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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름도 마찬가지지만 지명이란 것에도 참으로 오묘함이 있다. 지난 8일, '전라도 지역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지명이 또 있을까?'하는 두 도시, 순천과 화순을 바이크로 달렸다. 순천이란 하늘에 순응한다는 순천(順天)이며 화순이란 화합하고 순응한다는 순천(和順)이다.

 

그런데 가끔 두 도시에 관해 비꼬는 이가 있다. 순천은 '민선 3기 단체장이 모두 비리혐의로 도중하차 했다'는 얘기나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화순'이라는 소리로 지명과는 다르게 시끄럽다는 게 그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자와 좀 다른 견해다. 하늘에 순응하고 화합하지 않는 것에는 단호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듯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덕목을 지명으로 갖고 있는 두 도시를 왕래해 보는 것은 좀 색다르고 재미있을 듯 보여 무작정 길을 나서기로 한 당일, 무심하게도 비는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아는 바와 같이 바이크 여행은 날씨가 뒷받침을 해 줘야 가능하다. 물론 굳이 떠나겠다고 마음먹으면 궂은 날씨에도 떠날 수 있지만 다소 위험한데, 다행스럽게도 막상 '길을 떠나자'는 마음을 굳히자 비는 멈추기 시작했다.

 

 

바이크는 15번 국도를 따라서 22번 국도로 이어진 길을 택했다. 이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은 아름다운 산과 강과 호수다. 조계산 자락을 지나 모후산으로 이어지고 주암호와 보성강이 그 사이를 메운다.

 

주암호는 1983년부터 시작된 주암댐 건설로 인해 생긴 호수로 주변에 있던 많은 자연 마을들이 물에 잠기게 됐는데 호수 주변으로는 망향비나 정자가 군데군데 서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곡천교에 있는 망향정으로 26개 마을과 주민들을 위해 세워놓았는데 의미를 떠나 풍광이 더 없이 아름답다.

 

순천과 화순 사이에서 만나는 특별한 길로는 외서면의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다. 또한 대원사앞길 왕벚나무 터널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겨울철이라 다소 앙상하지만 꽃피는 봄, 새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을 맞이할 그곳을 생각해 보면 즐거운 상상이다.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서재필기념관, 고인돌공원, 대원사, 유마사, 사평자연휴양림 등이 있지만 필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송광면 길옆에서 만난 장터로, 녹이 슬고 헤진 채 서 있는 비 막이 함석집 6동의 모습이 촌로의 깊고 주름진 삶처럼 마음에 와 닿았다.

 

시골에서 '장'이라는 것이 어느 면에서는 인근 동네 주민들의 교류의 장이며 소통의 장으로 잔칫날의 성격이 강해서 그런지 장이 서지 않는 오늘 같은 날이면 그 장터는 더욱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더구나 망향정이 서 있는 곳과 불과 1km 내에 서 있어 10여 년 전쯤에는 고향을 잃어버린 26개 마을 주민들도 이곳 장을 이용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사라지고 퇴색돼 가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길에서 만나지는 못했지만 순천과 화순의 가장 큰 특징은 고인돌 유적지다. 그만큼 이 지역이 고대로부터 살기 좋은 곳이었음을 짐작케 하는데 화순의 효산리, 대신리 지석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으며 순천 송광면에는 고인돌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순천에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다면 화순에는 유마사와 운주사가 있다. 전자가 삼보사찰, 천년고찰로 일반인들이 사찰의 전통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곳이라면 후자는 전라도 지역에서 찾기 힘든 비구니승가대학(유마사)과 와불(운주사)로 불가사이함을 더하고 있는 사찰들이다.

 

비록 달려오는 길에서는 챙겨보지 못한 지금의 생각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고인돌 유적지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창조주의 영역인 특별한 사찰들이 '하늘에 순응하고 화합한다'는 순천과 화순의 뜻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했다. 누구든 순천과 화순을 지날 때면 지명을 되새겨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바이크올레길, #순천,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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