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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방아 돌아가는 고원의 도시

-리장고성은 5500미터 위룽쉐산에서 눈 녹은 물이 사계절 흘러내리는 물의 도시다. 옥하(玉河)라고 부르는 수로가 혈관처럼 고성전체를 생체리듬처럼 흘러가며 능수버들이 휘어진 완벽한 하나의 정원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고원의 도시 리장을 "동양의 베니스"라고 부른다.

집집마다 홍등을 밝힌 나시족의 전통가옥, 바둑판처럼 만들어진 미로, 그 미로를 따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물길, 굽고 굽어지다가 다시 꺾인 미로와 실개천, 하염없이 늘어선 능수버들… 미로를 따라 실개천을 걷다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회귀한 듯 한 느낌이 든다.

"어휴~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겠어요."
"이런 곳에서는 길을 잃어버려도 좋을 것 같아. 잃어보아야 고성 안에 있지 않겠소?"

실개천을 따라 수많은 홍등이 점멸하는 리장고성은 2400m 고원위에 세워진 물의 도시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동양의 작은 베니스라 불린다.
 실개천을 따라 수많은 홍등이 점멸하는 리장고성은 2400m 고원위에 세워진 물의 도시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동양의 작은 베니스라 불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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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이 켜진 실개천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듯 과거로 회귀하여 나시 천년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홍등이 켜진 실개천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듯 과거로 회귀하여 나시 천년의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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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손을 잡고 홍등이 점멸하는 실개천을 따라 걸어갔다. 도시 전체가 마치 거대한 축제의 현장처럼 보였다. 고성 입구의 물레방아로부터 시작된 수로는 혈관처럼 고성으로 흘러간다. 작은 실개천이 혈관처럼 흐르는 고성은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여행자들은 리장을 동양의 작은 베니스라고 부른다. 서울의 북촌도 리장처럼 물길을 살려 놓으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지 않을까?

이태리의 베니스는 바다의 석호(潟湖, lagoon;바다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생긴 호수)에 건설된 도시이지만, 리장은 해발 2400m의 계곡에 건설된 고성이다. 리장은 해발 5500m의 위룽쉐싼(玉龍雪山)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웨룽쉐싼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을 헤이룽탄(黑龍潭)에 저장했다가 방류하여 리장고성으로 흐르게 한다.

시내 북쪽 끝자락에 있는 헤이룽탄 공원은 만년설에 뒤덮인 위룽쉐싼을 조망 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곳은 중국 남서부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촬영지의 하나이다. 그림처럼 맑은 호수를 돌면서 산책하는 기분이 그만이다. 호수에는 오봉루, 용신사, 득월루 등의 정자가 있고, 동파 문화 박물관도 있다.

위룽쉐싼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을 저장했다가 리장 고성으로 방류하는 헤이룽탄 호수. 맑은 물은 옥하(玉河)를 따라 리장 고성으로 실핏줄처럼 흘러내린다.
 위룽쉐싼에서 흘러내린 눈 녹은 물을 저장했다가 리장 고성으로 방류하는 헤이룽탄 호수. 맑은 물은 옥하(玉河)를 따라 리장 고성으로 실핏줄처럼 흘러내린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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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5500m의 위룽쉐싼은 나시족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산으로, 헤이룽탄에서 위룽쉐싼을 바라보며 사진을 촬영하면 기가막힌 절경을 찍을 수 있다.
 해발 5500m의 위룽쉐싼은 나시족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산으로, 헤이룽탄에서 위룽쉐싼을 바라보며 사진을 촬영하면 기가막힌 절경을 찍을 수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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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구름에 덮인 설산이 아름답군요!"
"위룽쉐싼이란 나시족의 성산이라오."

리장에 살고 있는 나시족들은 위룽쉐산을 민족의 염원이 담긴 불멸의 성산으로 섬긴다. 위룽쉐싼은 대삭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4500m까지 단숨에 올라갈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계단을 따라 4700m 고지까지 갈 수 있으나 고산병이 있는 여행자는 조심해야 한다.

헤이룽탄에서 흘러내린 물은 고성입구 쌍석교에 이르러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물길은 서쪽으로 흐르는 서하(西河)와 동쪽으로 흐르는 중하(中河)로 나누어진다. 서하에는 갑문이 있는데, 이 갑문을 열어 지대가 낮은 중하로 물을 흘려보내 광장 바닥을 청소한다. 이 같은 독특한 위생시설은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시설이다.

헤이룽탄에서 흘러내린 물은 리장고성 입구인 물레방아에서부터 다시 여러갈래로 나뉘어 고성으로 흘러들어간다.
 헤이룽탄에서 흘러내린 물은 리장고성 입구인 물레방아에서부터 다시 여러갈래로 나뉘어 고성으로 흘러들어간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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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고성을 실핏줄처럼 흘러가는 옥하는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고, 푸른 나무와 꽃들이 살아있는 생체리듬처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완벽한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리장고성을 실핏줄처럼 흘러가는 옥하는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고, 푸른 나무와 꽃들이 살아있는 생체리듬처럼 도시 전체를 하나의 완벽한 정원으로 만들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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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물레방아!"
"늘어진 능수버들과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군!…"

물레방아 돌아가는 마을. 고성입구에는 커다란 두 개의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물레방아는 고성으로 들어가는 물길의 시작점이다. 옥하(玉河)라 불리는 수로는 거미줄처럼 고성 곳곳으로 흘러간다. 가정의 담장을 지나 마당까지 이른다. 능수버들과 붉은 홍등이 어우러진 수로는 폭이 3~6m에 달하며 좁은 곳은 1m가 넘지 않는다.

옥하 수로에는 354개에 달하는 다리가 있다. 다리들은 돌과 나무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다리는 대석교, 쇄취교, 만천교, 남문교, 마안교 등으로 대부분 명, 청대에 만들어진 다리다. 고성에는 수많은 우물이 있으며, 대다수의 우물들은 삼안정(三眼井)형식을 취하고 있다.

리장고성을 흐르는 옥하에는 크고 작은 다리들이 354개나 있다. 여행자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가며 천년전의 정취를 맛본다.
 리장고성을 흐르는 옥하에는 크고 작은 다리들이 354개나 있다. 여행자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가며 천년전의 정취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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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는 오래된 다리와 함께 완벽한 정원을 연출한다.
 수로는 오래된 다리와 함께 완벽한 정원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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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 축제가 열리는 도시

수로 옆에는 작은 카페와 기념품 숍이 늘어서 있다. 밤이 되면 카페에는 여행객들로 꽉 들어차며 흥청거린다. 사람들은 촛불을 켠 종이배에 염원을 담아 수로에 띄워 보낸다. 이 종이배를 띄워보내는 소원 촛불은 나시족 명절에서 유래된 풍습이다. 이태리의 베니스에서는 곤돌라를 타고 세레나데를 들으며 운하를 돌아본다면, 리장에서는 수로에 종이배를 띄워 보내며 한 잔의 술에 풍류를 즐기는 곳이다.

"우리도 저 소원 초불을 띄워 보내요."
"조오치!"

여행자들은 연꽃처럼 생긴 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담아 수로에 띄워보낸다.
 여행자들은 연꽃처럼 생긴 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담아 수로에 띄워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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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들이 소원을 연꽃 종이배를 옥하에 띄워보내고 있다.
 여행자들이 소원을 연꽃 종이배를 옥하에 띄워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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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배는 수로를 따라 소원을 담고 끝없이 흘러간다. 서울의 북촌에도 이런 수로를 만들면 어떨까?
 종이배는 수로를 따라 소원을 담고 끝없이 흘러간다. 서울의 북촌에도 이런 수로를 만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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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각자의 염원을 담은 연꽃 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수로에 띄워보냈다. 촛불이 가물거리며 수로를 따라 흘러갔다. 과연 저 촛불은 얼마동안 꺼지지 않고 흘러갈까? 우리는 수로를 따라 사라져 가는 촛불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아직도 티베트까지의 길은 멀다. 꺼지지 않는 마음의 촛불이야 말로 우리들의 희망이다. 마음의 등불! 그래 "정신(精神)" 은 보이지 않는 것이요, 육체는 보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에 촛불을 켜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 아니겠는가!

밤이되면 리장의 거리는 축제의 거리로 변한다. 쓰팡제 광장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축제가 연중 열린다.
 밤이되면 리장의 거리는 축제의 거리로 변한다. 쓰팡제 광장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축제가 연중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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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고성의 밤은 더욱 화려하다. 쓰팡제를 중심으로 거리는 거대한 유흥가와 쇼핑센터로 변한다. 전통복장을 한 나시족 여자들이 매일 밤 전통가무를 춘다. 서구에서 온 여행자들은 그 분위기에 어울려 나시족들과 함께 춤을 추며 밤이 깊어가는 줄을 모른다. 음력 3월 13일 풍년제 축제가 열리는 시기와 5월 노동절 축제 때에는 중국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거리는 북새통을 이루며 방값 등 모든 물가가 몇 배로 뛰어 오른다. 7월에는 횃불축제가 열린다.

리장고성은 여행자들이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하는 도시다.
 리장고성은 여행자들이 오래도록 머물고 싶어하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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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도시

능수버들이 휘날리는 환상적인 고성에 들어서면 누구나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단 이틀만 머물겠다고 했던 우리의 여정도 5일 동안이나 발목이 잡혔다. 실개천에 늘어선 홍등이 점멸하는 거리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실낙원이다. 낯선 이국의 여행자들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저마다 실낙원의 꿈을 꾼다.

여행자들은 리장에 오면 모두가 발목이 잡힌다. 하루가 일주일로 변하고, 일주일이 한 달로 변한다. 아니 영원히 머문 사람도 있다. 오스트리아의 식물학자인 조지프 록(Joseph Rock)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신학자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날마다 지도책을 펼쳐들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다가 중국을 열망하게 되었다. 그는 하와이에서 산 크리스트 어를 포함한 중국어 등 8개의 언어를 공부했다.

록은 그가 열망하던 중국으로 왔고, 1922년부터 1949년까지 이곳 리장에서 윈난의 식물채집을 하며 살았다. 그는 8만개의 식물과 1600마리의 새, 60마리의 포유동물을 채집하여 본국으로 부쳤다. 그러나 그는 학문 추구보다도 리장을 중심으로 나시문화 연구와 중국 서부 일대의 풍경에 흠뻑 빠져 일생을 이곳에서 머문 매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록은 생의 많은 부분을 나시 문화연구에 바쳤다. 록은 리장 외곽의 위후(Yuhu; Nguluko) 마을에 살았다. 그는 미 국무성과 하버드 대학을 설득하여 후원을 받아냈으며, 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중국주재원이 되었다. 록이 식물을 채집하러 행차를 나설 때는 길이가 장장 800m에 달했으며, 요리사와 수십 명의 하인들이 포함되었다.

록은 <중국남서부의 나시왕국>을 비롯하여 여러 저서를 남겼으며, 죽기 전에 나시 사전 출판까지 마무리를 하여 놓았다. 그는 리장에서 살다가 리장에서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감한 기인이었다. 이처럼 리장은 사람의 발목을 잡는 매혹적인 도시다.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쿠라 카페 수로 옆에 앉아 리장의 밤을 즐기는 여행자들
 한국인이 경영하는 사쿠라 카페 수로 옆에 앉아 리장의 밤을 즐기는 여행자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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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홍등이 켜진 수로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벚꽃마을(Sakura cafe)로 들어갔다. 카페는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가까스로 수로 옆 능수버들아래 자리를 잡았다. 리장에서 유일하게 한국음식을 파는 곳이다. 현지인과 결혼을 한 한국인이 경영을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여행자들이 즐기는 곳이다.

맥주 한 병을 시켜 아내와 둘이서 축배를 하며 갈증을 시키고 있는데, 한국인 아가씨 네 사람이 다가왔다. 그들은 단동에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아가씨 세 사람이 무리한 여행으로 감기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들에게 비상약인 아스피린을 주었다. 기차를 타고 단동에서 리장까지 쉬지 않고 왔으니 무리할 만도 하다. 그러나 리장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게릴라 찰라)

덧붙이는 글 | * 2006년 봄 100일 동안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리장고성, #위룽쒜싼, #헤이룽탄, #나시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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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여행, 작은 나눔, 영혼이 따뜻한 이야기 등 살맛나는 기사를 발굴해서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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