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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사망선고를 받았던 '수도 이전'의 불씨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한나라당이 세종시 문제로 격심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 추진론이 제 3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헌재가 '관습헌법'을 들어 수도 이전을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니 아예 수도를 서울이 아닌 곳에 둘 수 있도록 헌법을 고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행정부처는 물론 청와대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겨간다면 행정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뿐더러 국토의 균형발전까지 꾀할 수 있다는 셈법이다.   

 

이같은 주장은 한나라당 내에서 아직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방선거와 개헌 정국, 또 차기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여당과 야당의 각 정파간 파워 게임 속에서 공감대가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경필 "개헌 통해 청와대·국회·대법원까지 모두 옮기자"

 

4선의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1일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부처는 물론이고 청와대·국회·대법원까지 모두 옮기는 '수도이전'을 하자"고 제안했다.

 

남 의원은 "국민과의 신뢰를 강조하며 원안으로 가야한다는 주장도 옳고 분할의 비효율성을 주장하며 수정안으로 가야한다는 얘기 또한 옳다"며 "국민과의 신뢰와 국정의 효율성은 둘 다 중요한 가치지만 국토균형발전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위해 '수도를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명시하는'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며 "최종적으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판단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의원은 '수도 이전'의 필요성으로 극심한 수도권 과밀화를 지적했다. 그는 "머지않은 10년 후, 서울·경기·인천을 합한 수도권 거주인구는 2810만 여명으로 전체인구의 57%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이 작은 수도권에 인구의 60% 가까이가 모여 사는 나라가 정상이냐, 심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아닌 '서울 공화국'"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쪼그라들고 있는 각 지방을 어떻게 살릴지 심각하게 고민해 지역적 특성을 살린 특화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서울을 죽이자는 게 아니라 기능을 적절히 나누어 국토의 조화로운 발전을 이루면서 서울과 수도권에 씌워져 있는 각종 규제를 풀어 명실상부한 동북아의 경제중심수도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의원은 끝으로 "이번 정부에서 어렵다면 다음 대선에서 수도 이전을 공약하고 그 결과에 따르면 된다"며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을 투명하게 제시하고 표로써 당당하게 국민에게 심판받고, 그 결과에 '쿨하게' 승복하자"고 말했다.

 

수도권을 지역구(수원 팔달)로 둔 중립성향의 남 의원이 이같은 주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달 22일 한나라당 세종시 의원총회 첫째 날에도 "부산·대구·광주 등 주요 도시를 특화 발전시키고 충청도는 수도 이전을 통한 행정과 교육의 중심지로 만들어야 한다"며 전면적인 수도 이전을 제안했다.

 

반향은 없지만... 심심찮게 불거지는 '수도 이전론'

 

수도 이전 주장은 당내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의 격렬한 대립 속에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20여명에 이르는 중립성향 의원들 내에서는 심심치 않게 표출되고 있다.

 

22일 의총에서 중립성향 일부 의원들은 행정부처 일부 이전이 아니라 '수도 이전'을 검토하자고 주장했다.

 

3선의 이주영 의원은 "개헌 논의에 발맞춰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수도 이전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한 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초선 조전혁 의원도 "나는 친이도 친박도 아니고 친노(친노무현)"이라며 "일단 원안대로 추진하다가 개헌을 논의할 때 수도 이전도 본격적으로 토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이는 세종시 문제에 대해 '노무현의 망령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 살아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이계 중진 정의화 최고위원도 "수도 이전에서 나라의 운명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며 수도이전을 대안으로 내놨다. 당내 세종시특위 위원장이기도 한 정 최고위원은 지난 달 26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세종시 수정 논란을 계기로 단순히 부처 이전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해법을 수도 이전에서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주 내 구성될 중진협의체에서 세종 '원안 고수'와 '원안 수정'이라는 대립의 틈바구니 속에서 '개헌을 통한 수도이전'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이 현실적인 힘을 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서울시장 시절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행정부처 이전에 대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막고 싶다"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주류가 '수도 이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지방선거 후 개헌 논의가 시작된다 해도 각 정파간 이혜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될 개헌 정국에서 수도 이전을 위한 개헌에 합의가 이루어질지도 미지수다.

 

미지근한 민주당... 노무현의 유산 다시 빛 볼까

 

특히 '행정수도 건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대선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민주당의 태도도 걸림돌이다.

 

민주당은 세종시 정국에서 세종시를 백지화하려는 청와대와 친이계에 맞서 홀로 싸우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만 바라보고 있다. 오히려 한나라당 내에서 '개헌을 통한 수도 이전론'이 불거지는 등 민주당은 여당 내 논란을 뛰어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수도 이전 개헌이 좋은 아이디어지만 행정부처 이전도 안하겠다는 대통령이 나서겠느냐"며 "민주당 내에서는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 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수도 이전'은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정국을 달굴 핵심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세종시가 원안대로 추진된다 해도 행정기관 분산에 따른 비효율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수정안이 관철된다면 선거를 앞두고 충청 민심을 잡기 위한 수도 이전 공약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친박계가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는 것도 "세종시가 백지화 됐을 때 2012년 대선에서 야당이 원안 추진을 공약하면 충청권에서 필패"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차기 '친노' 대선 주자 중 '노무현의 유산'인 '행정수도 건설'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최근 충남지사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의 왼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부처 분산에 따른 행정 비효율 문제는 청와대가 이전하면 해결된다"며 "여야 합의로 개헌을 통해 행정수도 문제를 실현해 볼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세종시 수정 논란을 둘러싼 지리한 여당의 정파 갈등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에 여기에 차기 대선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민심 잡기 경쟁이 이어진다면 '수도 이전'이 현실적 대안으로 떠오르지 말라는 법도 없는 셈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기고 떠난 유산인 '수도 이전'의 수명이 아직 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태그:#세종시, #수도 이전, #노무현, #남경필, #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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