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홍범식 가옥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소재한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된 홍범식 가옥
▲ 홍범식 가옥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소재한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된 홍범식 가옥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에 소재한 충청북도 민속자료 제14호로 지정된 홍범식 가옥. 이 가옥은 173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홍범식 가옥은 조선후기 중부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가옥으로, 경술국치에 항거 자결 순국한 항일지사 일완(一阮) 홍범식 선생의 고택이다. 이 가옥은 괴산 3.1만세 시위를 준비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말끔하게 복원을 마친 홍범식 가옥. 일요일(2월 7일)에 찾은 홍범식 가옥 앞에는 관광 안내소가 자리하고 있어, 괴산군이 이 가옥을 남다르게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부지방 양반가의 전형적인 집인데다가 역사적인 장소인 홍범식 가옥은, 괴산군의 문화를 알리는데 크게 일조를 할 것으로 보인다.

웬 문이 이렇게 많아?

사랑채 출입문 사랑채의 일각문을 두 칸으로 꾸몄다. 우측에는 작은 쪽문이 나 있다.
▲ 사랑채 출입문 사랑채의 일각문을 두 칸으로 꾸몄다. 우측에는 작은 쪽문이 나 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사랑채 모두 다섯 칸으로 마련한 사랑채. 바라보면서 우측 끝에 작은 일각문이 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 사랑채 모두 다섯 칸으로 마련한 사랑채. 바라보면서 우측 끝에 작은 일각문이 보인다.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말끔하게 단장이 된 홍범식 가옥을 돌아보면 절로 한마디를 하게 된다. 대문서부터 시작해, 집안으로 들어서면 수도 없이 많은 일각문 때문이다. 집안을 돌아보니 10여 개가 되는 문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흡사 미로 찾기라도 하는 집인 듯하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꽁꽁 감추어 놓은 집안의 내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민초들의 담장은 그저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인데 비해. 아무래도 양반가의 집들은 이렇게 조금은 가려 놓는 것이, 당시의 풍습인 것 같다.    

대문을 들어서면 행랑채를 들어가는 일각문을 지나 좌측으로 사랑채로 들어가는 일각문이 있다. 일각문은 작게 만드는 것이 통례인데, 홍범식 가옥의 사랑채를 들어서는 일각문은 두 칸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일각문 우측에는 작은 쪽문이 나 있는데, 일각문을 열지 않고 이 쪽문을 통해 드나들 수가 있다. 이런 쪽문은 대개 솟을대문에 마련하는데 비해, 이렇게 사랑채를 출입하는 문에 쪽문을 놓은 것은 특별한 건축 구성이다.

사랑채는 一 자 형으로 동북쪽의 부엌 앞에 한 칸 방을 두고 옆으로 두 칸 방, 대청, 다시한 칸 방을 나란히 배열하였다. 부엌 앞의 돌출이 된 방을 빼고는 네 칸 모두 앞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전체적으로 다섯 칸으로 구성된 사랑채를 바라보면, 우측 끝에 작은 쪽문이 있다. 바로 사랑채에서 안채로 출입을 할 수 있는 비밀 문이다. 밖으로 나가 중문을 통하지 않고, 사랑채에서 이 문을 통해 안채로 출입을 할 수가 있다. 나름대로 넓은 집안의 동선을 최대한 짧게 하기 위한 방법인 듯하다.

양반가라 달라, 광이 도대체 몇 개여? 

광채 안채 뒤편에 자리한 광채. ㄱ 자로 꺾어진 광채의 두 칸은 곡간이다.
▲ 광채 안채 뒤편에 자리한 광채. ㄱ 자로 꺾어진 광채의 두 칸은 곡간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광 사당채와도 같은 광채. 특별한 용도로 사용한 듯하다.
▲ 광 사당채와도 같은 광채. 특별한 용도로 사용한 듯하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홍범식 선생은 풍산 홍씨의 명문가 출신이다. 홍범식 가옥을 둘러보면, 집안의 내력을 짐작할 수가 있다. 1888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1907년 전북 태인, 1909년 충남 금산군의 군수가 되었다. 1910년 8월 29일 순종이 한일합방의 조약체결을 발표하자, 그날 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어 자결하였다. 『임꺽정』의 작가인 홍명희는 바로 홍범식 선생의 아들이다.

홍범식 가옥을 돌아보면 집안에 많은 광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 우선 대문채에 광이 있는 것은 그렇다 치고, 안채 뒤편에는 뒤주를 겸한 다섯 칸의 ㄱ 자형 광채가 있다. 그 맞은편에도 담장을 둘러 일각문을 들어서면 세 칸으로 마련한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도 광인 듯 하다. 담장을 둘러 별도로 마련한 것을 보아서는, 특별한 것을 보관하던 곳 같다.

안채 부엌의 뒤로는 뒤주가 있으며, 안채로 들어서는 중문채에도 세 칸의 광이 자리하고 있다. 집 전체를 돌아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광들. 곡간으로 사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집안에는 이러한 광들이 많아, 당시 이 집이 얼마나 많은 농토와 식솔들을 거느렸는지 가늠이 간다.

넓은 안채에 재미난 작은 것

안채 안체는 세 칸이 대청을 중심으로 앵편에 세 칸의 방과 부엌을 달아냈다.
▲ 안채 안체는 세 칸이 대청을 중심으로 앵편에 세 칸의 방과 부엌을 달아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중문을 통해서 본 안채 중문을 들어서면 ㄷ 자형으로 마련한 안채가 있다. 중문채는 세 칸으로 모두 광으로 사용이 된다.
▲ 중문을 통해서 본 안채 중문을 들어서면 ㄷ 자형으로 마련한 안채가 있다. 중문채는 세 칸으로 모두 광으로 사용이 된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아궁이와 굴뚝 안채  안방과 윗방을 연결하는 툇마루 밑에 마련한 굴뚝과 아궁이. 윗방에 불을 떼던 곳인듯.
▲ 아궁이와 굴뚝 안채 안방과 윗방을 연결하는 툇마루 밑에 마련한 굴뚝과 아궁이. 윗방에 불을 떼던 곳인듯.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사랑채를 드나드는 일각문을 조금 지나면 우측으로 중문이 있다. 이 집의 중문채는 사람이 기거하는 방이 없고, 세 칸의 광이 있다. 중문은 바람벽을 두어, 안채를 들여다보는 것을 막았다. 안채는 ㄷ자 형으로 꾸며졌다. 중앙에는 세 칸의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세 칸씩의 방과 부엌을 두고 있다. 대청을 벗어나 꺾어진 양편의 날개채 끝에는 각각 부엌을 두었다. 너른 대청이 시원하게 보이는 안채는 오른쪽에는 세 칸의 툇마루를, 왼쪽에는 두 칸의 툇마루를 두었다.

안채를 돌다가 보면 재미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안채의 뒤편으로는 세 칸 대청 뒤로도 툇마루를 놓고, 안방과 윗방 뒤로도 툇마루를 놓았다. 그런데 이 툇마루 밑에 굴뚝과 아궁이가 숨어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것일까? 굴뚝과 아궁이는 윗방에 불을 때기 위한 것 같다. 이 큰 집에서 이렇게 툇마루 밑에 숨겨놓은 굴뚝과 아궁이라니. 고택을 돌아보는 또 다른 재미는 이렇게 새로운 것을 찾을 때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한 듯한.

번듯한 대문채와 행랑채

대문 모두 일곱 칸으로 마련한 대문. 중앙에 문을 두고 양편에 광과 방을 두어 소을대문을 구성하고 있다.
▲ 대문 모두 일곱 칸으로 마련한 대문. 중앙에 문을 두고 양편에 광과 방을 두어 소을대문을 구성하고 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마루방 행랑채의 우측에 있는 마루방. 행랑채에 기거하는 남정네들의 작업 공간인 듯.
▲ 마루방 행랑채의 우측에 있는 마루방. 행랑채에 기거하는 남정네들의 작업 공간인 듯.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홍범식 가옥의 대문채는 모두 일곱 칸으로 꾸며졌다. 대문을 들어서면서 좌측으로는 세 칸의 광이 있고, 우측으로는 두 칸의 방과 한 칸의 부엌이 있다. 그리고 좌측으로 담장을 두른 작은 일각문을 들어서면, 네 칸으로 꾸며진 행랑채가 자리한다. 행랑채에 안담을 두르고 마루방을 놓은 집은 보기가 힘들다.

행랑채는 바라보면서 좌측에 부엌을 두고, 두 칸 방을 드렸다. 그리고 맨 끝의 한 칸은 마루방을 두었다. 이 세 칸의 방 앞에는 모두 툇마루를 놓았는데, 이 마루방은 행랑채에 기거를 하는 남정네들의 작업 공간으로 보인다. 행랑채의 부엌은 사랑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뒷문을 내었다. 이곳에서 음식이라도 해서 사랑채로 나르기 위함이었는가 보다. 넓은 집 안에서 집안 식솔들의 동선을 생각한 집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