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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장 길이라는 죽령터널을 어머니 영정사진을 찍기 위해 달려갑니다

어머니 쓰러진 지 3년, 안동시 남후면 소망의 집에서 키운 어머니의 소망은
자는 듯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과 딸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당도 예수님을 믿는 거라고 스무 번쯤 말씀드려도
거긴 마리아님을 믿지 않냐고 우기시는 어머니
예수님을 낳은 분이라 공경하는 거라는 대답 끝에
자식과 그 어미는 한 몸이니까 라는 말이 입안에서 뜨겁게 솟구칩니다
카메라 속의 어머니와 그 모습을 찍고 있는 딸은
지금 한 몸입니까 멀고 먼 타인입니까
어머니를 렌즈에 담고 있는 딸의 마음에 죄스런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집니다

지팡이를 짚고도 위태로운 어머니의 걸음이 필름 속에서 출렁입니다
웃어보라는 딸의 말에 영정사진이 예쁘면 안 된다고 어머니, 자꾸 먼 산만 보십니다
골고다 언덕 같은 어머니의 어깨 뒤로 소망의 집 현판이 십자가로 들어옵니다
셔터를 누르면서 딸은 우는데 어머니, 그제야 환하게 웃습니다
마른 햇살을 닮은 할머니들이 영정 사진을 찍고 있는 어머니와 딸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망의 집에서는 사소한 것도 소망이 되는 모양입니다
바랜 세월 견디는 동안 골 깊어진 눈동자지만
피붙이들 하나하나 살뜰하게 바라볼 자신의 사진 한 장
왜 품에 걸고 싶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를 찍고 나면 재롱잔치 하듯 모두 불러 모아
환하게 웃어라 소리치며 사진을 찍어드려야겠습니다

영정 사진으로 쓰일 필름 속의 어머니가 참 예쁩니다

- 서석화 <잠실여자7 -어머니의 영정사진>

7년 전 나는 이런 시를 썼었다. 그때 찍은 어머니의 사진을 지금도 바라본다. 수의를 미리 지어놓으면 장수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에 수의 대신 영정사진을 대입시킨다. 그리고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기로 한다. 필름을 맡긴 뒤 현상한 사진을 끌어안고 돌아오며 나는 길거리에서부터 터진 울음을 집에까지 와서도 한참이나 그치지 못했다.

쓰러지신 지 3년 째 되던 어느 날, 한 달 만에 어머니께 가기로 한 날 아침 어머니는 카메라를 가져오라는 당부 전화를 하셨다.

"왜?"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엄마는 앨범도 나 다 줬잖아. 그런데 사진 한 장 없으니까 허전하지?"
"그래서가 아니고... 준비해 둬야지."

갑자기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앉는 내 심장 소리를 어머니는 들으셨을까? 낮고 차분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게 분명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상가에 가 보면 미리 준비해 두지 못해 젊었을 적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놓아둔 집이 많더라. 그게 엄마는 보기 흉했어. 수를 다하면 다 한 대로 못 했으면 못 한 대로 떠날 즈음 모습으로 남은 피붙이들 바라봐야지. 그리고 가장 최근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기억돼야지. 안 그래도 떠나면 기억일랑 허깨비 같은 것인데."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무남독녀 외딸한테 엄마의 영정사진을 찍으라고? 엄만 그걸 나한테 시키고 싶어?"

울음은 이미 터지고 말았다. 세상에 나더러 엄마의 마지막 사진을 찍으라니, 그리고 그 사진을 내 가슴에 평생 걸라니.

"네가 찍어야 해. 사진은 그렇다더라. 찍는 사람의 애정에 따라 잘 나오기도 하고 못 나오기도 하는 거라더라. 병들어 너 못할 짓 많이 시키고 있지만, 너를 가져 복중에 있을 때부터 네가 내겐 기쁨이요 소망이었던 엄만데, 사랑하는 내 딸이 찍어 줘야지."

그렇게 나는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렸다.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플 때면 나는 늘 그 사진을 본다. 지난 7년을 내 주치의가 되어 나를 지켜주고 회복시켜주신 나의 어머니. 따뜻한 봄이 오면 더 예쁜 옷을 입혀 다시 사진을 찍어드려야겠다. 그러면 어머니는 다시 7년을 더 내 곁에 계셔주실 것이다.


태그:#어머니, #영정사진, #예수님, #마리아,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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