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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말했다. 니시자카(西坂, 서쪽 언덕)는 나가사키의 퐁네프라고. 나가사키에서 제일 멋진 곳이라고. 그래서 자신이 나가사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니시자카라고 했다. 일본 자위대의 이라크 파병 위헌소송이나 최근 한국인을 분노하게 했던 '99엔 판결'에서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편에서 싸웠던 우오즈미 변호사의 말이다.

니시자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도쿠가와 막부시절에 이르기까지 천주교 신도들이 종교탄압에 의해 전국 각지에서 끌려와 순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언덕에는 나가사키의 '명물'이 된 26명의 성인 순교지 터 니시자카 공원이 있어 수많은 관광객과 수학여행단이 거의 빼놓지 않고 들러 가는 코스가 되었다. 한국에서도 기독교나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로서 자주 발걸음을 옮기는 명소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잘 모른다. 2~3분만 조금 더 올라가면 관광지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나가사키의 진짜 명물, 나가사키의 숨은 보석이 있다는 것을.

'원폭 피해' 나가사키에서 가해의 역사 전시

오카마사하루 자료관은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오직 회원들의 회비 및 기부금, 그리고 이사진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의해서 설립, 운영되고 있다. 월요일 휴관,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5시 개관. 나가사키 JR역 맞은편 NHK방송국 오른편 언덕길을 200m가량 오르면 자료관 이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오카마사하루 자료관은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한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 없이 오직 회원들의 회비 및 기부금, 그리고 이사진과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에 의해서 설립, 운영되고 있다. 월요일 휴관, 화~일요일 오전 9시~오후5시 개관. 나가사키 JR역 맞은편 NHK방송국 오른편 언덕길을 200m가량 오르면 자료관 이름이 시야에 들어온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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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배, 그리고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저질렀던 가해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평화자료관이 그곳에 있다. 본래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요리집 터를 매입하여 평화자료관으로 살뜰하게 차린 오카 마사하루(岡正治)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지역 평화운동과 역사교육의 거점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1995년 10월에 설립, 어느덧 15주년을 맞이하는 이 자료관은 청년 시절 해병대에 근무, 해군사관학교의 교원을 지낸 경험에 대한 속죄의식과 철저한 자기 반성 및 책임감 위에, 평생을 실천적 평화운동가로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살다 간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뜻을 잇고자 지역 평화운동가와 시민들이 힘을 모아 세운 곳이다. 목사의 뜻을 잇는다고 해서 결코 종교적인 색채를 띠는 장소는 아니다.

나가사키의 조선인 강제연행 및 피폭자 실태 조사, 일본의 침략전쟁 반성과 전후보상, 평화자료관 건립운동 및 반차별· 인권운동에 힘썼던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
 나가사키의 조선인 강제연행 및 피폭자 실태 조사, 일본의 침략전쟁 반성과 전후보상, 평화자료관 건립운동 및 반차별· 인권운동에 힘썼던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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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 목사는 일본 르텔 복음교회 전도사로 나가사키에 부임한 것을 시작으로 해, 1965년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고,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를 세우는가 하면, '각 마을의 작은 야스쿠니'라고도 볼 수 있는 '충혼비' 위헌 소송을 펼쳐나간 인물이다.

나가사키 시민들조차 왜 조선인이 일본에서 살고 있는지, 그들의 형편이 어떠한지도 잘 모르고 관심도 없던 시절에 오카 목사는 꾸준히 조선인 원자폭탄 피해자의 실태 조사를 시작하고, 시 의회에 진출하여 의원으로 재직하는 당시에도 항상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주장하며, 남들이 외면하는 일에 몰두했다. 강제연행 피해자나 원폭피해자들, 일본인 관계자들의 증언을 청취하러 녹음기와 사진기와 노트를 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발로 뛴 '발바닥 운동가'였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광주 5.18의 배후 인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목하여 사형을 선고했을 때도 나가사키에서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그가 남긴 말과 글에는 천황의 전쟁책임을 추궁하며, 일본인으로서 전쟁과 침략과 차별의 역사를 뼛속까지 반성하고 고발하는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동시에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부분도 많다.

자료관은 약간 낡은 풍의 4층 회색 건물로, 50명 이상의 단체 견학생을 한꺼번에 입장시킬 수 없을 정도로 공간은 좁은 편이지만, 전시물을 전부 꼼꼼이 살펴보려면 3시간 정도는 소요된다. 약간이라도 내공이 있는 사람은 자료가 가진 가치를 알아차릴 수 있다. 1,2층이 전시공간이고 3층은 회의실, 4층은 자료보관소 및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이 아닌 아시아인의 눈으로 보라!

자료관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어 있는 정면의 전시물. 원자폭탄이 떨어진 3일 뒤의 나가사키 지형 사진과 함께 그 주변을 조선·중국인 피폭자의 사진과 사연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둘러싸고 있다.
 자료관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보게 되어 있는 정면의 전시물. 원자폭탄이 떨어진 3일 뒤의 나가사키 지형 사진과 함께 그 주변을 조선·중국인 피폭자의 사진과 사연을 소개하는 전시물이 둘러싸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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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정면으로 보이는 나가사키 원폭 상황도다. 1945년 8월 12일, 미군이 원폭투하로부터 3일이 지난 날 상공 1000피트에서 촬영한 사진인데, 가로 2m, 세로 1m의 판넬로 제작, 전시하고 있다. 원폭 관련 책이나 팸플릿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진이지만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전시물은 구성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예를 들면, 조선인이 강제노동을 했던 스미요시 터널 공사장이나 미쯔비시, 가와나미 등 당시 주요한 군수기업 시설의 위치 및 조선인 강제연행 노동자들의 기숙사 위치를 특별히 강조하여 표시하고, 조선인과 중국인이 정치범으로 수용되었다가 피폭시 전멸한 형무소 터와 관련한 사진 등을 설명과 함께 첨부한 점이 그러하다.

나가사키 시립 원폭자료관의 전시물 구성은 원폭 이전의 나가사키 모습과 원폭 이후의 참상과 피해 복구, 피해자의 증언, 핵무기 개발 과정 및 핵실험 현황, 핵폐절을 위한 일본과 나가사키· 세계의 동향을 보여주며 나가사키로부터 발신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끝을 맺는다.

계단의 벽마저도 빼곡하게 채운 전시물. 일제강점기하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탄압에 대해서 소개하는 코너가 눈에 띈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은 "메이지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은 타국 사람들을 노예화하고 토지나 자원을 수탈한 침략의 길"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계단의 벽마저도 빼곡하게 채운 전시물. 일제강점기하 조선의 독립운동과 일본의 탄압에 대해서 소개하는 코너가 눈에 띈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은 "메이지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은 타국 사람들을 노예화하고 토지나 자원을 수탈한 침략의 길"이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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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반해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평화도시'가 아닌 '군수시설 도시', '가해자'로서의 나가사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당시 조선인과 중국인 피해자의 사진과 그에 대한 설명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함께 전시하고 있다. 

즉, 이 자료관을 견학하는 동안 당신이 가져야 할 관점은 일본인의 눈이 아니라, 바로 여기 전시돼 있는 당시 조선· 중국인 그리고 아시아인의 마음이 되어 보기를 바란다는 분명한 기획의도가 담긴 것이다. 그러나 강요하지는 않는다. 일일이 설명하지도 않는다. 각자의 마음에 진실의 파문은 서로 다른 무늬와 속도로 다다를 것이므로.       

수학여행을 왔던 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붙여 직접 만들어 보낸 감상의 글.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실을. 더 알고 싶다. 전하고 싶다. 진실을!"이라고 적혀 있다.
 수학여행을 왔던 학생들이 종이학을 접어 붙여 직접 만들어 보낸 감상의 글.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실을. 더 알고 싶다. 전하고 싶다. 진실을!"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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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는 일제강점기하 태평양 전쟁의 격화 속에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함바'(숙소)를 모형으로 제작한 공간이 있다. 함바를 나오면 곧바로 일본 근대화 혹은 전쟁에 가장 열렬히 기여한 산업으로 평가받는 탄광의 갱도 모형도 설치돼 있다. 학생들이 견학을 오면 안으로 들어가서 직접 석탄을 만져볼 수도 있게 하고 있다. 사진 촬영도 전부 자유롭다. 이 갱도 안에는 특별히 "조선국 독립"이라고 어느 조선인 노동자가 글자를 새겨 넣었을 것이 틀림없는 효고현의 지하터널 사진을 부착했다.

1층 계단에서부터 2층 전시실 입구에 이르는 공간도 빈틈없이 빼곡하게 전시물로 채워져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오르면서 역사의 진실을 더듬어 가는 여행 같은 이 전시에는 '사진으로 보는 일본의 침략'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계단 코너의 첫 장면은 조선 침략이다. 한 권의 사진집이나 역사책을 읽는 듯한 구성으로, 강화도 사건, 명성황후 학살, 조선총독부, 토지측량조사와 쌀 수탈, 창씨개명과 황국신민화 교육, 신사참배 강요와 언어 말살 정책 등 가해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3.1독립운동과 독립선언문,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 등도 전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는 '한일 병합 조약'이 사실은 조선 민중의 전국적인 저항운동에 부딪힐 만큼 강제적이고 불법적인 것이었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는 좋았는데, 쇼와 때 전쟁을 일삼고 전쟁에 패배했기 때문에 잘못됐다"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최근 NHK에서 <언덕 위의 구름>, <료마전> 등 메이지 시대를 그리워하는 드라마가 연달아 제작, 방송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런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아니, 미디어가 오히려 이런 인식을 적극 조장해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은 메이지 시대의 개막이란, 일본 입장에서는 '근대화'의 시작이었을지 모르나, 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일본이 청일·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침략을 점점 더 강화시켜가는 시대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래서 만주 침략이나 중일전쟁, 남경 대학살과 중경 대폭격 및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아시아 전역에 걸친 식민지배에서 일본이 남의 땅에 가서 어떤 만행을 저질렀나를 상세하게 전시한다.

이러한 역사인식, 이러한 전시가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수도 없이 봐온 '서대문 형무소', '천안 독립기념관'의 전시물처럼 익숙한 풍경일지 모르나, 이곳은 일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자신의 피해의 역사가 아니라 가해의 역사를 정직하게 전시하는 평화자료관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할 때,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이 일본 속에서 지키고자 하는 가치가 얼마나 값진 것이며, 그러한 가치를 지키는 데는 또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견학을 온 학생들이 사진 전시물을 보며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견학을 온 학생들이 사진 전시물을 보며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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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을 방문하는 견학자의 대다수는 수학여행단 혹은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평화학습 및 역사를 바로 알자는 취지에서 찾아오는 학생 그룹이다. 대체로 뜻있는 교사가 학생들을 권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은 때때로 자료관에 전시된 남경대학살이나 중국에서 벌어진 학살 사진을 보면 너무 끔찍해서 눈을 돌려버리는 경우도 있다. "무섭다"고 울며 내려와 버리는 학생도 있었다.

어른이 보아도 잔혹해서 차마 평상심으로는 볼 수가 없는, 그래서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이 많다. 그러나 인간은 전쟁과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을 통하여 실제 상상 외의 '짓'을 해 왔다. "거짓말이야."라고 내뱉는 아이의 탄식은 눈앞의 전시물을 거짓으로 단정했다기보다는 거짓말로 믿고 싶은 심정이 담겨 있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은 오카 목사가 살아있을 때부터 꿈꾸던 공간이다. 오카 목사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는 인류 최초로 핵무기 피해의 도시가 된 곳이며, 사람과 모든 생명이 핵 실험의 대상이 된 곳이지만, '우리들만의 피해'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왜 이 나라까지 와서 원자폭탄 피해자까지 되어야 했는가를 추적해 역사의 반성 위에 세워진 진정한 역사교육 공간으로서의 평화자료관을 원했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1급 보물이자 최대 자랑인,나가사키 조선인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및 피폭자 실태조사 보고서『원폭과 조선인』.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를 중심으로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약 10년 이상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실이다. 나가사키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노무실태 및 조선인 피폭자의 실태를 가장 충실하게 담아낸 역작이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1급 보물이자 최대 자랑인,나가사키 조선인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및 피폭자 실태조사 보고서『원폭과 조선인』. 고 오카 마사하루 목사를 중심으로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약 10년 이상의 노력으로 이루어낸 결실이다. 나가사키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노무실태 및 조선인 피폭자의 실태를 가장 충실하게 담아낸 역작이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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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료관의 설립을 미처 보지 못하고 1994년 세상을 떠나갔으나, 남은 이들이 그 뜻을 이뤄냈다. 서로 조금씩 돈을 모았고, 기부금도 모았으며, 어렵게 땅과 건물을 구했다. 전시물은 각각 담당을 정해서 손수 제작했다. 대학교수, 중고교 교사, 주부, 헌책방 주인, 공무원과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시민들이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일절 받지 않고 힙겹게 마련한 공간이었다. 자료관이 가지는 성격상 14명의 이사진 중 교육자의 비율이 높다.

피폭 체험을 했던 도시인만큼 일본 전역에서도 나가사키는 히로시마, 오키나와와 함께 평화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그러한 나가사키 내에서도 가해의 역사를 전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많았다. 일본의 가해 역사를 강조하면 결과적으로 미국의 원폭투하에 정당성을 주기 때문에 이는 원폭피해의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있어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반발이었다. 이는 일본의 다른 도시에서는 더욱 정도가 심하다. 나가사키 시립 원폭자료관이 가지는 한계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반영이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 역시 건립 준비 과정에서 재정 문제뿐 아니라, 자료관의 기본 정신과 원칙 및 전시물 구성이나 내용 선택을 두고 수차례의 치열한 논쟁과 회의를 거쳐야 했다.

내외적으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코너는 2층의 위안부 피해자 코너와 남경대학살 코너다. 일본의 보수파가 근현대사에서 가장 부정하고 싶어하는 두 가지가 바로 남경 대학살과 국가가 개입한 강제 성노예제로서의 '위안부'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료관 설립 당시에는 우익의 테러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간혹 남경대학살 영상회나 증언집회를 개최할 때 우익이 대거 참석해 위세를 과시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폭력 사태나 무력에 의한 위협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우익도 와서 자료를 보고는, '이 많은 자료를 잘도 모았네'"

'일본의 양심'이자 '나가사키의 성자(聖者)'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 수십년 동안 일본군에 의한 조선·중국인 강제연행 및 피폭과 차별문제, '위안부' 문제, 전후보상과 반전평화운동에 인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자료관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도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일본의 양심'이자 '나가사키의 성자(聖者)'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 수십년 동안 일본군에 의한 조선·중국인 강제연행 및 피폭과 차별문제, '위안부' 문제, 전후보상과 반전평화운동에 인생을 바쳐온 인물이다. 자료관 설립과 운영에 있어서도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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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관 설립 당시부터 대표를 맡고 있는 다카자네 야스노리(高実康稔) 이사장은 "우익도 와서 자료를 보고는, 이 많은 자료를 잘도 모았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객관적인 사료이고, 역사를 왜곡한 부분은 없기 때문에 결국 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자료를 잘도 모았네."라고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은 것이 아니라 선택한 것"이라며, 학교 교육과 매스컴을 통해서 배우지 못한 역사의 진실을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알리고, '무엇'을 알릴 것인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의 리플렛을 보면, 자료관의 전시 구성은 크게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황민화 정책, 강제연행, 남경 대학살, 한국· 조선인 피폭자, 위안부 피해자, 전후 보상, 오카 마사하루 기념 코너 등으로 되어 있다.

원자폭탄으로 인한 나가사키의 아픔 그리고 피폭자의 체험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물론 후세대의 의무이고 사명이다. 그러나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하여 '나가사키=피폭' '피폭자=일본인', 그래서 '일본인=피해자', '나가사키=평화발신의 도시'라는 너무 쉽게 내려진 결론에 의해 어둠 속에 가려진 또 다른 진실이 있다는 것 역시, 애써 배우고 알고 또 전해야 하는 것이 후세대의 의무이고 사명은 아닐까.

원자폭탄 이전에 나가사키는 이미 지옥이었으며, 누가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는지, 그 지옥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은 누구인지, 일본의 역사를 거슬러 메이지 이후 일본이 걸어온 길을 추적하고 반성하는 이 자료관의 존재는 그래서 소중하다.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실을. 좀더 알고 싶다. 전하고 싶다"

자료관의 핵심적인 전시 코너 중 하나. 미쯔비시 광업의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시내의 조선소에 이동 배치된 후 원자폭탄에 피폭당한 고 서정우 씨의 삶과 증언 및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실태 및 사망자 명단을 전시하고 있다.
 자료관의 핵심적인 전시 코너 중 하나. 미쯔비시 광업의 하시마 탄광으로 강제동원돼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시내의 조선소에 이동 배치된 후 원자폭탄에 피폭당한 고 서정우 씨의 삶과 증언 및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강제연행과 실태 및 사망자 명단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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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자료관의 탄생에 있어 뜻있는 일본 시민들뿐 아니라 밑거름이 되고, 격려와 함께 채찍질이 되어준 또다른 존재들이 있었다. 나가사키에서 강제연행과 민족차별, 피폭이라는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던 조선인 중에는 광복 후 귀국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고 이기상· 박민규· 서정우 씨 등 나가사키의 '자이니치(在日)'들은 자신의 강제연행 혹은 피폭 경험을 증언함과 동시에 일본사회 안의 차별 문제에 대해서도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웠다.

한국 사회에서는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버려지거나 이용당하기만 했던 '자이니치(在日)'들은, 일본사회에서는 차별받는 약자로서 일본 사람들과 연대하여 전후를 올바르게 청산하고 차별없는 세상, 인권이 존중받고 더이상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싸워 왔다. '자이니치(在日)'의 존재, '자이니치(在日)'의 고난, '자이니치(在日)'의 말과 글은 전쟁의 시대를 반성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고,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일본 사회의 시민들뿐 아니라, 역사를 잘 몰랐던 젊은 세대의 마음까지도 움직였다. 어쩌면 지금의 '한류(韓流)'는 실제 그 원류가 '자이니치(在日)'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젊은 세대가 좀처럼 시민운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일본 시민사회의 위기의식 속에서도,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을 떠받치는 주요 활동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 후쿠다 미치코(30세)씨도 '조선인 피폭자' 박민규 씨와의 만남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후쿠다 씨뿐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나중에 "자이니치(在日) 차별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친구들과 함께 불평등 및 차별에 맞서 함께 싸우고 싶다."는 결의문을 보내온 적도 있다. 

이제 일제강점기의 피차별 민족으로서 겪은 아픔이나 굶주림, 학대, 강제연행과 징용, 성적 유린, 전쟁과 원자폭탄 피해의 시대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생존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차별받는 '자이니치(在日)'와 함께 싸워왔던 일본 사람들, 나가사키 시민들의 소중한 뜻이 오카 마사하루 자료관을 통해 이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있다.

"알지 못했다. 진정한 사실을. 좀더 알고 싶다. 전하고 싶다. 진실을." 자료관을 견학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만들어 보낸 기념물에 쓰여진 문구다. 학교 선생님의 인솔에 의해서 오게 되었든, 혹은 연휴에 친가를 방문하거나 여행길에 올랐다가 우연히 자료관을 발견했든, 책이나 팸플릿 또는 지인에 의해 이곳의 존재를 알고 일부러 멀리서까지 찾아온 경우이든, 평화자료관이 있어 사람들이 모여들고 흩어지고 다시 모여들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곳을 떠받치는 것은 깨어있는 양심의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재산을 털고, 누군가는 시간을 털고, 누군가는 지식과 재능과 노동력을 아낌없이 제공하고, 자신에게 가능한 것이라면 작든 크든 기꺼이 헌신하고 있는 희망의 사람들이다. 전쟁과 학살을 저지른 것도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부끄러운 부분도 회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사람이다. 그래서 역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나가사키에 오거든 꼭 오카 마사하루 평화자료관에 들러주시라.


태그:#평화자료관, #오카 마사하루, #나가사키, #원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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