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 안소민 시민기자
공동취재 :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세 아이와 함께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세 아이와 함께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파리 근처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취재팀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이들 부부가 사는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부부의 집은 10층이다. 심호흡을 한 뒤 걸어서 아파트 대문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 우리는 헐떡이는 숨을 진정해야만 했다. 이 부부가 너무 미안해하지 않도록 숨을 고르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나서도 부부는 엘리베이터에 대해 크게 미안함(?)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 같으면 아파트 관리에 대한 불평으로 첫인사를 장식했을 텐데 말이다. 

부엌에는 저녁식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 세 명을 키우는 주부가 손님을 위한 한 끼 식사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벅찬 일인지 익히 알고 있기에 감격이 더했다.

멀리 창밖으로는 파리의 야경이 펼쳐져있고 글라스속의 와인은 제 맛을 내고…. 모처럼 모국어로 한판 수다를 떨 생각을 하니 먹지 않아도 배부른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아한 저녁 풍경은 생각보다 빨리 무너졌다. 아이 세 명이 있는 집에서 우아한 저녁식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의 종알거림과 보채는 소리에 대화가 중간에 몇 번 끊어지곤 했다. 집 주인이 아이들과 한판 씨름을 벌이는 동안 손님들만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만 볼 수 있는 수선스럽지만 따뜻한 풍경이었다. 황씨는 '세 아이 덕분에 우아한 파리생활은 물건너갔지만 그래도 볼수록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했다.

우아한 파리생활은 물 건너갔지만...

프랑스 블로뉴의 르노 자동차에 근무하는 황의곤(39)씨는 2년 전 파리에 왔다. 그리고 10개월 전 셋째 딸 세현(10개월)을 파리에서 낳았다. 세현이 위로는 두 딸, 지현(5)과 수현(3)을 두고 있다. 특별한 계획없이 낳은 셋째지만 이국땅 파리에서 낳았기에 그 감회는 더욱 새로웠다. 장모님이 파리까지 와서 산후조리를 해주었다. 아무리 세 번째라고 해도 출산의 두려움은 마찬가지. 오히려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이기에 더욱 힘들었을 법한데.

오연호 대표 등 오마이뉴스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이 28일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이들 부부가 사는 아파트 10층까지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다. 엘리베이터 점검중인 한달반동안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10여층 계단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내야 한다.
 오연호 대표 등 오마이뉴스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이 28일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를 만나기 위해 이들 부부가 사는 아파트 10층까지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있다. 엘리베이터 점검중인 한달반동안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10여층 계단도 오르락내리락 하며 지내야 한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프랑스 공립병원에서는 출산에 관한 모든 비용이 무료입니다. 공립병원에서 출산을 했을 경우 2500유로(375만원 가량)정도 드는데 국가에서 지원해줍니다. 주재원의 경우 자회사에서 부담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2~3년 전 바뀐 까닭에 세현이의 경우는 회사에서 전액 부담해주었죠. 어쨌든 이 곳에 시큐리티 소셜(Security Social/ 일종의 사회보장제도)에 가입돼있는 사람은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부러운 이야기였다. 나의 경우 첫아이 제왕절개만 해도 백만 원 가량이 들었고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둘째는 30여만 원이 들었다. 의료보험 지원을 받았다해도 전액무료는 아니었다. 무통분만도 마찬가지. 부인 박원신씨는 무통분만이 모두 적용이 되는데 이것도 산모의 인권을 존중함으로써 출산율을 높이려는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여기는 아이를 의사가 받지 않고 산파가 받아요. 유도촉진제는 쓰지 않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죠. 시간이 좀 오래 걸리더라도 자연적인 방법을 쓰더라구요."

블로뉴에 오기 전 서울에서 맞벌이를 했던 이들 부부는 두 아이를 친정 부모님에게 맡겼다. 큰아이 지현이는 프랑스로 오기 전 두 달동안 어린이집에 다녔다. 당시 어린이집 한 달 원비는 약 25만 원. 수원에 사는 내 조카의 어린이집 한 달 비용은 30만 원선. 수도권의 엇비슷한 어린이집과 비교했을 때 비싼 편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현이가 프랑스 유치원에 다니면서 부담하게 된 한 달 비용이 궁금했다. 프랑스는 교육지원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인이 직접 느끼는 체감지수는 어떨까.  

"이곳에서 공립 유치원 원비는 전혀 없습니다. 교재구입같은 항목도 없어요. 대신 매월 식비만 제출하면 되죠."

그러니까 교육비는 무료, 점심 식비만 내면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식비는 과연 얼마나 들까. 부부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750원부터 9750원까지... 소득에 따른 식비부담

"식비를 내되 그 가정의 소득에 따라 차등이 있습니다. 전년도 수입을 기준으로 총 12등급으로 나누어 한끼 식비를 결정합니다. 예를 들어 한 해 수입이 777유로 미만인 경우에는 한끼 식사가 1.06유로(약 1500원)입니다. 그러나 소득이 7183유로 이상인 경우에는 한 끼당 6.54유로를 내야하죠. 식사의 질과 메뉴는 동등합니다. 다만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야하는 거죠."

맛있게 식사를 하던 우리는 입이 벌어졌다. 소득에 따라 식비를 다르게 낸다? 생경한 이야기였다. 

프랑스 블로뉴의 르노 자동차에 근무하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동안 딸 세현이 카메라를 보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프랑스 블로뉴의 르노 자동차에 근무하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동안 딸 세현이 카메라를 보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규칙은 식비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치원에 돈을 지불해야 하는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된다. 유치원이 쉬는 수요일, 아이를 맡길 경우에 따로 돈을 지불해야 하거나 방학 때 유치원을 아이를 맡길 경우 또는 방과 후 종일반에 맡겨야 하는 등…. 따로 돈을 지불하는 모든 경우, 등급에 의해 철저히 적용된다.(물론 항목별로 금액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기본 비율은 비슷하게 적용된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아무리 소득이 높다하더라도 자녀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담해야 하는 식비가 줄어든다는 것. 예를 들어 월 7183유로 이상을 버는 부부가 있다 치자. 이들 부부가 아이가 하나인 경우 부담하는 한 끼 식비는 6.54유로. 그러나 아이가 다섯이면 3.92유로다. 물론 이 법칙은 모든 등급에서도 동일한 비율로 적용된다. 그야말로 소득이 적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이가 많다 할지라도, 합리적인 가격에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러한 제도에 고소득층의 불만이 거의 없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것이 진정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진정한 똘레랑스가 아닐까. 결국 소득이 많은 사람이 소득이 적은 사람의 식비를 부담하고 있다. 부의 재분배,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실현되고 있었다. 식비가 없어서 식사를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볼 때 부럽다 못해 꿈같은 이야기였다.

프랑스 블로뉴의 르노 자동차에 근무하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동안 딸 지현과 세현이 카메라를 보고 신기한 듯 장난치고 있다.
 프랑스 블로뉴의 르노 자동차에 근무하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오마이뉴스 특별취재팀과 인터뷰하는 동안 딸 지현과 세현이 카메라를 보고 신기한 듯 장난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요즘 이들 부부는 지현이의 학교를 사립 또는 공립에 보낼 것인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고 한다. 1~2년 후면 프랑스를 떠나기 때문에 굳이 사립에 보낼 필요없이 공립에 보내자는 남편과 사립을 보내자는 부인의 의견이 엇갈린다. 이런저런 조건을 다 떠나 프랑스와 한국 둘 중에 어느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들 보육 환경만을 따지면 확실히 프랑스가 나아요. 여기서 키울 수만 있다면 키우고 싶습니다."

남편의 말에 부인이 덧붙여서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일정한 틀에 맞춰 교육하는데 프랑스는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어 아이들이 새, 나무 등을 그릴 때도 정해진 규칙이 없어 자신이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내버려 두거든요. 아이가 왜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길러줍니다."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부인은 이어서 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지현이반에 한국인 친구가 있는데 작년 9월 한국으로 들어갔어요. 하루는 그 아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자기 딸이 어느 날부터 그림 그릴 때 한손에는 연필을 또 한손엔 지우개를 들고 있더래요.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틀리면 고치려고 한다'고 했대요. 그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는 말을 했어요. 정해진 틀에서 어긋나면 틀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들은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한국 교육시스템에 적응해야 할 일이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에 온 뒤 가장 큰 수확은 '가족의 재발견'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 블로뉴에 사는 황의곤·박원신씨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안 드림> 프랑스 특별취재팀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부인 박원신씨는 프랑스에서 온 뒤, 이 곳에는 노년을 여유있고 멋지게 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아마 최저생계를 보장해주는 지원체제와 자녀에게 그다지 금전적인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는 교육시스템 그리고 일정기간이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자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종합적으로 맞물려 만들어낸 그림 아닐까.

이들 부부가 프랑스에서 배운 또 하나 중요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천천히 사는 여유'다. 우리를 숨차게 만들었던 문제(?)의 엘리베이터를 예로 들며 엘리베이터 점검이 한달 반이나 이어져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은 서비스를 받을 권리만 생각하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권리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고 주말에 쉬어야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공사가 길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죠. 물론 10층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힘들다며 미소만 지어보일 뿐이죠. 저도 그 느림과 여유, 인간존중의 자세를 배우게 된 것 같아요."

프랑스에 왔을 때 가장 적응이 안되는 점도 이 '천천히' 느림의 여유였다. 그동안 얼마나 바쁘고 촉박하게 살고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 부부의 서울에서의 삶은 일반 시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남편은 회식과 야근, 주말에는 잔업으로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워킹맘이었던 아내 역시 숨가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프랑스에 와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가족에게 온 큰 변화 중 하나라면 남편의 퇴근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셋째를 임신했을 때에도 남편과 함께 병원에 다닐 수 있었다. 탄력근무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온 뒤 저희 가족의 가장 큰 수확이라면… 가족의 재발견이랄까요? 서울에 살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되어서 기쁘죠."

인터뷰를 마치고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다시 10층을 걸어서 내려가던 중 이 아파트에 사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환한 얼굴로 우리에게 '봉수와'라고 인사했다. 돌아오는 길, 파리의 밤하늘을 보니 문득 한국에 두고 온 두 딸아이가 생각난다. 잘 지내고 있을까? 며칠 후면 신학기가 시작되는데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 된다. 딸아이 생각이 유난히 나는 것은 비단 저녁에 마신 와인 탓만은 아니리라.

오마이뉴스 <유러피언 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태그:#저출산, #유러피안 드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