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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식이 끝난 후 함께 사진을 찍는 장학생과 장학회원 일동
 수여식이 끝난 후 함께 사진을 찍는 장학생과 장학회원 일동
ⓒ 이한열장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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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7일 신촌 이한열기념관에서는 제3회 이한열 장학증서 수여식이 열렸다. 총 7명의 대학생들에게 각각 백만 원씩의 장학금이 주어졌다. 웬만한 학점으로는 도전할 엄두도 못 내는 여타 장학금과 달리 이한열 장학금을 받는 데는 학점도, 스펙도 필요하지 않다. 민주 인사의 추천서를 받은 깨어있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기준은 네 가지예요. 첫째, 사회적 약자층의 자녀. 둘째, 우리 사회 민주화에 기여한 분의 자녀나 유자녀. 셋째, 깨어있는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대학생일 것. 넷째, 사회적 기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는 자."

'시민참여형' 장학재단, 이한열 장학회

학점을 따지지 않는 걸 보면 공부만 잘 하라고 주는 장학금은 아닐 테고, 취지가 뭔고 하니 6월항쟁정신 계승과 이한열 열사 추모란다. 열사의 동기 내지는 선후배 되는 연세대 동문들을 중심으로 이한열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회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어느날 모임에서 "요즘 대학생들이 이한열이 누군지도 모르더라" 하는 푸념이 터져나왔다. 어떻게 하면 대학생들이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이한열 장학회다. 최소한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라도 그를 기억하게 되리라는 작은 기대로 시작했다.

고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군부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고 이한열 열사는 1987년 6월 9일 군부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 이한열장학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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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장학회 설립이란 게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장학재단은 기업이나 독지가의 거액 출연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그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 30여 명이 시작한 이한열 장학회로서는 기금만 모으다가 끝장나게 생긴 거다. 그래서 '시민참여형' 모금을 시작했다.

회원들이 월 1만 원씩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18명이 6개월만 모여도 한 학기에 최소한 1명에게는 장학금을 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수입의 일부를 내놓아 만든 시민참여형 장학회가 탄생했다. 기금 조성의 어려움으로 택한 방식이었지만 결과는 더 의미있게 됐다.

용산참사 유자녀에 장학금 지급

1, 2회 장학생은 각 1명씩 연세대 재학생 중에서 선정됐다. 3회째는 모든 대학생으로 문을 넓히고 선정 인원도 늘려, 사실상의 1회인 셈이다. 장학생으로는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거나 진정한 봉사를 실천한 학생들이 선정됐다. 본래 예정된 인원은 6명이었으나 용산 참사 희생자의 유자녀 1명을 추가 선정해 총 7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가 직접 장학생들에게 증서를 전달했다.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씨가 직접 장학생들에게 증서를 전달했다.
ⓒ 이한열장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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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대신 수여식에 참석한 용산 참사 유가족 유인숙(51) 어머님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71)씨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게 됐다고 한다. 참사 이후 민가협이나 유가협 활동을 하면서 배은심씨를 비롯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고 연대해 왔다. 더불어 유씨는 "용산 참사는 사고가 아닌 학살"이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며 끝까지 진실을 향한 투쟁을 이어나갈 결연함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제가... 좋은 곳에 쓸게요!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지지"하는 장학금의 취지가 뜻깊다.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지지"하는 장학금의 취지가 뜻깊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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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기자가 제3회 이한열 장학금 수혜자다. 분명히 자랑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머쓱하기도 하고 돈 생겼단 얘기는 내놓고 하는 게 아니기에(순식간에 없어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기사를 쓸 예정이 없었지만, 막상 장학증서 수여식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원들의 건전성과 장학회의 취지가 너무 훌륭해 그냥 지나치기 미안했다.

기자는 2008년도에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이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비롯 여러 정치·사회 활동을 해 온 것이 높이 평가받았다.

장학회의 취지는 좋은데, 돈 받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다. 귀하게 모인 돈임을 아니까 내 돈처럼 얼씨구나 맘대로 못 쓰겠다. 이 장학금 받은 이상 계속해서 깨어있는 시민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채찍질해야 할 거고, 내게 백만 원을 모아주신 백 분, 그리고 이한열 열사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잡아야 한다.

말은 장학금인데 사실은 빚이라(이런 부담스런 장학금이 다 있나!), 아무래도 남한테 이 빚 좀 나눠야겠다. 우선은 미뤄온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가입부터 해야겠다.

그리고 물론, 장학금 신청할 때 권고받은 것처럼,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꼭 후원회원 가입을 할 생각이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의 말마따나,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니까!

덧붙이는 글 | 이한열기념사업회 홈페이지 www.19870609.com



태그:#이한열, #열사, #이한열장학회, #이한열기념관,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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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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