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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창간 10주년기념 특별기획으로 '유러피언 드림, 그 현장을 가다'를 연중 연재한다. 그 첫번째로, 시민기자와 상근기자로 구성된 유러피언 드림 특별취재팀은 '프랑스는 어떻게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나'를 현지취재, 약 3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취재정리: 김영숙 시민기자
공동취재: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로레알 백화점 사업부의 인력자원 담당자인 엠마뉴엘 파브르씨는 "아이를 낳은 후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의 수가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출산휴가 중에도 봉급이 다 나오는데, 누가 쉬면서 돈 버는 회사를 그만두겠냐? 미치지 않고서야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로레알 백화점 사업부의 인력자원 담당자인 엠마뉴엘 파브르씨는 "아이를 낳은 후 회사를 그만두는 여직원의 수가 어느 정도 되냐"는 질문에 "출산휴가 중에도 봉급이 다 나오는데, 누가 쉬면서 돈 버는 회사를 그만두겠냐? 미치지 않고서야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은 없다."고 잘라말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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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직장 여성이 임신하게 되면 일을 그만두는 일도 아직 있는데, 이 로레알 회사의 여성들은 어떤가요?
"그래요? 여기선 그런 일이 전혀 없습니다.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왜 아이를 가졌다고 직장을 그만둡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말을 통역을 통해 듣는 순간. 파리 직장여성이 한국 상황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쏟아낸 말이 내겐 "너희 미쳤니?"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 기업 규모 35위의 화장품회사 로레알. 그 본부가 있는 파리외곽 클리쉬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의 <유러피언드림: 프랑스편> 특별취재팀을 만난 여성간부 엠마뉴엘 파브르(45)는 적어도 이제 프랑스에서는 일하는 것과 아이 키우는 것 중 양자택일을 강요 받는 사회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런 분위기는 인터뷰 곳곳에서 감지됐다. 우리는 3월 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로레알을 방문해 5명의 여직원을 만났다. 그들 모두 아이 키우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였다.

첫 인터뷰 대상자로 소개받은 네 아이의 엄마 소피 메이어(32).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닮은 외모에 근사한 차림새, 자신 있는 모습까지…. 네 아이의 엄마로 여겨지지 않았다.
화장품 회사에서 일해서 그런지 아름답고 멋지다는 첫인사에 "로레알 화장품을 이용해서 그런 것 같다"며 회사PR도 잊지 않는 소피. 그녀에게 직장생활과 육아의 병행이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오전 7시에 아이들을 집 근처 크레쉬(탁아소)에 맡기고 출근하고, 오후에는 보모가 아이들을 집으로 다시 데려가서 간단한 가사일까지 해주는 편이라 직장생활에 어려움은 없어요. 특히 내 경우에는 두 번째 출산이 세 쌍둥이여서 회사의 출산휴가규정에 따라 11개월의 출산휴가를 이용할 수 있었어요. 그 동안 급여도 그대로 받았지요."

(일반적인 경우는 16주, 셋째 아이 이상의 출산이면 26주인데, 쌍둥이 출산은 추가적인 특별한 배려가 있다)

"나는 출산휴가 중에 승진했다"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로레알의 사원교육 담당 직원 소피 메이어씨는 세쌍둥이를 기르는 워킹맘이다.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로레알의 사원교육 담당 직원 소피 메이어씨는 세쌍둥이를 기르는 워킹맘이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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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발언은 그 뒤에 이어졌다.

"저는 출산휴가 다녀와서 승진한 상태로 복직했어요. 출산휴가 중에 원래 부서에서 일할 건지 아니면 다른 부서에서 일할 건지 내가 선택할 수 있었고, 복직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환영해줬답니다. 그런 분위기가 여기에서 더욱 일하고 싶게 만드는 요인이지요."

물론 로레알의 프랑스 본사 여성근무자 비율이 60%이고, 주 고객이 여성인만큼 여성 친화적 기업의 선두주자가 되려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출산휴가 중에 승진을 해서 복직한다? 이거 한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인 나만해도 직장에서의 임신, 출산으로 인해 그해 승진 대상에서 누락되는 건 당연하다는 분위기에서 근무해 왔다. 실제 둘째 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과장진급에서 누락된 경험도 있다.

내가 다닌 직장은 대기업이었고 여성비율이 60%나 되며, 한국 내에서는 모성보호를 위해 최상급의 복리후생을 제공하는 회사였다. 그럼에도 출산에 관련된 부담은 내가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했다. 특히 '임신해서 일을 소홀히 한다, 아이 있는 엄마라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라도 남보다 더 하려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었다.

7명의 일행이 앉은 걸음으로 이동한 까닭

그 다음으로 우리는 로레알에서 운영하는 크레쉬(탁아소)도 방문할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약 5분 정도 걸으면 다다를수 있는 거리에 크레쉬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벽에 붙어있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들. 이곳 직장 크레쉬에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이다. 사진 밑에는 이름과 담당 분야가 적혀 있다. 특이한 것은 심리학, 간호학 분야의 교사가 같이 있다는 것. 총 40명의 영유아를 돌보는 이 크레쉬에 교사가 모두 14명이었다. 아이 3명당 교사 1인이 배정된 셈이다.

영아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크레쉬 원장이 우리에게 주의를 준다.

"아이들 방에 들어갈 때는 키를 낮춰주세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아이들이 놀라지 않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요청이었다. 7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은 모두 앉은 걸음으로 이동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프랑스 코드. 여성을 대하든, 아이를 대하든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사회 문화. 바로 그것이었다. 작년 기준으로 유럽 내 출산율 1위인 프랑스(2.0명)와 세계꼴찌수준인 한국(1.15명)의 차이를 가져오는 핵심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지 않을까?

'출산과 육아? 그거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능력 있으면 둘 다 하고, 안 되면 일을 말든지 아이를 갖지 말든지. 니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게 국가나 회사에서 신경 쓸 거리가 되나? 경쟁력 강화, 수익 창출,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데….'

여자가 일도 하고 아이도 갖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의 욕구인 것이지, 그걸 국가에서까지 챙겨주어야 할 사안이라는 공감대가 없다는 것. 그것이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였다.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로레알이 회사 돈을 들여 운영하는 직원용 크레쉬(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엘렌.
 프랑스 내에서도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 1순위로 꼽히는 로레알이 회사 돈을 들여 운영하는 직원용 크레쉬(탁아소)에 아이를 맡기는 엘렌.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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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엔 지금과 달랐다"

그러나 로레알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이런 의식의 변화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구내 귀빈 식당에서 취재일행과 점심을 함께하던 홍보책임자 장-도미니크 또르띨(Jean- Dominique Tortil)씨의 말이다.

"내 할머니 세대에서는 꿈조차 꾸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여자가 일을 하면서 가사와 육아를 동반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지금의 한국처럼 여자의 부담이 컸지요."

우리의 위치는 도미니크씨의 부모 세대 수준에 와 있다. 한 세대의 기간 동안 프랑스는 정부-기업-가정-사회에서 남녀평등에 대한 의식변화가 일어났고 그 결과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물론 이 나라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일하며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은 된다.

한 세대 후,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도 프랑스처럼 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외국 기자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와 이렇게 물어볼 날이 올까?

"한국 부모들은 어떻게 출산파업을 풀었습니까?"

오마이뉴스 <유러피언드림:프랑스편> 특별취재팀 :
오연호 대표(단장), 김용익 서울대 의대교수(편집 자문위원), 손병관 남소연 앤드류 그루엔 (이상 상근기자) 전진한 안소민 김영숙 진민정(이상 시민기자)


태그:#저출산, #프랑스, #로레알, #유러피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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