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모체문명은 다양한 토기와 화려한 유물들, 그리고 뛰어난 건축을 보여주며 이를 통하여 그들의 강대한 문화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그러한 기술의 절정은 시판 피라미드에서 나타나며 여기에서는 수많은 문물들이 쏟아지면서 수많은 고고학자들과 일반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단순히 빼어난 문물들만 발견된 점에서 그친 게 아닌 당시 수학적 능력이나 의례의 모습, 그리고 사회적 구성 등을 모두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지금 와서 시판 피라미드를 보면 발가벗겨지고 황량한 토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이 유적의 자세한 내력과 유물들을 통하여 과거를 복원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시판 피라미드(Tumbas Reales de Sipán)는 1987년, 페루 북부 트루히요의 람바예케 계곡에서 발견되면서 세상에 그 존재가 드러났으며 이는 최초로 발견된 모체 시대 통치자의 무덤이다. 시판이란 모치까어로 달의 집이라는 뜻이며, 시판 피라미드는 흙벽돌로 지어진 두 개의 거대한 피라미드 제단과 이들을 연결한 작은 기단, 그리고 장례용 기단으로 구성된다. 서쪽의 피라미드는 한 변이 140m, 높이는 35m이며, 이와 연결된 동쪽 피라미드는 한 변이 70m, 높이는 37m이다. 이 무덤은 최소 2대 이상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300년 경 페루 북부 연안 람바예케지역의 맹주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시판 왕, 늙은 왕, 제사장, 장군, 왕비 등 시기와 계급이 다른 10개의 무덤이 각 층에서 산발적으로 발견되었으며,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 중에서도 시판 왕과 늙은 왕의 유물이 다수 출품되었다. 이들의 유물들은 황금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유물들이 많으며 그들의 생활 모습을 파악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 유적에서 나온 중요한 유물들을 다수 출품하였음은 물론이거니와 당시 사람들의 복식도 재연해 놓았다. 전시관의 한쪽에는 그러한 복식을 입은 마네킹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관람객들을 이를 보면서 그 화려함에 깜짝 놀라면서도 또한 장신구들이 너무 화려하고 무거워 보인다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시판왕의 피라미드에서 나온 황금문물들

 

 

 

시판왕은 시판 피라미드 중에서도 제일 위층에서 발견되었다. 시판피라미드는 6개의 층위로 구분하는데 제일 위는 시판왕의 무덤과 제사장의 무덤이, 그리고 3번째 층위에서는 약탈된 무덤이, 제일 아래에 있는 층위에서는 늙은 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이는 시판 피라미드에 누구를 묻을 것인가가 계획적으로 진행되었고, 그에 따라서 정교하게 축조되었음을 의미한다.

 

시판왕의 무덤(Senor del Sipan)에는 시판왕 외에도 다른 여러 사람들도 같이 묻혀있었다. 세 명의 부인 또는 첩들과 두 명의 전사, 그리고 한명의 아이와 한명의 파수꾼, 그리고 다리가 잘린 문지기와 두 마리의 야마와 개에 둘러 싸여 있었다. 이는 시판왕이 묻힐 당시 다른 이들도 동시에 묻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를 순장이라고 부른다. 순장은 무덤의 주인공, 즉 피장자가 묻힐 당시에 동시에 묻히는 사람들로서 앞서 살펴본 것 처럼 그 대상은 지위가 낮다기보다도 오히려 높은 이들도 해당되었다.

 

특이한 점은 시판왕을 제외하곤 발목이 잘린 시신들이 보인다는 점인데, 이는 시판왕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의 주위에서 계속 지키고 있으라는 의미로 추정된다. 시판왕은 금과 보석으로 장식한 수많은 장신구들을 달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강대한 권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이후 최고의 발굴로 불리는 이유도 그러한 유물들이 하나도 도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점 때문이다.

 

시판왕의 무덤에서는 놀라운 유물들이 여럿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 이번 특별전에 출품된 두 개의 유물을 소개한다. 하나는 '시판 왕 장식 귀걸이'로서 금과 터키석으로 만들어 진 유물이다. 중앙에는 병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곤봉을 든 전사의 모습이 보인다. 이 곤봉은 끝이 뭉툭하여 큰 충격을 받게 만들어졌으며 당시에 쓰인 주요 무기였다. 그리고 새의 날개와 신전을 나타내는 머리장식, 부엉이 머리 목걸이, 반월형 딸랑이, 코걸이 등의 장신구는 시판왕의 군사적이면서도 종교적인 힘을 상징한다고 한다.

 

'신 장식 딸랑이'라는 유물도 있는데 이는 아이아파엑이라는 신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한다. 이 반월형 금제 딸랑이는 신분을 상징하기 위해 허리띠에 매달았다고 하는데 대부분 이렇게 둥근 금판의 양쪽에 신의 모습을 표현한 다음, 반으로 접은 부채꼴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자리에는 8개의 방울이 달려 있으며, 중앙에 새겨진 신은 한손에는 전리품을,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투미를 들고 있어 인간의 죽음과 삶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늙은 왕의 무덤과 펠리노 신상

 

 

 

앞서 말했다시피 시판 피라미드의 가장 아래에는 늙은 왕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늙은 왕의 무덤(Viejo Senor del Sipan)은 이로부터 2년 뒤인 1989년에 발견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시판왕의 무덤과 견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을 감탄하게 하였다. 이 유적은 페루 고고학계 최고의 업적으로 평가받을 정도이며, 그런 점에서 이번 특별전에 그 유물들이 다수 출품되었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갖는다.

 

늙은 왕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은 시판왕의 무덤에서 나온 유물들과 유사하며 또한 상징성이 강하다. 장신구와 복식으로 꾸며진 부장품 자체만으로도 16개의 층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화려하고 다양하며 이들은 펠리노, 문어, 게 등을 표현하고 있다. 늙은 왕 또한 우주의 질서를 통제하는 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러한 성향들은 유물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특별전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인 '펠리노 신상'은 정교함과 기괴함으로 묘한 흥미를 끌고 있다.

 

펠리노 신상은 늙은 왕이 있던 관에서 출토된 부장품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도 불가사의한 형상을 하고 있다. 금동으로 제작하였으며 사람의 모습에 기괴한 차림을 하고 있기에 신비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머리에 쓴 관에는 뱀의 몸통 양쪽에 펠리노의 머리가 표현되어 있으며 이마에는 두 마리 뱀의 몸통에 각각 물고기가 머리가 장식되어 있다. 손톱과 발톱이 뾰족하게 나 있으며 얼굴은 무섭게 찌푸리고 있으나 왠지 익살스럽다는 느낌마저 준다. 이빨까지 모두 정교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경외심마저 들게 한다.

 

이 외에도 '거미인간 장식 목걸이'라는 유물도 특이하다. 금으로 제작된 이 유물은 가운데에 사람의 얼굴이 있고 그 얼굴의 뒤쪽에 거미의 다리처럼 8개의 다리를 두었다.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머리에 무엇인가 쓰고 있는게 아닌 거미의 머리로서, 사람의 얼굴은 몸통을 이루고 있다. 거미는 모체 신화에 있어서 풍요를 상징하며 그들의 조상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뒷면에는 뱀과 새가 합쳐진 모티브가 바람개비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물과 바람의 움직임을 상징한다고 한다.

 

모체문명의 멸망원인은 기상이변에 있었다?

 

 

그럼 이렇게 화려한 문화와 강한 권력을 지닌 모체문명이 멸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세계사를 통틀어서 국가의 흥망성쇠는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모체의 멸망은 일반적인 국가의 멸망과는 조금 다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자들은 모체의 멸망 원인을 기상이변에서 찾고 있다. 바로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엘리뇨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엘리뇨는 스페인어로 '남자아기' 혹은 '아기 예수'라는 뜻인데, 이러한 명칭이 붙게 된 이유는 엘리뇨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엘리뇨의 원인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단 일어나게 되면 그 효과는 무시무시하다. 엘리뇨가 일어나면 페루 및 에콰도르 일대의 해상의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게 된다.

 

단순히 수온이 오르는 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겠냐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 피해는 막대하다. 엘리뇨 현상이 심하게 일어날 때에는 수온이 7~10℃ 정도 상승하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장이 황폐화하게 된다. 또한 상승기류를 일으켜서 폭우나 홍수 같은 기상이변을 일으키는데, 이로 인하여 작물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게 된다.

 

오늘날에도 기상이변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결코 쉽지 않는데,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하늘을 달래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인간의 피를 더욱더 바쳐야 한다고 생각하였고, 이로 인하여 희생의례가 번번이 일어나게 되었다. 몇 차례의 희생의례는 그에 대한 공포감의 조성과 민심의 일시적인 안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지변이 계속 일어나게 되면 오히려 통치자의 자리가 위협받게 된다.

 

또한 희생의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이러한 혼란기를 틈타 안데스 남부의 와리제국과의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능력을 의심받는 통치자들과, 그들에게 반감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외부 세력의 공격은 결국 모체문명을 붕괴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모체문명의 멸망은 기상이변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늘날에도 기상이변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이로 인하여 대참사가 발생하는 일이 잦다. 모체문명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할까? 그들의 찬란한 문화유산의 뒤에 있던 어두운 면, 그리고 비참한 최후가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러한 최후를 보고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국립중앙박물관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에 출품된 유물 중 시판 피라미드에서 출토된 모체시대 유물들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았습니다.


태그:#국립중앙박물관, #태양의 아들 잉카 특별전, #시판 피라미드, #모체, #잉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