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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던 교도소 재소자가 자살했다면 이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국가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는 2000년 만취해 처와 돈 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로 처의 가슴 등을 10회 찔러 전치 4주의 상해를 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특히 이듬해 11월에는 흉기로 자신의 친형과 형수를 살해해 징역 15년에 치료감호를 선고받았다.

 

이후 A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치료를 받고 전주교도소로 이감돼 복역하던 중 2005년 7월부터 계속 정신착란증세를 보이다 결국 그해 8월 교도소 화장실에서 자신의 내의를 찢어 만든 끈으로 목을 매 자살했다.

 

형과 형수를 살해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A씨는 자살 이틀 전 직업훈련장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울면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나를 묶고 죽여주십시오. 나는 개다"라고 말하며 바닥을 기어 다니고 "멍멍"하고 개소리를 내면서 교도관들을 물려고 하는 등 이상증세를 보였다.

 

이에 유족들은 "교도관들이 A씨의 자살 가능성을 알면서도 CCTV 감시근무자조차도 자리를 1시간 이상씩 비우게 함으로써 신병관리를 소홀히 해 자살을 용이하게 한 만큼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며 소송을 냈다.

 

◈ 1심, 자살자 80% 책임…국가는 자살 방지 못한 20% 책임

 

1심인 서울중앙지법 제25민사부(재판장 한창호 부장판사)는 2007년 10월 교도소에서 자살한 A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296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당시 망인이 비교적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보이는 등 비록 자살 가능성이 일부 낮아진 것처럼 판단됐더라도 그 이전의 정신 및 행동양식을 감안할 때 여전히 자살 가능성은 있었다"며 "따라서 교도소 측은 망인의 동태를 상당한 주의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감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순찰에 의한 관찰뿐만 아니라 CCTV 모니터에 의한 관찰을 1시간 동안 게을리 한 결과 목을 매고 있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만큼 교도관들의 직무상 잘못으로 인해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망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잘못이 손해발생의 주된 원인이 됐으므로 망인의 과실비율을 80%로 봐, 피고의 책임을 20%로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 항소심 "교도관들이 망인의 자살을 방치한 것으로 볼 수 없다" 1심 뒤집어

 

그런데 항소심은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서울고법 제8민사부(재판장 김창석 부장판사)는 2008년 9월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비록 교도관들이 사전에 망인이 자살하는 것을 방지하지 못했더라고 해도, 교도관들이 망인의 자살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감시 등 신병관리를 소홀히 함으로써 안전확보의무에 위반해 망인을 사망토록 방치했다고 볼 수 없고, 달리 망인의 자살과 관련해 교도관들의 과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 대법 "자살 사고발생 막지 못한 직무상 주의의무 위반"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자살한 A씨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 승소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고 무렵 망인에게 발병한 급성정신착란증의 증세가 과중한 수준이었고, 사고 당일에도 약물투여 및 계구 사용이 있어 자살위험이 줄어들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보이지 않으므로 교도소 측은 자살사고의 발생위험에 대비해 계구 사용을 유지하거나 CCTV 상으로 보다 면밀히 관찰하는 등 직무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 사건 당일 망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생활을 잘 하겠다'는 반성문을 제출했다는 이유로 계구사용이 해제됐고, CCTV상의 감시업무를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근무자조차 남겨 놓지 않은 채 자리를 이탈한 점 등에 비춰 보면 교도관들이 사망사고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할 직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달리 판단한 원심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해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재소자, #교도소, #손해배상,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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