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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처다부제의 모계사회를 이어가는 나시족

-두 남녀는 흔히 각자의 집에 계속 살면서 남자친구가 여자 친구의 집에서 밤을 보내고 낮에는 돌아와서 어머니의 집에서 살면서 일을 했다....

일처다부제의 모계사회를 이어가는 나시족의 할머니들이 거리에서 한가롭게 앉아있다.
 일처다부제의 모계사회를 이어가는 나시족의 할머니들이 거리에서 한가롭게 앉아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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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를 물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시족 할아버지.
 담뱃대를 물고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나시족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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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은 약 1400년 동안 나시족(納西族, Nakhi)의 본거지가 되고 있다. 나시족은 인종적으로 시짱족(西藏族;티베트족)의 후예이다. 간쑤성과 칭하이 성 일대에 거주했던 창족의 일족인 나시족이 쓰촨 성을 거쳐 윈난 북부지역으로 이주하여 처음에는 바오싼지역에 거주를 하다가 위룽쉐싼 남쪽 바이사 지역으로 옮겨 왔다.

남송 말 원초에 이르러 아종아랑이 지금의 고성 서쪽에 위치한 스쯔산 기슭에 터를 닦고 대협장이라 칭하였다. 서기 1253년 원(元) 세조 쿠빌라이가 다리를 정벌하기 위해 남하를 하는 과정에서 아종아랑은 쿠빌라이에게 항복하였다. 원은 나시의 수장을 선위사로 삼아 1271년 비로서 리장이란 지명을 갖게 되었다.

모계사회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리장 고성의 거리
 모계사회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리장 고성의 거리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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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고성을 거닐다보면 모계사회 위주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나시의 여가장들은 유연성 있게 정사(情事)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했다. 나시족에게는 <아주>제도란 것이 있는데, <아주>는 <친구>란 뜻으로 가정을 꾸미지 않고도 한 쌍의 남녀가 연인이 되는 것을 허용하는 나시족의 전통적 모계사회제도이다.

서로 사기어 온 두 남녀는 각자 집에서 계속 살면서 남자친구가 여자 집에서 밤을 보내고 낮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일을 한다.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머니에게 귀속되고,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할 책임을 진다. 남자는 생활비를 지원하지만, 서로의 관계가 끝나면 지원도 종식된다. 관계가 끝나면 아이들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여자가 모든 재산을 상속 받는다. 분쟁이 생기면 그 판결도 여성 연장자들이 내린다.

나시 기념품가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시족 여인
 나시 기념품가계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시족 여인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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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 언어에는 강한 모계 사회의 영향이 배어 있다. '여성'을 뜻하는 단어가 첨가되면 명사는 그 뜻이 확대되고, 반대로 '남성'을 뜻하는 단아가 첨가되면 그 뜻이 축소된다. 예을 들어서 '돌'과 '여성'이 결합되면 '둥근 바위'라는 뜻이 되고, '돌'과 '남성'이 결합되면 '자갈'이라는 뜻이 된다.

나시 여자들은 블라우스와 바지 위에 청색이나 검정 앞치마를 두르는데, 그 중에서도 'T'자 모양의 어깨 망토는 등에 늘 메고 다니는 광주리가 쏠려서 벗겨지지 않도록 붙잡아 매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망토는 하늘을 상징한다. 망토를 2등분하고 있는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은 낮과 밤을 나타내고, 일곱 개의 수놓은 원은 별들을 상징한다.

특이한 나시족 복장을 하고 있는 나시족의 할머니들
 특이한 나시족 복장을 하고 있는 나시족의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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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까지 개구리가 나시족에게는 중요한 신이었다. 그 후 점차 동물숭배 사상이 쇠퇴하면서 개구리눈이 옷에서 빠졌는데, 지금도 그들은 이 망토를 '개구리 눈 양가죽 외투'라고 부른다.

거리에는 나시 전통복장을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 사진을 찍자고 하면 그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준다. 그 모습이 너무 순박하다. 담뱃대를 문 할아버지의 멋진 포즈도 만날 수 있다.

모계사회의 전통을 이어가는 리장은 아무리 돌아보아도 매력이 넘치는 도시로 중국인들도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다. 이국적인 문화와 느리게 살아가는 여유,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정원을 이루고 있는 리장은 여행자들에게 "살고 싶다!"는 강한 느낌을 주는 상상 이상의 세계이다.

1996년 불과 5000여 명에 불과했던 관광객의 수는 10년 뒤 약 100배로 증가된 된 셈이다. 강진의 역풍이 오히려 나시족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다. 이제 리장은 중국각지와 전 세계에서 연간 500만 명 이상이 몰려드는 중국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다.

(뉴스게릴라 찰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2006년 봄 100일 동안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태그:#리장, #나시족, #모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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