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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찰은 전교조 일부 교사들에게 정치활동 혐의가 있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수사에 대한 형평성 논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 장관 안병만)가 직접 시도교육감 선거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 교육계를 비롯한 정치권 등에선 유신이나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명백한 관권(官權) 선거라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직자, 그것도 교과부의 최고위 간부가 직접 선거에 관여했다면, 그것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지방교육 자치를 명백하게 반하는 일이다.

이번 일은 <한국일보>의 2월 3일자 '교과부, 교육감 선거 개입 '파문''에 의해서 세상 밖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이미 교육계나 정치계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비밀이었다. 교과부의 최고위 인사가 직접 대상자들을 만나서 조율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은 교과부 관계자뿐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관계자, 그리고 언론계 기자들에겐 이미 파다하게 알려진 것이었다. 구체적인 후보의 실명까지 다 알려져 있었다.

"부교육감은 출마 마라"... 대단한 교과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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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이 기사에서 "교과부는 수도권의 다른 2개 지역 시·도교육감 선거에도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제기했는데, 이중 한 지역은 인천을 가리키는 것이다. 인천은 현재 교육감이 공석이고 부교육감이 권한 대행을 하고 있다. 이번 교육감선거에서 여권 성향의 교육감과 부교육감이 한꺼번에 출마하면 여권표가 갈라지므로 "부교육감은 출마하지 말고 곧 출마할 여권 후보를 지원하는 일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천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3개 시도에서 모두 이런 움직임이 기정사실화 돼 있다. 교과부가 보수 성향 후보들을 단일화해 진보성향 후보와 1:1로 선거전에 나선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직접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과 경기도 역시 구체적으로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교육계 인사와 민주당, 언론계의 소식을 종합하면, 서울에는 뉴라이트 조직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P 전 의원이 물망에 오르고 있고, 이 카드가 안 되면 전 교육부 장관 출신인 M 교수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의 경우 김상곤 현 교육감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한 가운데 이에 대항할 인물로 현재 한 뉴라이트 단체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전 교육부 장관 출신 L씨를 준비하고 있단다.

현재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보수쪽 수도권 교육감 후보들은 전직 교육부장관 또는 국회의원으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해 전국 선거의 흐름을 주도할 수 있을 만큼, 수도권 보수진영후보로는 최강이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초중등교육의 지역 수장을 뽑는데 이렇게 교육부장관 출신과 대학교수들이 나서는 것은 격이 맞지 않다는 보수진영 내부 비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권에게는 이번 선거가 워낙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출마의 뜻을 밝히지는 않았으며 조만간 가부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에서는 애초 서울교육감 선거에는 L씨가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그 역시 교과부 고위 관계자가 직접 나서서 출마를 포기시키고, P씨와 M씨 등으로 조율하고 있다고 복수의 교육계 인사들이 전하고 있다.

교과부 선거개입, 한나라당 반응이 궁금하다

지난 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무원, 교사탄압저지공동대책위원회 및 민생민주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공무원 및 전교조 공안 탄압 기자회견'에서 방대곤 전교조 초등정책국장이 경찰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수사 확대 방침과 관련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1월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공무원, 교사탄압저지공동대책위원회 및 민생민주국민회의 주최로 열린 '공무원 및 전교조 공안 탄압 기자회견'에서 방대곤 전교조 초등정책국장이 경찰의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수사 확대 방침과 관련해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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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3월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있었다. 한나라당과 당시 민주당은 여러 가지 이유를 갖다 댔지만,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어느 방송사와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 해서 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발언한 것은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 제1항(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와 제86조(공무원 등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금지)를 위반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열린우리당 당원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다. 대통령은 대표적인 정치인인데 정당의 정치인이 정당의 지지를 표명한 것, 그것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이 발언으로 사상 초유의 탄핵 사태를 맞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 교과부 고위 관리가 직접 수도권의 교육감 선거를 챙기면서 후보를 주저앉히고 누구를 내세울 것인지를 기획하고 실천한 의혹이 있다고 보도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과는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합법적으로 하겠다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대통령이 한 말을 가지고 탄핵까지 했던 한나라당이 이번에는 그 교과부 고위 관계자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할까? 이는 당장 사퇴를 해야 할뿐 아니라, 형사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안이다.

한나라당은 전교조 교사들이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인 후원금을 낸 혐의에 대해서 국기를 뒤흔드는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대검찰청 역시 이를 중대 사안으로 규정하고 철저 수사를 지시했다고 한다. 여기에 노동부까지 합세해 정치 활동 혐의, 구체적으로 정당 가입 혐의가 확인되는 모든 교사들은 무조건 해임이라고 하고, 이를 빌미로 전교조 해산까지 언론에 이야기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 한나라당, 노동부와 행안부, 교과부까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교사들의 정치활동 혐의가 국기를 뒤흔드는 중대 사안이라면, 교과부 고위 관계자가 지방 교육의 수장을 뽑는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를 주저앉히고, 부교육감에게 교육감 선거운동을 도우라고 했다는 것은 무슨 사태라고 규정해야 할까? 한나라당이 뭐라고 논평을 낼지 궁금하다.

검찰·경찰은 교과부에도 칼날 들이댈 수 있을까

여권이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누구를 교육감 후보로 내세워 선거를 준비하느냐는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이 교과부 고위 관계자가 나서서 출마 예정 후보를 사퇴시키고, 자리에 남아서 여권 후보의 선거운동을 도우라는 식으로 발언하고, 후보를 조율하러 다닌 것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헌법과 지방교육자치법 등에 따라 시도교육감은 국민의 직선으로 뽑히는 지방교육의 수장이다. 그리고 우리 헌법과 법률은 교육과 정치를 명백하게 분리하고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교사의 정치활동은 '공적인 영역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서까지 이를 금지하는 것이 옳으냐'하는 논란인데 반해 이번 교과부의 교육감 선거 개입 건은 '공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지위를 가지고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명백하게 불법이다.

5공화국 때는 교장이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 가입원서와 선거운동원 등록서를 들고 다니면서 교사들에게 사인하도록 강요했던 시절이었다. 이전 유신과 자유당 정권에서는 이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교사들에게 어깨띠 두르고 선거운동을 하라고 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자유당 정권, 유신독재와 5공 군사정권에서나 행해지던 관권 선거가 다시 부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과부는 교육감 선거 기획과 후보 조율을 하고 있다는 교과부의 고위 관계자가 누군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현재 전교조 교사들의 개인적인 정치활동 혐의에 대해서 이 잡듯 뒤지고 있는 검찰과 경찰은 이 중차대한 사건에 대해서 즉시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악몽 같던 군사독재시대의 관권선거를 다시 보고 싶지 않다. 과연 검찰은 전교조 교사에게 들이댄 그 칼날을 이들에게도 들이댈 수 있을지 그들의 선택이 주목된다.


태그:#교과부, #교육감, #관권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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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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