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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31일 막내동생이 셋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제수씨가 직장 생활을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첫째와 둘째 아이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셋째도 어머니가 돌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가을 감나무 위에 올라가셨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더 이상 셋째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 때문에 제수씨가 직장생활을 그만 둘 수도 없어 결국 아내가 낮에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2008년 1월 20일부터 막내 조카(예설)가 우리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새벽 6시 30분에 일어나 우리 집에 오면 7시 40분쯤 됩니다. 태어난 지 여섯달째부터 예설이는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벽별보고 나와 저녁별 보면서 들어가는 예설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릅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하는 예설이 때문에 우리 집도 아침마다 바빴습니다.

 

2008년 1월은 아직 우리 집 막둥이가 1학년 입학 전이었는데 우리 집 사랑을 독차지했던 막둥이는 예설를 용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꼬집거나 누워있는 아이를 뒤집어 버렸습니다. 자기가 자는 아이를 깨워놓고 "엄마, 예설이가 일어났어요!"라고 말했다가 엄마에게 "네가 꼬집었잖아!"고 꾸중하면 울면서 "예설이가 그냥 일어났다"고 울먹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강력한 라이벌이 생긴 것이지요, 아내가 예설이 '육아 일기'를 썼는데 이런 내용이있습니다.

 

"강적 라이벌! 오빠가 선교원 갔다 오는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큰 엄마, 큰 아빠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눈치 백단 김예설! 너도 오빠를 이해해야 한단다. 그동안 체헌이(막내) 오빠가 얼마나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는지 아니! 오빠의 자리를 지금 네가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 때문에 오빠가 네게 심술을 부리는 거란다. 오빠도 네가 제일 예쁘다고 하더라." (2008년 2월 16일)

 

예설이가 우리 집에 온 후로 재미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 집 차가 1995년 7월산 프라이드인데 그 작은 차에 아이가 넷이 타고 있으니 주유소 주유원들이 얼마나 웃는지 모릅니다. 한 번에 예설이 언니 둘과 함께 진주에 있는 대학병원에 갔다가 은행에 잠시 들렸는데 젊은 부부가 아이를 여섯이나 두었다고 은행이 준비한 선물을 잔뜩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주 두 주,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예설이는 우리 집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우리 집 막둥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졌고, 학교에 다녀오면 사랑한다고 뽀뽀도 해주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이 같이 있다고 자기 엄마와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섭섭한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 집에 와서 배밀이를 했고, 손잡고 앉기, 손잡고 일어서기, 젖니가 났습니다. 우리를 보고 '엄마' '아빠'라고 불렀습니다. 2008년 12월 26일에는 드디어 '응아'를 했습니다. 이 녀석은 얼마나 많이 먹는지 하루 2~3번은 응아를 했습니다. 기저귀 값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엄마 '응아'"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강력한 라이벌있던 막둥이와는 마지막까지 사랑다툼을 하였는데 우리 집 큰 아이는 정말 좋아했습니다. 말을 하면서부터 '오빠'라면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때는 눈을 마주치면서 서로 좋아했습니다. 큰 오빠가 학교 다녀오면 "큰 오빠가 왔다"면서 안아주고 뽀뽀했지요. 큰 아이도 예설이가 뽀뽀해주면 자기도 좋다고 안아 주었지요.

 

그런데 막둥이가 엄마 무릎 위에 앉으면 밀어내면서 큰 엄마 무릎 위에 가서 앉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내가 큰 엄마 아들"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막둥이는 "아니다 내가 우리 엄마 아들"이라고 반박했습니다. 둘 다 엄마 아들이라는 다툼을 보면서 아내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결국 막둥이는 예설이를 이길 수 없었고, 서럽게 울었습니다.

 

막둥이의 강력한 라이벌이었고, 우리집 귀염둥이었던 예설이가 지난 금요일(19일) 우리 집을 떠났습니다. 22일부터 어린이집을 가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자기 엄마와 가는데도 방안에서 잘 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낮에는 우리 집에 함께 있었는데 훌훌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차마 잘 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섭섭함과 슬픔이 함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솔직히 우리 집에서 데리고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어린이 집에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강적이었던 막둥이에게 이제 우리 집에 예설이가 오지 않는데 어떤 마음인지 물었습니다.

 

"막둥아, 이제 예설이 어린이집에 가는데 어떤 마음이 들어?"
"좋아요."
"뭐 좋다고? 아빠는 마음이 아프고, 슬픈데... 너는 좋아? 2년 동안 우리 집에 있었는데. 섭섭하지 않아?"
"섭섭해도. 예설이가 내가 받을 사랑을 많이 빼앗아 갔잖아요. 그리고 엄마 무릎 위에 앉으면 나를 때렸어요."

"그래, 막둥이가 엄마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지. 하지만 예설이가 우리 집에 있으면서 얼마나 우리 집에 웃음이 넘쳤는지 몰라. 너도 알잖아."

"맞아요."

 

막둥이는 엄마 사랑을 빼앗낀 것이 마음이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예설이가 집에 간 후 집에서 찍은 동영상이 있길래 아내와 같이 보았습니다. 동영상을 본 후 아내가 눈물이 난다고 했습니다.

 

"예설이가 저런 때도 있었요. 눈물이 나네."
"정말 예쁘죠. 벌써 어린이 집에 간다고. 솔직히 나는 우리 집에 더 있었으면 좋겠다."

"10시쯤 되면 큰 엄마한데 먹을 것 달라고 조르는데 어린이집에서는 시간에 맞춰 새참을 먹는데. 하루 종일 먹는 아이가 이제부터 마음대로 먹지 못할 것인데. 마음이 아파요."

 

2년 동안 함께 하면서 조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집 넷째 아이로 생각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전화를 했는데 "큰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2년 동안 함께 했던 예설이가 떠난 자리 마음이 아릴 정도로 아픕니다.

 

예설아 큰 아빠야.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동무가 되거라.

의와 거룩함, 자비와 온유, 사랑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귀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위해

큰 아빠와 큰 엄마는 항상 기도하겠다.

 

▲ 사랑하는 예설이 모습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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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카, #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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