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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매진 펴냄,2009)
 ├ 글 : 윤성근
 └ 책값 : 12000원

 (1) 헌책방은 어떤 곳인가

책은 책이고 사람은 사람이며 자연은 자연입니다. 책을 놓고 책이라 이름을 붙인다고 이름이 더 높아지거나 더 낮아지지 않습니다. 사람한테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인간'이라 한다고 이름이 더 높아지지 않으며 '사람'이라 한다고 이름이 더 낮아지지 않습니다.

우리 귀에 익숙하면서 좋다고 느끼는 이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지식으로 괜찮다고 여기면서 반가이 맞이하는 이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겉보기에 따라 겉느낌을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밑바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밑바탕은 늘 그대로 있습니다. 밑틀이 흔들리거나 밑돌이 뽑히지 않습니다.

'헌책'이라는 낱말이 꽃등에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예부터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모습을 헤아린다면 퍽 역사가 깃든 낱말입니다. 이와 달리 새로 나온 책을 가리키는 '새책'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합니다. '헌책'이 있으면 마땅히 '새책'이 있어야 하고, 새로 나오는 책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어야 '신간 소개'이니 '북리뷰'이니 하는 자리에 알맞게 쓸 텐데, 2010년을 맞이한 오늘날에도 '새책'은 한 낱말이 못 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이 '새책' 하나뿐이겠습니까만,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안 오르면 어쩐지 꺼려 합니다. 사람들은 국어사전에 오른 낱말이면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이를테면, '파티'나 '프라이'는 국어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이 낱말은 국어사전을 엮은 분들 스스로 '국어순화 대상'이라고 일컫는 낱말인데 국어사전 올림말로 다루고 맙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생일잔치'라 하면 시골스럽고 '생일파티'라 해야 멋스럽다고 여깁니다. '달걀부침'이나 '달걀지짐'은 먹지 못할 밥거리라 여기고, '계란프라이'나 '에그프라이'쯤 되어야 군침이 돈다고 느낍니다.

.. 그래, 진짜 책들은 헌책방에 있다.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거기에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의 책장에서 이사할 때 버려지고, 유학 갈 때 정리돼 고물상이나 쓰레기장으로 들어간다. 그곳을 들추고 파내어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 그 책을 깨끗이 닦고 다듬어 다시 서가에 넣어 두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은 말 그대로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헌책방에 있는 책들은 그렇게 복잡하고 위험한 모험을 거친, 거기서 살아남은 강인한 책들이다 … 헌책방에는 책과 사람이 함께 머물면서 동시에 같은 꿈을 꾸어야 한다고 믿었다. 책방에 책만 있어도 안 되고, 반대로 사람만 있어도 안 된다 ..  (30∼31, 33쪽)

중국 연변에 있는 <낡은서적전매>. 중국과 북녘에서는 '낡은책'과 '낡은책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헌책'과 '헌책방'이라는 말도 함께 씁니다. 남녘 문물이 많이 스며든 탓입니다.
 중국 연변에 있는 <낡은서적전매>. 중국과 북녘에서는 '낡은책'과 '낡은책방'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헌책'과 '헌책방'이라는 말도 함께 씁니다. 남녘 문물이 많이 스며든 탓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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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해쯤 앞서 중국 연변에 갔을 때에 중국사람이 연 '헌책방'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 중국 헌책방이 아직도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국말을 할 줄 모르는 중국사람이 중국 조선족 책손을 맞이하려고 붙인 한글 이름은 '낡은서적전매'였습니다. 이분이 '낡은서적전매'를 연 날 우연하게 이곳을 찾아갔더니 우리를 보고는 '낡은책방'이라고 붙인 이름이 맞느냐고 묻더군요. 중국과 북녘에서는 '낡은책'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남녘에서는 '헌책'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얘기해 주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무척 많지만, 남녘에서는 '거위'가 날짐승이지만, 북녘과 연변에서는 '게사니'가 날짐승입니다. 북녘과 연변에서 '거위'라는 낱말은 '회충(蛔蟲)'이라고 하는 기생충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남녘사람이 "거위를 길러서 고기로 먹기도 한다"고 말하면 소름이 돋고 끔찍하다고 여깁니다. 북녘사람한테는 "기생충을 길러서 먹는다"는 소리가 되니까요.

북녘과 연변에서 '낡은책'이라고 이름 붙인 모습을 놓고 남녘사람은 소름이 돋거나 끔찍하다고 여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남녘땅에서 '낡다'라는 낱말은 몹시 나쁜 뜻과 느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낡은 집'이나 '낡은 건물'이나 '낡은 생각'이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북녘이나 연변에서는 '헌'이라는 낱말이 남녘사람한테 '낡은'과 매한가지입니다. 북녘과 연변에서는 '낡은 건물'이라고 하면 좋고 나쁨을 떠나 "그냥 햇수를 조금 묵은 건물"일 뿐입니다. 이리하여, 북녘과 연변에서 '낡은책'이든 남녘에서 '헌책'이든 "햇수를 조금 더 먹은 책이거나 사람 손을 여러 차례 거치면서 조금 닳은 책"을 가리킨다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이름 하나를 놓고 너무도 말이 많습니다. 이름 하나 때문에 너무도 얽매입니다. 더 좋다고 하는 이름을 찾으려고 하는 매무새를 나쁘다 할 수 없지만, 이름찾기에 얽매이면서 정작 우리가 마음을 쏟아야 할 곳에 들일 품과 땀과 시간을 길에 흘리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내 이름이 돌쇠이든 먹쇠이든 마당쇠이든, 나는 나대로 내 길을 튼튼하고 씩씩하고 즐겁게 걸어가면 됩니다. 내 이름을 빛내려고 꾸리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빛내려고 하루하루 즐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에는 으레 '책이 켜켜이 쌓여 있다'고 여깁니다. 틀림없이 책이 쌓여 있곤 합니다. 그러나, 책꽂이에 얼마나 다소곳하고 깔끔하게 꽂혀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지 않으면 '헌책방 모습 가운데 1/10도 못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에는 으레 '책이 켜켜이 쌓여 있다'고 여깁니다. 틀림없이 책이 쌓여 있곤 합니다. 그러나, 책꽂이에 얼마나 다소곳하고 깔끔하게 꽂혀 있는지를 함께 바라보지 않으면 '헌책방 모습 가운데 1/10도 못 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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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헌책방'과 '헌책'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거나 창피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때이든 한동안 대학생이던 때이든 출판사 영업직원이었든 편집직원이었든 늘 "저녁에 헌책방에 책 보러 가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빠지고 책을 보러 가고자 하는 마음에 담임 교사한테도 "저는 헌책방에 가야 하기 때문에 보충수업을 안 받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에나 이때에나 고등학교 교사들치고 헌책방으로뿐 아니라 새책방으로도 책 보러 다니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만, 여느 새책방도 아닌, 또 도서관도 아닌 헌책방으로 책을 보러 간다고 하니 담임이며 둘레에 있던 다른 교사들이며 킬킬거립디다. 그러나 헌책방에 찾아가 헌책을 읽겠다고 하는 일은 창피하지 않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삶이요 더없이 알찬 책읽기입니다.

.. 어릴 때는 책이 그냥 옆에 있으면 좋았다. 그것뿐이었다. 나는 책에게 욕심을 부리지 않았고, 책도 나한테 무얼 바란 적이 한 번도 없다. 나와 책은 친구였다 … 책은 보고, 읽고, 느끼는 것이다 … 책은 숨쉬는 생명이고 하나하나가 모두 귀하다. 책은 사람 아래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 이오덕 님 말씀대로 글이란 자기 생각과 느낌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당연한 기본이지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부여하고 함께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글 쓰는 사람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그런 삶과 생각이 어렵다는 말이 된다 ..  (32, 34, 53, 69쪽)

우리는 겉읽기 아닌 속읽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화책이든 소설책이든 책상맡에 반듯하게 앉아서 읽는 분이 있는 한편, 신문지를 책 위에 얹고 라면냄비를 올린 다음 후루룩 짭짭 하면서 보는 분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든 똑같은 책읽기입니다. 반듯한 매무새로 책을 마주한다고 하여 더 속깊이 읽거나 '줄거리에 깃든 넋'을 샅샅이 헤아린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 누워서 읽더라도 얼마든지 속읽기를 합니다. 지옥철에서 책읽기를 하든 발 디딜 틈 없는 버스에서 책읽기를 하든 누구나 속읽기를 합니다. 한손으로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달래며 젖을 물리는 엄마들이 다른 한손으로 책읽기를 하면서도 속읽기를 합니다.

책은 책이기 때문입니다. 책에 담은 속내를 살필 노릇이고, 책에 담은 속내가 어떻게 태어나 이렇게 종이뭉치에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담긴 예술품이 되었는지를 받아들일 노릇입니다. 글쓴이 이름값에 따라 골라 읽는 책이겠습니까? 이렇게 책을 찾아서 읽는 사람도 있을 터이나, 우리가 깊이 살필 대목은 '글쓴이가 누구냐?'하고 '펴낸곳이 어디냐?'가 아닙니다. '책 갈래가 무엇이냐?' 또한 아닙니다.

처세책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삶읽기를 하는 책읽기가 됩니다. 소설책이든 어린이책이든 인문책이든 예술책이든 과학책이든, 우리 스스로 우리 넋을 바쳐서 받아들이는 만큼 내 마음밭으로 스며드는 책읽기입니다.

헌책방에서 헌책을 사서 읽는다고 책읽기가 엉터리가 될 리 있겠습니까. 새책방에서 새책을 사서 읽는다고 책읽기가 훌륭하게 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백만 권을 읽었어도 세상을 잘못 읽는 사람이 있고, 만 권을 읽었어도 어줍잖은 말마디만 쏟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작 열 권을 읽고 백 권을 읽었음에도 아름다운 생각밭을 고이 일구면서 이웃사랑을 듬뿍 나누는 멋쟁이가 있습니다.

길가에 좌판을 놓아도 헌책방 일꾼은 아침이나 새벽마다 다소곳하게 갈무리해 놓습니다. 지나가며 책을 보는 사람들이 제대로 돌려놓지 않아서 흐트러진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길가에 좌판을 놓아도 헌책방 일꾼은 아침이나 새벽마다 다소곳하게 갈무리해 놓습니다. 지나가며 책을 보는 사람들이 제대로 돌려놓지 않아서 흐트러진 모습이 보일 뿐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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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방을 만들기로 생각한 순간부터 한 가지 다짐한 게 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 남들에게 권할 만한 책을 팔자'가 그것이다 … 어쨌든 어린이용 책들은 꼭 필요하고 좋은 책이지만, 이런 이유로 이상북에서는 팔지 않는 책이 되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린이용 책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기가 어렵다는 거다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백지 상태다. 하얀 바탕 위에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특히 청소년과 꿈을 잃지 않은 어른들이 많이 와서 '이상한' 일을 많이 하면 좋겠다 ..  (42, 45, 83쪽)

헌책방이란 모름지기 열린 곳입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으레 '퀴퀴하'거나 '낡은' 곳처럼 보이니 '헌책'과 '헌책방'이라는 낱말조차 부끄러워 한달지 못마땅해 하기도 하지만, 이런 이름과 얼굴과 겉모습이 얼마나 우리 삶을 가꾸고 있겠습니까. 우리가 좋은 책 하나를 만나 좋은 앎을 얻고 좋은 매무새를 추스를 수 있다면, 남들이 무어라 떠들든 말든 내 옳고 바르며 기쁘고 신나는 좋은 길을 당차게 걸어갑니다. 우리가 훌륭한 책 하나를 장만하여 훌륭한 얼을 깨닫고 훌륭한 몸가짐을 다스릴 수 있으면, 세상 흐름이 어떻게 휘감고 있든 내 슬기를 빛내는 보람차고 넉넉하고 따사로운 길을 오순도순 걸어갑니다.

조세희 문학을 새책으로 읽어도 좋고 헌책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곧 노래하는 삶 마흔 돌을 맞이하는 양희은 님이 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은 헌책방 아니면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도서관 가운데 이 책을 갖춘 곳은 몇 군데나 될까요? 국립중앙도서관에 이 책이 있을까요? 노래 삶 마흔 해를 빛낼 양희은 님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음대 교수'나 '음대 학생'이 논문을 쓰고자 할 때에, 양희은 님 자료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시디로 듣는 노래와 테이프로 듣는 노래와 레코드판으로 듣는 노래가 다르다고 하는데, 양희은 님 노래 테이프와 레코드판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이 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이 곳만은 지키자> 두 권을 펴낸 지 열두 해가 지난 다음 다시금 찾아가서 느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그러면 열두 해 앞서 처음 나왔던 <이 곳만은 지키자>라는 책을 찾아보자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츠보이 사카에 문학 <스물네 개의 눈동자>는 1997년에 정식번역으로 나온 판이 끊어졌을 뿐 아니라 2004년에 나온 판도 사라졌고, 1986년에 나온 어린이책도 새책으로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1961년에 우리 말로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번역 문학과 번역 문화를 살피며 논문이나 책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 츠보이 사카에 문학을 살펴보자고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학문을 하든 뭐를 하든 '책'과 얽힌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누구나 반드시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헌책방에 가지 않고서는 우리 스스로 바라는 자료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이 '낡은' 책이면 어떻고 '헌' 책이면 어떻겠습니까. 똑같은 책이라 여긴다면, 헌책방은 헌책방 그대로 아름답고 좋고 고마운 곳입니다.
 이 책이 '낡은' 책이면 어떻고 '헌' 책이면 어떻겠습니까. 똑같은 책이라 여긴다면, 헌책방은 헌책방 그대로 아름답고 좋고 고마운 곳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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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947년에 처음 찍은 <조선말 큰 사전> 1권과 2권을 도서관에서 구경할 수 있을까요? 1957년에 여섯 권으로 마무리된 <큰 사전>은 어디에서 만나겠습니까? 1950년대 국어사전과 1960년대 국어사전뿐 아니라 1940년대와 1930년대 국어사전을 어디에서 찾아볼까요? '문세영 국어사전'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을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바로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새책방을 꾸준히 찾아가면서 헌책방을 바지런히 찾아가야 책이 있습니다. 헌책방이 아니고는 이 나라에서 학문을 할 길이 없고 책을 만날 길이 빠듯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에 찾아간다고 해서 '내가 헌책방에 찾아간 그날' 바로바로 내가 바라는 책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바지런히 찾아가고 꾸준하게 찾아가며 찬찬히 둘러보고 샅샅이 헤아리는 눈썰미를 키워야 합니다. 돈으로 긁어모으는 책이 아니라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책이어야 합니다. 지식으로 쌓는 책이 아니라 삶과 슬기로 보듬는 책이어야 합니다.

.. 청소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가장 필요한 과목이 무엇일까?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아니다. 청소년은 물론이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수학도 영어도 아니다. 수능 점수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토익, 토플 점수가 이것만큼 결정적이지도 않다. 바로 평화다 ..  (110쪽)

헌책방이라는 곳은 책 문화에서 한 자리를 다부지게 차지해야 합니다. 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는 헌책방을 옳고 바르게 가르칠 뿐 아니라, 헌책방을 찾아가는 매무새를 함께 가르치고, 틈틈이 헌책방을 찾아가는 버릇을 길러 주는 한편, 전국 헌책방 지도를 마련해야겠지요. 이런 일은 저 같은 쥐데기 하나가 할 일이 아니요, 이 나라 문헌정보학과 교수와 학생이 할 몫입니다. 이 나라 문화체육관광부가 할 몫이요,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소매를 걷고 할 몫이고, 국립중앙도서관이 나라돈을 들여 할 몫입니다.

정작 참다운 일을 할 사람이 일을 안 하고 있으니 '헌책'과 '헌책방'이라는 이름을 업신여기거나 깔보고 맙니다. 우리 스스로 책길을 튼튼하게 마련하면서 즐겁게 걷지 않으니 '헌책'을 자꾸자꾸 '古書'라 가리키거나 'old book'이라고 일컫는 어줍잖은 일이 생깁니다. 좀더 오래되면서 값어치있는 책일 때에는 '옛책'이라 하면 되지만, '헌책-옛책' 얼거리를 옳게 깨달으며 제대로 말할 줄 아는 책쟁이가 그지없이 드뭅니다. 아무래도 우리들 스스로 책을 책 그대로 껴안는 몸짓이 못 되기 때문에 새책방은 새책방대로 할인률과 마일리지 다툼을 벌이며 책값을 뻥튀기하거나 후려치기를 멋대로 하고 있으며,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또 이대로 우리네 책마을에서 '새책방-도서관-헌책방'으로 이어지는 세모꼴 이음고리를 옹글게 엮어내는 데에는 등돌리고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2) 바로잡아야 할 이야기

겉그림.
 겉그림.
ⓒ 이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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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줄여서 이상북)'을 꾸리고 있는 윤성근 님이 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흔히 '이상북'이라 한다는데 책방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북'이 아닌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입니다.

동네 한켠에서 사람들한테 책이란 무엇이고 책을 마주하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나누면서 한 해 두 해 씩씩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이야기를 책 하나에 오롯이 담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헌책과 헌책방을 다루는 슬기로운 책을 만나기 어려운 터에(저 스스로 쓰기도 하지만, 제가 쓰는 이야기는 아직 어줍잖다고 느낍니다), 헌책과 헌책방을 잘못 알거나 제대로 모르는 분들한테 괜찮은 길잡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고개를 갸우뚱할 만한 대목이 곳곳에 있어서 놀랍니다. 자칫 사람들한테 헌책과 헌책방을 잘못 이야기하거나 엉뚱하게 알도록 이끌지 않을까 걱정스럽기까지 합니다. 하나하나 들면서 바로잡아야 할 대목을 바로잡아 봅니다.

ㄱ. 이런저런 종류 책을 다 팔고 싶었다면 헌책방이 아니라 애초에 새책 파는 서점을 했을 거다. (47쪽)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책방이란 "이런저런 종류 책을 다 파는 곳"이 아닙니다. 책방이라고 해서 모든 책을 다 다루지 않습니다. 첫째, 크기가 작든 크든 어느 책방이든 저마다 제 깜냥에 맞게 "다룰 수 있는 갈래 책만 다룹"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아무 책이나 마구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헌책방 또한 온갖 책을 골고루 다룹니다. 오히려 새책방보다 더 넓은 갈래와 깊은 갈래 책을 샅샅이 다루기까지 합니다. 윤성근 님이 꾸리는 책방 이야기를 하는 자리입니다만, 당신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자칫 책방 성격과 갈래를 얄궂게 바라보지 않도록 다잡아 주기를 바랍니다.

ㄴ. 책, 특히 헌책이라고 하면 말에서 풍기는 느낌부터 싸구려다. '헌책'이라니! 요즘에는 남이 입던 옷을 파는 가게도 생겨났다. 그러면 남이 입던 옷을 부를 때 '헌옷'이라고 부를까? 아니다. '구제'라는 말, 혹은 '빈티지'라는 멋진 단어를 쓴다. 그런데 책은 '헌'책이라고 부른다. 나는 헌책이라는 말보다 '중고 도서', 아니 그것도 너무 초라하다. 그냥 똑같이 '책'이라고 불렸으면 한다. (51쪽)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랑 헌책방을 똑같은 '책방마실'로 다니면,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새책방이든 한결같은 책쉼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랑 헌책방을 똑같은 '책방마실'로 다니면, 헌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새책방이든 한결같은 책쉼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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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죽 이야기했습니다만, '헌책'이라는 낱말이 왜 싸구려일까요? 왜 '헌책방'이 초라해야 할까요? 스스로 헌책방을 꾸린다는 분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군말 없이 그냥 '책방'이라고 해야 한다면, 윤성근 님이 연 책쉼터 이름은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 아닌 '이상한 나라의 책방'이어야 합니다.

윤성근 님은 여러 매체와 만난 자리나 당신 개인 누리집에서 "나는 헌책방을 하는 사람이다" 하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에서는 퍽 자주 '헌책과 헌책방이라는 낱말은 싸구려요 초라하다'고 적고 있으니 여러모로 모순이 되기까지 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자 한다면, 윤성근 님은 당신 책방 이름부터 '이상한 나라의 책방'으로 하루빨리 고쳐야 할 줄 압니다.

ㄷ. 나는 그 헌책 전문가 얼굴을 잘 알고 있다 … 나와 그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 가장 유감이었던 건 그 사람이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헌책방도 아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물론 다른 전통적인 헌책방하고는 겉모습이 좀 다르지만 세무서에 헌책방으로 신고를 했고 실제로 중고 책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곳이다. <숨어있는 책>이나 <아벨서점>처럼 오랜 전통을 가진 건 아니지만 헌책방이 맞다. 오래된 서가에 책이 켜켜이 쌓여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헌책방이 맞다. 청소년 문화 행사를 열고 가끔은 노래하고 연주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헌책방이 맞다. (139∼140쪽)

이 글에서 윤성근 님은 스스로 '헌책방'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싸구려요 초라하다고 여기는 '헌책방'을 한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오래된 서가에 책이 켜켜이 쌓여" 있어야 헌책방일는지요? 이런 모습으로 있어야 헌책방이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책은 헌책이다>와 <헌책방에서 보낸 1년>과 <우리 말과 헌책방>이라는 책뿐 아니라 <오마이뉴스>에 올리는 글에서도 '먼지 묵은 책이 켜켜이 쌓인 곳'을 헌책방이라고 못박는 말은 잘못이라고 수없이 되풀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숨어있는 책>은 2010년으로 해서 고작 열한 해를 맞이하는 곳입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ㄹ.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헌책방 주인도 자기가 뭘 갖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떤 책을 찾으려면 손님이 직접 책방에 비집고 들어가서 책먼지 속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214쪽)

헌책방 일꾼을 섣불리 깎아내려서는 안 됩니다. 헌책방 일꾼뿐 아니라 새책방 일꾼도 당신들 책방에 어느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잘 모르기 일쑤입니다. 교보문고 일꾼이라고 다 아는지요? 새책방 일꾼은 셈틀로 찾아본 다음 책꽂이로 달려가지, 책이름을 듣고 곧바로 어디에 있다고 알아채지 못합니다. 오히려 헌책방 일꾼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책이 이리저리 쌓이다 보면 잊을 수 있고, 헌책방을 찾아오는 책손들이 책을 보고 나서 아무 데나 쌓거나 꽂아 버리면 헌책방 일꾼은 '당신이 어디에 꽂았는지 알고 있던' 책을 모르고 맙니다.

으레 이런 일이 벌어져서 헌책방 일꾼이 '책을 못 찾는' 일이 생깁니다. 웬만한 헌책방마다 '보신 책은 반드시 제자리에 꽂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고 쪽지를 붙이는 까닭이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들부터 내 집에서 내 책을 못 찾아서 같은 책을 다시 사는 일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책먼지 속을 헤매고 다녀야" 같은 말은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 헌책방 모습을 엉터리로 나타내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 '먼지구덩이 헌책방'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거의 없습니다.

ㅁ. 인터넷 헌책방은 많지 않다. 중고 책을 다루는 특성 때문에 전산 입력이 쉽지 않다 … 그런데도 몇몇 헌책방들은 몇 해 전부터 인터넷으로 책을 팔고 있다. 하지만 대형서점들이 헌책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력이 떨어졌다. '알라딘'에서 시작한 전문 헌책 거래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다른 서점에 영향을 줬다. 깔끔하고 정확한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헌책 거래에 신뢰를 주었고,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73쪽)

인터넷 헌책방이 많지 않다니요? 제가 2006년에 <헌책방에서 보낸 1년>을 써내면서 전국 헌책방 통계를 죽 그러모았을 때에도 쉰일곱 군데쯤 되었고, 2010년에는 백 군데가 훨씬 넘습니다. 어쩌면 인터넷 헌책방은 여느 '새책방 숫자'보다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이나 인터파크가 헌책 팔기에 '끼어들었'지만, 예전부터 인터넷으로 책을 파는 헌책방은 꾸준히 잘하고 있습니다.

1998년부터 우리 나라에 생겨난 인터넷 헌책방들은 '헌책을 다루는 헌책방 특성'을 당신들 나름대로 알맞게 잘 키워 놓고 있습니다. 게다가 "여느 인터넷 헌책방은 깔끔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다"는 듯한 느낌을 풍기니 기막힙니다. 여느 인터넷 헌책방들은 지난 열 몇 해에 걸쳐 꾸준하게 '누리집 고치기'와 '검색기 손질하기'를 해 왔고, 이제는 어느 곳이나 아주 훌륭한 얼거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헌책방은 나라밖 책도 퍽 싼값에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밖 책까지 골고루 더 넓고 깊게 다룬 책쉼터라 할 수 있습니다.
 헌책방은 나라밖 책도 퍽 싼값에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라밖 책까지 골고루 더 넓고 깊게 다룬 책쉼터라 할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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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최종규 씨 같은 분이 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열심히 배다리 헌책방 거리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지만, 요즘에는 경기 침체 탓인지 안 그래도 어려운 헌책방 살림이 더욱 초라해지고 있다. (273쪽)

저는 "배다리 헌책방거리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헌책방 문화를 글과 사진으로 담아서 나누는 사람입니다. 저는 '인천 배다리 골목동네'에 살림집이 있고, '사진책 도서관'을 동네도서관으로 열어서 꾸리고 있습니다. 제 고향동네가 인천일 뿐입니다. 엉뚱한 감투를 씌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보다도 헌책방을 "더욱 초라하"게 다루는 모습이 슬픕니다.

 (3) 헌책방은 삶이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쓴 윤성근 님은 저를 놓고 '헌책방 전문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이는 저한테 '헌책방 전도사'라고 하고 '헌책방 마니아'라는 이름을 붙이는 분까지 있습니다. 왜 이렇게 다들 엉뚱한 이름을 붙이는가 싶은데, 저는 저 스스로 저를 말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어디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듣고 엉뚱한 말을 붙이니 알쏭달쏭합니다. 저는 늘 '헌책방 즐김이'라고 말합니다. 때로는 '헌책방 이야기꾼'이 됩니다.

왜 헌책방을 즐기고 왜 헌책방을 이야기하느냐 하면, 헌책방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책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도 똑같은 책방이고 헌책방입니다. 책을 찾는 몫은 우리한테 있고, 우리 스스로 이 모든 책을 하나하나 찬찬히 훑고 살피면서 마음밭을 채우면 좋을 뿐입니다.
 책이 여러 겹으로 쌓여 있어도 똑같은 책방이고 헌책방입니다. 책을 찾는 몫은 우리한테 있고, 우리 스스로 이 모든 책을 하나하나 찬찬히 훑고 살피면서 마음밭을 채우면 좋을 뿐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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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진은 삶이다" 하고도 말합니다. "책은 삶이다" 하고도 말합니다. "말은 삶이다" 하고도 말합니다. 모두모두 우리 삶입니다. 빵굽기를 하는 분들한테는 "빵은 삶이다"가 이루어집니다. 저는 늘 손빨래를 하면서 지내고 있으니 "빨래는 삶이다"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삶이다"라 외칠 분이 있고, "노래는 삶이다"라 외칠 분이 있겠지요. "자전거는 삶이다"가 되기도 합니다.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은 삶"입니다.

초라해 보여도 헌책방은 삶입니다. 구지레하다고 여겨도 헌책방은 삶입니다. 책이 쌓여 있어도 헌책방은 삶입니다. 언제나 책삶이요 노상 책방삶이며 한결같이 헌책방삶입니다.

앞에서 다룬 이야기를 한 번 더 되풀이하자면, 책을 다 읽는 사람 또한 제 집 책꽂이에서 제가 읽은 책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 못 찾아내곤 합니다. 다시 사는 일이 흔합니다. 더욱이, 헌책방 일꾼은 "무슨 책 있어요?" 하는 말을 몹시 안 좋아합니다.

헌책방은 '책 자판기'가 아니라 '스스로 책을 살피고 찾아내어 손수 읽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헌책방 일꾼 가운데에는 "무슨 책 있어요?" 하고 물어 보는 책손한테 '이 책손이 찾는 책이 버젓이 있어'도 모르는 척 "그런 책 없어요!" 하고 쌀쌀맞게 대꾸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헌책방 일꾼은 책을 아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책을 싸구려로 함부로 다루려 하면 책을 안 팝니다. 형편없는 책손 앞에서 책을 찢어 버리는 헌책방 일꾼이 있고, 어이없는 책손은 큰소리치며 내쫓는 헌책방 일꾼이 있습니다. 아무리 웃돈을 얹어 준다고 해도 책을 보는 몸가짐이 모자란 사람한테는 책을 안 파는 헌책방 일꾼이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책이 우리네 책 문화를 조곤조곤 다루면서 우리들한테 책사랑을 널리 나누려 하는 뜻을 담고 있다면, 부디 조금 더 낮은 목소리를 내어 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더 고개를 숙이며 한결 낮은 자리로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헌책이나 헌책방을 구태여 더 높은 데로 끌어올려야 하지 않습니다. 밑바닥에 짜부가 되어 깔려 있더라도 헌책방은 헌책방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헌책을 얕잡아보더라도 헌책은 헌책입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책 문화는 더 굴러떨어지며 사람들은 책을 더 안 읽고 말더라도 책은 책입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바라보고, 헌책을 헌책 그대로 껴안으며, 헌책방은 헌책방 그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이상한 나라입니다. 이런 이상한 나라에서 책을 다루는 사람은 바보라 합니다. 헌책을 다루는 사람은 더 못난 바보라 합니다. 그런데 참 바보는 누구일까요?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윤성근 지음, 이매진(2009)


태그:#헌책방, #책읽기, #책문화, #책이야기, #헌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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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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