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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히틀러>
ⓒ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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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독재자 반열에 오른 이들은 많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아돌프 히틀러만큼 20세기 독재자로 자리매김한 이는 없다. 히틀러는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았고, 아니 더 많은 사람들을 갈가리 찢기게 하여 독일을 넘어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례가 없었고 20세기 대학살 주모자였던 그는 책을 좋아했다. 베토벤, 브루크너, 그리고 평생 음악 이상으로 삼았던 리하르트 바그너를 좋아했으며 한 때는 위대한 미술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스무네 살이 될 때까지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뾰족한 계획도 없이 무위도식하면서 떠돌고 있던" 별 볼일 없이 산 '낙오자'에 불과했다.

책이 동무였고, 바로크를 사랑하고, 미술가가 되기를 바랐으며, 별 볼 일 없이 젊음을 보냈던 '낙오자'가 도대체 어떻게 독일에서 권력을 휘어잡고 20세기 세계사에서 수천 만 명 인민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특히 그의 조국 독일은 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첫 손가락에 꼽혀도 토를 달 사람을 없는 이마누엘 칸트, <파우스트>를 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유명한 책을 남긴 피히테를 선조로 두었다. 이런 정신문명을 가진 독일인들이 어떻게 이 독재자를 '하이 히틀러'라고 부르면서 충성했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영국 세필드 대학의 현대사 교수이자 구조주의 역사학자인 이언 커쇼가 30여년에 걸친 히틀러와 제3제국 연구 성과를 종합해 펴낸 <히틀러 1·2>에서 찾을 수 있다.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히틀러와 나치 체제를 분석한 전기 '히틀러' 1·2권 합쳐-영어판은 총4권-2236쪽이 넘는 분량이라, 처음엔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물론 책 분량이 많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언 커쇼는 엄청난 자료를 바탕으로 치밀한 연구를 통해 <히틀러1·2>를 썼다. 이 책은 지금까지 나온 히틀러 연구서 가운데 가장 치밀하고, 깊이 있고, 균형 잡힌 저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2000년 최고의 역사 저작에 수여하는 울프슨 역사상을 수상했다.

1권은 1889년 히틀러의 출생부터 위대한 예술가를 꿈꾼 청년 시절,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총리에 오른 후 재무장을 선언, 1936년 라인란트 점령을 계기로 독일제국의 위대한 부활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까지를 다루었다. 

커쇼는 히틀러를 '개인'으로 보기보다 당시 독일이라는 '사회'가 함께 히틀러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외곬, 확고부동, 모든 장애물을 쓸어버리는 무자비함, 영특한 냉소주의도"도 한 몫했지만 "히틀러의 권력은 사실 사회에 더 깊은 뿌리를 두었다, 그것은 히틀러를 추종한 사람들이 히틀러에게 쏟아 부은 사회적 기대와 욕망의 산물이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명의 뿌리를 뒤흔든 나치의 공격은 20세기를 규정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히틀러는 그 공격의 지원지였다. 그렇지만 히틀러는 그 공격의 주창자였지 일차 원인은 아니었다."(1권 36쪽).

즉 히틀러가 독재자가 된 것은 단순히 히틀러 개인 문제가 아니라 그 시대와 그 사회가 바란 산물이라는 말이다. 독일 인민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한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전쟁, 혁명, 민족적 수모, 볼셰비즘에 대한 공포는 워낙 광범위하게 독일 국민을 뒤흔들었고, 히틀러는 그런 상황을 발판으로 삼았다. 독일의 서민들이 느끼는 공포와 울분과 고정관념을 당대의 어느 정치인보다도 잘 대변했다. 더 나은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어느 정치인보다도 잘 심어주었다."(1권 603쪽)

한 때는 위대했지만 이제는 쇠락하여 초라해진 독일 제국, 독일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히틀러의 환상은 독일 인민들을 감동시켰고, 지지자들은 점점 히틀러와 나치체제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2권은 히틀러가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가 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히틀러가 독일을 전쟁으로 몰고 가 결국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9년 뒤인 1945년 베를린의 어두운 지하 벙커에서 자살하는 것까지 다루었다. 커쇼는 히틀러를 악마로 만들어 단죄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철저히 객관적이다.

"나는 역사적 인물에 드러난 악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내가 하려는 것은 히틀러가 도대체 어떻게 한 사회를 휘어잡았기에 그 사회가 그렇게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도 히틀러를 지지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2권 8쪽)

위대한 독일 제국 부활을 선언하고, 지도자로서 능력을 보이자 인민들은 그를 지지했고, 인민들이 자신을 지지하자 히틀러를 자신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타협은 없었고, 독일제국이 자기 손에 달렸다고 확신했다.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변수로서 나 같은 사람은 유일무이하다. 군인이나 민간인 중 누구도 나를 대신할 사람은 없다. 나는 지력과 결단의 힘을 믿는다. 전쟁은 언제나 적을 절멸시켜야 한다. 이걸 외면하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이다. 타협은 없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나는 쳐들어가서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다. 제국의 운명이 오직 나한테 달렸다."(2권 354쪽)

오직 자신에 대한 절대적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이 연설, 선동성을 통해 참모들과 독일인민들은 그를 숭배했고, 히틀러 지배력은 극지방의 빙하처럼 견고해져 극단의 길로 치닫게 된다. 이 신념은 결국 패배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커쇼는 말한다.

이어 커쇼는 "지도자의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권력은 허깨비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실제로 굳게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도자 숭배는 수백만 명의 보통 사람을 휘어잡았다. 더불어 알아주는 자리에 있고 힘깨나 쓴다는 사람까지도 속으로는 비판을 하고 우습게 볼지언정, 지도자 숭배를 자기 입맛에 맞게 이용하다 보니, 히틀러의 권력이 어떤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으로 굳게된 것이다.

자연히 히틀러는 누구한테도 견제받지 않았다. 파멸로 가는 길은 훤히 뚫렸다. 그 대가는 참혹했다. 독일 인민을 비롯하여 독일 안팎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치정권에 희생됐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바가 거의 없는 히틀러지만, 어머니에 대한 애정은 컸다. 그는 <나의 투쟁>에서 "나는 아버지는 존경했지만 어머니는 사랑했다"라고 썼다, 그리고 벙커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어머니 사진을 품에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어머니를 사랑한 것만큼 다른 이들을 사랑했다면 20세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만약'은 공상일뿐 현실이 아니다.

이 책은 히틀러에게 사로잡힌 독일 사회와 유럽인들의 모습을 통해 결코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히틀러 치하에서 벌어진 일은 현대 문명 자체의 소산이자 특성인가? 그런 참사의 가능성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는가? 히틀러와 그의 시대가 던진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고 말한다. 

저자는 1권 머리글에서 "히틀러의 유산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그 유산에는 어떻게 히틀러가 가능했는지를 이해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의무도 들어간다. 우리는 오직 역사를 통해서만 미래를 위해서 배울 수가 있다"고 적었다. 2천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기 부담스럽다고 해도 한 번 도전해보자. 우린 히틀러를 악마로 비판만 하지 말고 그가 저지른 그런 참혹함이 다시는 우리에게 되풀이 되지 않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히틀러1.2> 이어 커쇼 지음 ㅣ 이희재 옮김 ㅣ 교양인 펴냄 ㅣ 1권 50,000원 2권 60,000원



히틀러 세트 - 전2권 - 히틀러 1.2

이언 커쇼 지음, 알라딘 이벤트(2010)


태그:#히틀러,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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