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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 오전 서울 노원구청 1층 로비에서 '호랑이 특별 기획전 - 살아있는 새끼 호랑이 체험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생후 8개월된 호랑이 '강호'와 '범호'가 투명아크릴(가로 3.5미터, 세로 2미터)로 제작된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노원구청 1층 로비에서 '호랑이 특별 기획전 - 살아있는 새끼 호랑이 체험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생후 8개월된 호랑이 '강호'와 '범호'가 투명아크릴(가로 3.5미터, 세로 2미터)로 제작된 전시관에 전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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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호랑이들이 드디어 노원구청 '유리감옥'을 벗어나게 됐다.

호랑이들을 전시한 12월 23일로부터 한 달하고 엿새, 지난 23일 호랑이들의 고통에 대한 첫 기사가 나간 지 5일이 지난 후다.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없었다면 노원구청은 아무런 반성 없이 2월 말까지 호랑이들을 계속 가두고, 구경 시키고, 사육사에게 구민 세금을 주었을 거다. 참 다행이다. '강호'와 '범호'가 그 지겨운 노원구청을 떠나게 돼서. 하지만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상황은 불행이다. 동물들의 고통을 담보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그들의 공무수행은 시작부터 '잔혹'이었다.

위협, 감시, 회유.... 그리고 거짓말

노원구청은 여러모로 놀라운 곳이었다. 호랑이들을 로비에 전시한다는 발상부터가 놀라웠고, 시민들의 항의와 언론의 주목에도 꿋꿋이 "전시의 목적이 교육"이며, 이는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고 우기는 태도가 놀라웠다. 가장 기자의 뒤통수를 강타했던 건 그들의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대박으로 말이다.

호랑이의 '거처' 이야기만 하면 과도하게 언성을 높이는 사육사와 대답을 회피하는 공무원들을 보고 남양주 사육시설에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곳이 허구의 장소라는 것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소설'은 결국 노원구청이 쓴 셈이 됐다.

첫 기사가 나가고 두 번째로 구청을 찾았을 때는 취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옆에 시민들이 없었다면 사육사가 기자를 때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했다. 사육사를 통한 위협과 정체 모를 남자를 통한(아마도 공익근무요원이 아닐까?) 감시 후, 노원구청이 꺼낸 마지막 카드는 '회유'였다.

<오마이뉴스>를 경계하고 감시했던 구청의 한 공무원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기자에게 커피 한 잔을 들고 왔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 커피를 마셨다면 기자는 강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구청 공무원은 옆에 앉아서 기자에게 "인간 대 인간으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눴다. 강호에 대한 기사가 나간 이후 구청의 사정, 전시 담당 공무원의 처지, 언론의 역할 등등. 물론 기자는 그의 입장을 옹호해줄 수 없었고, 그의 의견에 반대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솔직한 대화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터놓고 얘기하니 좋다"며 인사했다.

믿은 기자가 바보였다. 그는 '인간 대 인간'으로 솔직히 말한 게 아니었다. 그는 끝까지 "호랑이들의 거처는 남양주 동물원"이라고 말했고, 기자에게 "호랑이들을 따라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호랑이들은 지난 한달여를 '남양주 동물원'이 아닌 구청 지하 주차장 좁은 트럭 안에서 밤을 지내고 있었다.

아기호랑이 '소설'이라 주장해도, 나는 '강호'의 눈이 슬펐다.
▲ 아기호랑이 '소설'이라 주장해도, 나는 '강호'의 눈이 슬펐다.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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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무 데나 '교육'이라는 말 쓰지 말자

아직 우리 사회는 동물 문제에 대해 합의된 어떤 기준이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동물학대고, 인간이 동물의 자유를 어디까지 지켜줘야 하나'의 문제는 어렵고 논쟁적이다.

인간도 인간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준다. 고의적일 때도 있고, 어쩔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남에게 고의적으로 고통을 주지 않아야 한다거나, 어쩔 수 없을 경우엔, 그것을 최소한으로 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 것들이 예의, 도덕, 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이라는 권력으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것. 그 기준점이 모호하다면 계속해서 고민하고 논의하는 것. 그래서 없었던 건강한 상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런 게 진짜 공부이자 교육이 아닐까. 노원구청 측이 주장한 "호랑이 전시의 교육적 효과"는 힘 있는 존재(인간)는 힘없는 존재(동물)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하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내면화하는 효과다.

아기호랑이 호랑이가 벽을 앞발로 치는 모습
▲ 아기호랑이 호랑이가 벽을 앞발로 치는 모습
ⓒ 권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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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이해할 수 없는 참사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겐 행정기관 로비에서 벌어지는 호랑이 전시가 여러 이상한 일들 중 하나로만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또 사람 살기도 퍽퍽한 이 세상에서 호랑이들의 '사정'까지 우리가 왜 고려해야 하냐며 <오마이뉴스>의 호랑이 전시 관련 후속보도를 "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호랑이 전시 사건은 동물의 문제가 아니라 철저하게 사람의 문제였다. 호랑이들을 사고팔고, 구청 로비에 가둬 전시하고, 밤이 되면 트럭에 넣어서 주차장에 방치했던 이 일련의 일들은 호랑이들 때문에 아니라, 사람들 때문에 일어났다.

이 일이 벌건 대낮에 행정기관에서 공식적인 업무로 진행된 일이란 건 호랑이 전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힘을 실어준 다수의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사실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했다.

호랑이들의 주인이라는 사육사는 "당신은 기자를 할 게 아니라, 저기 동물단체들처럼 머리에 호랑이 탈을 쓰고 퍼포먼스나 하라"고 했지만 기자는 사실 그러할 자격이 없다. 평소에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도, 관련된 지식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굳이 동물과 자연에 대한 깊은 지식과 사유를 통하지 않더라도, 강호의 슬픈 눈을 알아보는 능력, 즉 그 심정을 헤아려보려는 노력만 해도 분노할 수 있는 문제였다.

좁은 아크릴관 속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벽을 앞발로 꽝꽝 쳐대고, 그리하면 몸이 아플 텐데도 계속해서 몸을 던져 투명벽을 쳐대는 강호와 범호를 보면서 "호랑이들이 저렇게 장난을 치면서 잘 논다"고 말했던 사육사의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강호와 범호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뿐이었다. 사육사는 "그건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며 기자를 몰아붙였지만, 호랑이가 기사를 쓸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기자가 대신 써 줄 수밖에. 사람의 입을 통해 '저렇게' 말하는 것은 기사에 쓸 수 있는 가치 있는 팩트(사실)가 되고,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강호의 슬픈 눈은 '소설 속 허구'가 되어선 안될 일이었다.

어쩌면 진짜 팩트는 사람의 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 먼저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일어난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한 반응은 결국 노원구청의 항복이라는 팩트를 만들어냈다. 호랑이가 걱정돼서 노원구청에 항의 민원을 넣었던 많은 시민들이 없었다면, 동물자유연대 등의 동물보호단체들이 없었다면, 강호와 범호는 한 달이나 더 낮엔 좁은 아크릴관에서, 밤엔 주차장 트럭 속에서 심신이 상해갔을 것이다.

1800년대, 백인들에게는 당시 신기한 존재로 여겨졌던 한 흑인 여성은 단순한 호기심거리로 파리의 상류 파티장에 전시되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우리사회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한 반응이 민감하고 예민해진다면 먼 훗날, 노원구청 호랑이 전시 사건도 이와 같이 길이 길이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그럴려면 우리는 지구에서 함께 사는 모든 존재와 잘 공존하는 방법을 더 많이 공부해야만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권지은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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