아온 조 박사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69년 7월 미 아폴로11호 달 착륙이었다. 당시 KBS는 중계권이 없어 주한미군 방송(AFKN)을 받아 간접 중계했는데, 당시 프로 골퍼 미셀 위(위성미)의 조부이기도 한 고 위상규 서울대 명예교수와 조 박사 등이 해설을 맡았다.

 

1주일간 미 방송을 즉석 통역까지 해가며 생중계하던 조 박사는 마침내 달 착륙이 이뤄지는 순간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환호하다 그만 의자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됐고 고인을 '아폴로 박사'로 각인시켰다.

 

당시 고등학생으로 이 장면을 TV로 지켜봤던 이가, 초대 회장인 조 박사에 이어 천문우주과학회를 이끌고 있는 강영운(56) 세종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다.

 

강 교수는 "당시 미군 방송을 통역해가며 즉흥 해설을 하던 조 박사가 마지막에 미리 적어온 원고를 읽었는데, 그게 학생들에게 주는 글이었다"면서 "그 내용에 감동해서 천문기상학과에 가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천문학 대중화에 앞장선 '가식 없는 학자' 

 

이후 연세대 천문기상학과와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로 후학을 기르는 한편 한국천문학회장(1973), 한국우주과학회 초대 회장(1984년) 등을 역임했고 1992년에는 한국우주환경과학연구소를 설립했다. 또 2007년 출간한 자서전 <과학자 조경철 별과 살아온 인생>(서해문집)을 비롯해 천문학 전공서적부터 대중적 교양과학도서까지 170여 권의 책을 낸 보기 드문 과학 저술가이기도 했다.

 

박종현 박사는 "고인처럼 책을 많이 쓴 과학자는 드물다"면서 "'매일 원고 200쪽을 쓰는데 내일 못 쓸 것 같으면 오늘 미리 쓴다'고 말할 정도로 일을 내일로 미루는 걸 허락지 않았다"고 옛 일화를 떠올렸다. 

 

일부에선 '학자'보다는 '연예인'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방송 출연도 활발했다. 특히 1992년 4월 MBC에서 방영된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 출연해 가짜 외계인 출현에 속아 넘어가는 순진무구한 모습은 아직까지 시청자들 뇌리에 남아있을 정도다.

 

덕분에 일반 대중에겐 '가식 없는 학자'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94년엔 학자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 천문 동호인들 모임인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장을 맡아 천문대와 '별의 축제'를 공동 주최하며, 천문학 대중화에 노력했다. 이후 천문학과 우주과학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지며 안성 천문대 등 민간 천문대도 많이 늘었고, 최근 첫 우주인 이소연 박사 탄생과 국내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발사 시도에까지 이르렀다. 

 

 고 조경철 박사 사회장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7일 아침 상주들을 격려하고 있다.

조 박사와 같은 평안도 출신이면서 평양고등보통학교와 연희대 1년 선배로 장례위원장까지 맡은 김동길(82) 연세대 명예교수는 "그는 과학 불모지에 혜성처럼 나타난 이 시대의 수재"라면서 "그처럼 한 분야에 대가이면서 여러 가지 재능을 가진 이는 드물다"고 크게 안타까워 했다.

 

고 조경철 박사 장례식은 5일간 '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오는 10일 발인 뒤 이북 실향민 공원 묘원인 경기도 파주 '동화경모공원(통일동산)'에 묻힐 예정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 자는 우주와 지상에 영원히 남을 전망이다. 2001년 일본인이 발견한 소행성 4976번에 '조경철' 이름을 헌정해 국제천문연맹(IAU)에 공식 등록됐고, 강원도 화천군 광덕산엔 그 이름을 딴 '조경철 천문과학관'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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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교육, 인권 분야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