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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지난 2000년 2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를 내걸고 시민참여저널리즘의 새 장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매년 시민들과 함께 한 참여민주주의의 현장 속에서 의미있는 뉴스의 인물들을 찾아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해왔습니다. 그들의 면면이 바로 <오마이뉴스>가 만들어낸 지난 10년과 맥을 같이 하고 있기에, [창간 10돌 기념] '올해의 인물, 그 후'를 조망하는 연속 기획기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말>
 지난 9일 오전 용산 유가족들이 마석 모란공원에서 음력 1주기 제사를 지냈다. 왼쪽 :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가 고인의 무덤에 술을 뿌리고 있다. 오른쪽 : 고 이상림씨 부인 전재숙씨가 조희주 용산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로부터 술을 받아 고인에게 올리고 있다.

음력으로 용산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 9일 오전, 다섯 유가족이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범국민장을 치른 게 지난 1월 9일이었으니 딱 한 달만이다. 그 때는 노제가 시작되자마자 눈이 내리더니 이번엔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그 날 바로 이곳에서 부인들은 상여를 부여잡고 "우리 애들은 당신처럼 살지 않게 해줘", "왜 그렇게 내 말을 안 듣고 (망루에 올라서) 처참하게 살다 가니"라고 외치며 오열했다. 울다가 기운을 잃으면 그대로 주저앉고 다시 정신을 차려 울부짖는 통곡의 밤이었다.

 

용산 유가족들은 가장 최근, 그러니까 바로 두 달쯤 전에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그러나 상황은 숨가쁘게 변했다. 해를 넘기기도 직전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그동안 고인들을 땅에 묻고 1주기를 치렀으며, 남일당 분향소와 삼호복집 살림집을 정리했다.

 

용산 떠난 유가족 "그런데 마음 붙일 데가 없어요"

 

다행히 다시 무덤 앞에 선 가족들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한숨과 눈물이 없을 수 없지만, 안부를 주고받으며 웃음도 보였다. "이제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까 마음 놓으시라"면서 손을 맞잡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활동가들도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이날 제사에는 미술인들이 많이 왔다. 1년간 용산 현장에서 만들었던 작품들을 담은 '파견미술 헌정집' <끝나지 않은 전시>를 2월 초에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림으로 만든 영정 액자와 함께 따끈따끈한 신간 책을 고인 앞에 올렸다.

 

제사 상차림은 가족마다 달랐다. 고 이상림씨네는 찬합 속에 각종 전과 과일, 고기를 차곡차곡 담아왔다. 부인 전재숙씨는 "이거 어젯밤에 우리 며느리들이 다 했어, 그 집도 어서 장가보내"라고 자랑을 했다. 그러나 막상 다른 가족이 혼기가 다 된 아들을 재촉하자, 전씨는 부러운 표정이다.

 

"너랑 살기 싫으니까 올 추석까진 짝 데려와라"고 말하는 이웃을 바라보던 전재숙씨는 "아들하고 같이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라고 말했다. 구속된 막내아들 이충연 전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의 빈 자리가  눈에 밟힌 것이다. 올해 들어 법원이 검찰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는 등 재판 전망은 밝아졌지만, 섣불리 2심 결과를 점치기는 어렵다.

 

 지난 9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치러진 용산참사 유가족들의 음력 1주기 제사. 고 양회성씨 제사상에는 마른 오징어, 낙지호롱, 삶은 꼬막 등 바닷가 음식이 많았다.

전라남도 순천에서 상경한 고 양회성씨네 제사상에는 독특하게 벌교 꼬막과 낙지호롱(낙지를 젓가락에 돌돌 말아 굽는 향토음식)이 놓여있다. 요리법을 열심히 설명하던 부인 김영덕씨는 "우리 신랑이 생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다해놓고 안 가져왔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아직 멍하고 마음이 안정이 안 돼"라고 말했다.

 

그동안 불면증에 시달려온 유가족들은 참사 1주기가 끝난 뒤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특히 매일을 '투쟁'으로 버텨온 부인들은 이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협상이) 끝나고 돌아가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내비치곤 했다.

 

상처가 깊으니 화해까지는 갈 길이 더 멀다. 전재숙씨와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지난 1월 29일 또다른 희생자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 김권찬씨를 만났다. 교회의 중재로 어렵게 성사된 자리였다. 그러나 악수를 하면서도 유가족들은 "당혹스럽고 마음이 무겁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전씨의 말이다.

 

"(경찰들이)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어요? 그 양반(김권찬씨)도 우리도 다 안됐고 불쌍한 사람들이지. 그래도 편할 수는 없죠. 아직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잘 안 들어요. 집에 가서 앉아있으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요. 병원에서 잠 오는 약도 주고 하는데 그걸로 되나요? 우리가 알아서 추슬러야지. 세월이 가면……."

 

줄줄이 재판... 범대위도 '시즌2' 기지개

 

 용산 남일당  건물 모습. 1층에 있던 분향소와 건물 앞 농성 천막 등이 모두 사라졌다. 화재의 흔적이 남지 않아 일반 철거 건물 같아 보인다.

용산 현장은 이제 조용하다. 골목을 지키던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사라졌지만 철거민과 범대위 활동가들, 천주교 사제들도 볼 수 없다. 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건물은 높은 철제 펜스와 가림막에 둘러싸였다. 하지만 용산 4구역에서 떠난 용산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법정 투쟁이 남아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농성 참가 철거민들에 대한 2심 재판이지만, 범대위 활동가들에 대한 재판, 경찰 전직 간부들에 대한 재정신청 등도 함께 진행 중이다. 지난 10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력 행사는 위법했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했다.

 

협상 타결을 '절반의 승리'로 보고 있는 범대위도 장기전을 준비 중이다. 범대위는 오는 25일 '투쟁평가 및 향후 대응 방향'에 대한 토론회를 연다.

 

이후 '투쟁 시즌2'에서는 용산참사 진상규명, 재개발 정책 전환 등 '절반의 실패'로 남은 과제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마석 모란공원의 다섯 무덤은 아직 비석 하나 갖추지 못했다. 언 땅을 부수어 세운 봉분들이 헐벗은 채로 비닐로 덮여있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한식(음력으로 동지 이후 105일째 되는 날, 올해는 4월 6일)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이곳에 다시 모인다. 그 날은 떼를 입힌 고운 무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꽃샘추위를 지나면 곧 새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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