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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에서 낙안면이 외지며 분지 듯 보성군에서 율어면은 외지로 분류되며 지형도 낙안면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두 곳 모두 신(神)이 만들어 놓은 자연산성의 모습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안쪽은 평야다.

 

낙안면 산성과 율어면 산성의 접경지인 주릿재는 낙안면에서는 서문이며 율어면에서는 동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그곳엔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 문학비가 서 있다. 여순사건과 6.25가 있던 50년 전쯤, 그 누군가는 이 문을 통해서 해방을 찾고자 율어로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곳이 모두 인간 최고의 희망을 지니고 있다. 한 곳은 낙안, 즉 영어로 파라다이스며 한 곳은 해방구, 즉 인디펜던스다. 주릿재를 넘어가면 해방이며 주릿재를 넘어오면 천국인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넘어가고 넘어오고 했을까?

 

필자는 조선시대 전통도시며 낙안군의 치소인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옛 낙안군 지역과 인근지역의 길을 따라 달포 이상을 바이크와 함께 돌아다녔다. 송광사, 선암사, 보성 녹차밭, 순천만, 상사호 길 등 낙안읍성에서 출발하는 길이란 길은 모두 달려봤다.

 

그리고 오늘 길이란 주제의 마지막 편으로 율어 해방구 가는 길, 주릿재를 넘었다. 길은 험하고 고불고불했다. 산은 깊고 넓었다. 이 길이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진이 넘던 길이지만 가상의 인물이 아닌 실질적으로 빨치산들이 해방을 찾아 넘던 길이다.

 

주릿재를 넘기 위해서는 859번 도로를 타야 한다. 그 길은 벌교에서 외서로 넘어가는 15번 도로 중간쯤인 추동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아직도 땅을 파면 이름 모를 유골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골짜기를 지나고 스산한 산머리도 함께 해야 한다.

 

드디어 고갯길 정상에 올라서면 그곳엔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문학비를 만나게 된다. 매섭던 지난 2008년 겨울 조용히 세워졌던 표지판에는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했는데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리면 땅속의 실뿌리까지 흔들린다고 한다. 한반도의 남쪽끝 벌교를 무대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벌교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인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다'라고 기록해 놨다.

 

필자는 감회가 새로웠다. 지난 2년여간 '한 형제가 외세에 의해 남이 되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낙안군'에 관해 연재를 해 왔었기 때문이다. 그 <낙안군>에 대해 외치고 싶었던 말이 표지판은 대신해 주고 있었다.

 

'폐군 된 낙안군 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인 분단과 그 갈등의 축소판이며 상징이다'

 

그리고 율어쪽을 봤다. 올라올 때 봤던 낙안면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도 흡사하게 주위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드넓은 평야는 황토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곳은 다를 것이다는 생각을 무색케하는 '천국'도 '해방구'도 모두가 똑같았다.

 

그렇게 주릿재를 넘어선 바이크는 직선으로 평야를 달리다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난간이 벌겋게 녹슨 '칠음교'라는 다리 앞에서 멈췄다. 그 옆에는 80년대 중반에 세워놓은 또 하나의 칠음교가 있었다.

 

같은 이름의 칠음교, 새로 난 교량이 아무리 튼튼하고 빠르게 지날 수 있다고 해도 필자의 바이크는 낡아서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옛 칠음교위에 고집스럽게 걸터앉았다. 이름이 같다는 것은 한 핏줄이다. 어느 것이 좋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어떤 이는 이렇게 녹슨 난간에 걸터앉아있지 않은가?

 

언제 만들어졌고 왜 이름이 칠음교며 가운데 교각은 또 왜 그리 높은가라는 물음은 다음으로 넘기기로 했다. 그저 길 따라 달렸던 달포동안은 그런 의문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닌 도대체 이 지역에는 어떤 길들이 있는가 하는 다소 표면적인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율어면 소재지를 돌아 나오면서 기정마을에 들렀다. 유신리 마애불상을 한 번 보고가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목적은 불상을 보기 위해서였지만 '깃발로'라는 신기한 주소판을 보고는 또 질문신이 강림하셔서 곧장 노인정으로 향했다.

 

"여기 기정마을인데 왜 '깃발로' 라고 하는가요?" "어? 뭐라고? 여기 기정마을이여" 가는귀가 먹으셨는지 기정마을만 되풀이 하시기에 더 큰 소리로 물어보니 다시 말을 바꿔 여기가 깃발마을이라고 한다. 왜냐는 질문을 다시 꺼내려는 찰나 그 할아버지는 "나도 잘 모르는데 그냥 깃발마을이라고 해"라고 끝을 맺었다.

 

'그래, 필자의 연재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 여행>에서 지금은 그냥 길 따라다. 마을여행은 그 다음이니까 다음에 와서 다시 물어보자'고 꾹 참으면서 인사를 드리고 물러나왔다.

 

그동안 20여일 가깝게 필자는 평소(?)와는 다르게 취재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에 관해 답을 찾기 위한 질문을 최소화했다. 그저 개들이 길을 나서면서 소변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이번 연재는 여기까지가 영역이다'는 그 영역표시를 바이크로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이제 '길 따라'가 마무리 된 이상 본격적으로 '마을여행'을 해 볼 생각이다.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남도마을여행>은 일단 바이크가 갈 수 있는 한계 내에서의 남도지역 마을에 대한 얘기다. 하지만 좀 국한 시켜 정리해 보면, 첫 번째는 송광사에서 출발해 고인돌공원, 서재필기념관, 보성차밭, 율어해방구로 이어지는 마을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

 

두 번째는 외서면구석기유적지에서 출발해 낙안읍성 벌교 고흥 동강, 대서까지의 마을이야기, 세 번째는 선암사를 출발해 낙안읍성, 동화사, 별량, 화포, 순천만의 마을에서 찾아보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사호를 돌아 승주읍과 주암면에서 만나는 얘기들을 풀어낼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부터가 필자의 연재인지도 모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율어, #주릿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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