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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동창생이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요즘 막걸리가 대세인지라 포천막걸리를 시켜 반주삼아 화기애애한 정담(情談)을 나누었습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막걸리도 몇 순배 돌자 자연스레  얘기는 정담(政談)으로 바뀌었습니다.

 

화제는 세종시를 둘러싼 친이, 친박 싸움에 관한 관전평이었습니다. 학교 때부터 성실하고 합리적인 친구라고 신망이 있었지만 왠지 전라도 사람에 대한 곱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조목조목 이명박 정권의 실정과 독선에 대해서 그리고 민주주의 퇴행에 대해서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대기업 이사를 하는 친구가 한마디 했습니다. 세종시는 노무현의 대선 승리를 위한 졸속공약이고 지역감정을 이용한 불건전한 국책사업이라고, 그래서 국가적인 미래를 위해 세종시는 수정되어야 하고 하루속히 소모적인 논쟁을 중단해야 한다고. 박근혜는 그린 식으로 하면 차기 대권은 어렵다는 말까지 곁들여 반박했습니다.

 

저녁식사는 자연스레 술자리로 변하고 막걸리 한 병을 더 시키면서 친구들의 식탁도 친이,친박의 싸움터가 되었습니다. 두 친구의 주고받는 설전은 드디어 이명박과 박근혜의 사생활까지 들춰내는 식으로 흘러갔습니다. 그 즈음 내가 끼어들었습니다. 친이·친박이 싸우다 야당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되찾으면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두 친구의 표정은 놀랍게도 똑같았습니다.

 

그건 턱도 없는 소리랍니다. "민주당이 그 실력으로 정권을 되찾는다고? 지금 국민들의 민주당 지지도 보면 모르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만만하게 나를 바라보는 두 친구의 일치된 반응에 나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지난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했고 지금도 겉으로는 한나라당의 지지가 높게 나오지만 그것은 주눅 든 국민들이 의사를 유보하고 있을 뿐이고, 선거 때가 되면 숨어있는 2%가 아니라 5%가 나타나게 될 거야…라고 기대감을 마치 사실처럼 얘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박근혜를 편들던 친구가 "그래 민주당은 누가 대권후보감이냐? 대안이 있는 거야? 너희는 아직도 한참 반성해야 돼"라며 뼈있는 충고를 던졌습니다.

 

이에 대기업 이사인 친구가 "민주당이 야당 노릇 제대로 하면 나도 좋겠다"라고 비아냥대더니 "민주당은 속으론 박근혜가 이겼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면서 정작 어부지리만기다리는 바보들"이라고 거침없이 토해놓았습니다. 민주당도 사실상 친박이라고까지 했습니다(이쯤 되면 막가자는 얘기죠?).

 

결국 다음 대선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사각의 링 위에는 친이·친박만 올라가 있고 민주당은 관중들과 함께 친박이 이기기를 응원하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명백한 현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은 정권을 다시 잡기에는 너무 허약하고 보잘 것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그건 네가 더 잘 알잖아?"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반문하였습니다.

 

이쯤 되자, 대학 때에도 말수가 적고 중립적인, 정치에 대한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친구가 한마디 하면서 저녁자리도 끝났습니다. 그 친구 왈,

 

"친이나 친박이나 결국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에 대해서는 확신이 깔린 거 아니냐? 그리고 '아무나 아무나 이겨라 정권만 민주당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더하면 민주당은 아직 먼 것 같은데, 그게 속 터지는 일 아니냐? 물론 지방선거나 다음 총선에서 일정정도 민주당이 상대적인 균형은 찾겠지만 말이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저녁식사는 이렇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진 후 나는 포천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습니다. 민주당이 위협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이·친박은 그들의 커다란 파이를 두고 사생결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싸움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끝날 것입니다. 국민들이 결코 친이·친박의 정쟁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지켜보는 이유는 민주당이 아직 국민의 마음을 담을 만한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명백한 민심을 들은 저녁이었습니다.

 

갈 곳 없고 구심점이 없는 민심의 저항은 언제나 강압에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당분간 이런 퇴행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왜 민주당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희망은 없는 걸까요? 지금도 민주당은 알량한 당권, 대권 주자가 누가 되느냐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링 밖에서.

덧붙이는 글 | 이철우 기자는 전 국회의원입니다. 


태그:#세종시, #친이 친박,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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