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열광시켰던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국제대회가 폐막할 때마다 늘 그랬듯이 당분간 TV를 볼 기분이 안 들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스포츠라는 즐거운 놀이에 '국가'의 자존심을 건 올림픽과 같은 국제대회는 팍팍한 일상에 찌든 현대인들이 가장 맘 편히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대상이다. 뜻대로 되지 않는 세상사에 잘 나가는 올림픽 선수들의 금메달 소식을 듣고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내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뻐하기도 한다.

 

지난 올림픽 기간 동안 포털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는 '메달 순위'였다. 스포츠와 무관한 사이트에서도 실시간으로 대한민국의 메달 획득 상황을 메인에 띄워놓았다. 실제로 메달 '순위'라는 것은 올림픽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산정방법도 나라마다 제각각이다.

 

실제로 대회 초기 국내에서는 대한민국이 종합순위 2위라고 발표된 반면, 동시에 밴쿠버올림픽 캐나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순수 메달 개수'로 순위를 매겨놓아 국내 언론보다 훨씬 낮은 순위였다.

 

 스포츠와 관계 없는 일반 포털사이트에서도 실시간으로 메달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

스포츠와 관계 없는 일반 포털사이트에서도 실시간으로 메달 순위를 집계하고 있다. ⓒ 박예슬

 

그러나 우리 언론의 희비는 메달 순위와 색깔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갈렸다. 예전에 비하면 '메달 색깔에 연연해하는 모습'을 '겉으로는' 삼가려는 노력이 보였지만, 여전히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아쉬운', '불운의' 등의 수식어가 자연스레 붙었다. 대다수의 스포츠 선수들이 한 번 밟아보기도 어려운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까지 획득한 일이 뭐가 그리 '아쉽고', '불운'하기까지 한 걸까?

 

'선수'가 아닌 '병사'가 된 국가대표들

 

이유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메달이 이미 '그들'만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메달에는 민족의 역사와 자존심이라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일부에서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가 출전하는 여자 피겨 싱글 종목은 이미 한일간의 전쟁으로 재탄생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공교롭게도 '한일병합 100주년'이라며 대한민국의 '설욕'에 감격했다.(<중앙일보> 3월 1일자) 김연아의 피겨 경기는 스포츠가 아니라 민족의 역사와 자존심을 건 전쟁이 됐다. 올림픽 선수라기보단 전쟁에 파병된 병사들을 대하는 느낌이다.

 

올림픽 선수들에 대한 이러한 시각은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금메달 선수들의 '카퍼레이드'에서 명백하게 드러났다. 힘든 경기를 마친 후의 휴식도 즐기지 못하고 베이징에 '억류'됐던 선수들도 있었다. 일부 누리꾼들은 80년대를 방불케 하는 이 '촌스러운' 행사를 비난했지만, '국가대표'로서 당연히 국민에게 해야 하는 의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올해도 비슷한 논란이 있는 듯하다. 2일 동계올림픽 선수단이 귀국하는데, 세계 선수권 대회 일정이 멀지 않은 김연아 선수가 갑자기 예정을 바꿔 짧은 귀국을 한다. 당초 인터뷰에서 귀국 예정이 없다고 했던 것과는 다르다. 대표단의 기수가 되어 입국 후에는 아마도 대통령과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고 한다.  김 선수가 국내에서 머무를 시간이 1박 2일 정도라고 하니, 캐나다에서 날아올 비행 시간에 비하면 너무 짧기만 하다. 시차 적응 등 대회를 앞두고 일정이 빠듯할 김 선수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귀국 결정 자체는 김 선수 본인의 의지일 수 있다. 큰 대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어깨가 한층 가벼워졌을 그녀는 오랜만에 귀국해 잠시나마 가족들과 친구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보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마땅히 귀국해서 대통령 및 국민들에게 인사해야 하는 것이 '올림픽 국가대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시각이다.

 

올림픽 국가대표의 의무?

 

물론 국가대표 선수들은 국가의 지원하에 훈련과 교육을 받았고, 성과(메달)에 따라서는 국민의 세금으로 연금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사실들이 그들의 금메달에 어떤 의무감을 부여할 수는 없다.

 

각자 자신들의 꿈과 목표를 위해, 제대로 된 지원조차 없어 열악한 환경에서 시설을 옮겨다니며 피와 땀을 쏟고, 젊음을 바친 것이다. 돈과 혜택, 훈련 시설의 개선 등은 그들이 세계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1등을 한 이후에나 주어지는 것들이다.

 

사실 올림픽 대회에서 국가대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자존심 승부는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식적으로 국가의 이름이 걸려 있기 때문이고, '국위선양'에 따른 경제·사회적 부수익도 걸려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인의 축제'를 즐긴다기에는 지나치게 비장하고 심각한 면이 있지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지나친 심각함은 선수들에게 '부담감' 밖에 되지 않는다. 선수들도, 국민들도 지나친 의무감에서 벗어나 '세계인의 축제'를 흠뻑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2010.03.01 17:34 ⓒ 2010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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