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어느 날 휴가 중이던 A씨의 배가 심하게 아파왔다. 맹장이 터진 것이다. 아주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집 근처 병원을 이용할 수 없었다. 그 동네병원은 건강보험은 물론이고 그가 가입해놓은 S생명보험사의 의료보험도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A씨가 가입한 민간의료보험을 취급하는 병원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빨리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는 상태여서 그는 전액 본인 부담으로 동네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의료사유화' 정책의 핵심들

'의료민영화'의 현실과 미래를 짚은 <의료사유화의 불편한 진실>.
 '의료민영화'의 현실과 미래를 짚은 <의료사유화의 불편한 진실>.
ⓒ 후마니타스

관련사진보기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없어지고, 영리병원 설립도 허용되고, 민간 의료보험이 활성화되면 일어날 수 있는 모습 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층 가까워진 '의료민영화' 혹은 '의료사유화'의 미래라는 얘기다.

'의료 서비스산업 선진화'로 포장된 '의료사유화'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정책이다. 여기에는 의료서비스산업 진출을 원해왔던 대형보험회사와 대기업 병원 등의 이해관계가 깊이 반영돼 있었다.

최근 발간된 <의료사유화의 불편한 진실>(김명희·김철웅·박형근·윤태호·임준·정백근·정혜주, 후마니타스)의 저자들은 "이런 요구에 따라 2007년 의료법 전면 개정안의 입법을 추진했다"며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해 자동 폐기되기는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된 입법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부터 의료기관의 외국인 환자 유인 알선행위가 허용되었고, 올해 안에 ▲ 내국인 유인알선행위 허용 ▲ 병원경영지원 회사 설립 허용 ▲ 인수합병의 활성화 ▲ 영리법인 병원의 도입 등을 핵심으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상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 비영리법인 병원의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하는 의료채권법 제정안까지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정부가 의료사유화를 위해 핵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완화 혹은 폐지 ▲ 영리법인 병원의 설립 허용 ▲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이다.

저자들은 "이들 세 가지 정책의 조합에 따라서 의료사유화의 추진 강도와 속도가 결정될 것"이라며 "이 세 가지는 결코 독립적인 정책이 아니라 서로 전제하고 있어서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구체화된다면 의료사유화는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저자들은 "이제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고수만으로는 의료사유화 역풍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며 "건강보험 제도의 위기, 공공성의 파산, 시장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의료체제의 전면화가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라고 선언했다.

미국 최고병원 12곳 중 영리병원은 한 곳도 없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핵심정책들이 추진될 경우 한국사회의 보건의료서비스 현실은 어떻게 바뀔까?

먼저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완화 혹은 폐지.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의료공공성'을 지탱해온 대표적인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를 완화하거나 폐지할 경우 건강보험을 취급하는 병원만을 찾아가거나 건강보험을 취급하지 않는 다른 병원에서는 본인이 의료비용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 저자들은 "만일 우리 동네에 병원이 많지만 건강보험 요양기관으로 지정된 곳이 하나도 없다면 나에게 우리 동네는 실질적인 '무의촌'이 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영리법인 병원(영리병원)의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제주특별자치도에 내국인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안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영리병원 설립에 찬성하는 비율이 38.2%에 불과해 일단 멈춘 상태다. 그렇다고 영리병원 도입이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이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영리병원을 전국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경제특구가 영리병원 설립 등 의료사유화의 거점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애초 외국병원을 인천 송도 등 경제특구에 유치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왔다.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과 영리병원 설립 허용,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 예외적용 등의 특혜조치가 제시됐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제주도에 내국인 소유의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하겠다고 밝혀 이것이 다른 경제특구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영리법인 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주식과 채권 발행을 통해 의료기관 투자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영리법인 병원은 주식회사처럼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배당해야 한다. "주식회사 병원"이 생기는 셈이다.

이는 의료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5462개 의료기관 중 최고병원 12개에 영리병원은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고(<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 2007년 조사 결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초일류 미국 병원들은 대부분 '비영리 민간병원'이거나 '공공병원'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영리법인 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무력화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제도의 약화는 영리법인 병원과 민간보험사 결합 가능성을 높여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민간 중심 의료 서비스 공급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저자들은 "영리병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비영리병원과 똑같은 수가를 받는다면 수익을 내서 투자자에게 이윤을 배분하기 힘들 것"이라며 "자연스럽게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이 아닌 다른 방식을 찾게 될 것이고 그것은 미국과 같은 보험회사-병원 결합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삼성의 요구와 일치하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

마지막으로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의 '의료산업 선진화 위원회'에서 결정된 정책으로 ▲ 보충형 민간 의료보험 상품 표준화 및 제도화 ▲ 기업 단위 실손형 민간 의료보험 단체가입 시 세제 혜택 ▲ 건강보험공단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와 공유 등이 핵심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건강보험 대체형 보험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질병정보 등을 민감보험사에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반대여론이 워낙 커서 한나라당이 추진을 일단 보류했다. 하지만 정부는 건강보험공단 등에 개인 질병정보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금융위원회에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보험사기 조사용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이는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의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와 공유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정부기관이 보유한 개인의 질병정보를 사기업에 넘긴 사례는 없다고 한다. 

저자들은 "민간보험사들은 이 정보를 보험가입 자격을 심사하거나 보험금 지급에 활용할 것"이라며 "특정 질환으로 오래 치료받은 경력이 있다면 보험가입을 거부하거나 지급 보험금을 깎는 근거로 삼을 수도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들은 "사보험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면 민간보험사들은 건강보험료를 많이 내면서도 질병에 걸릴 가능성은 더 적은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며 "이에 따라 건강보험에서 탈퇴하는 고소득층이 늘고 그 자리를 민간 의료보험이 대체하게 돼 건강보험 재정과 보장성은 급속도록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정책이 삼성의 요구와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은 현 시기를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을 매개로 정부 의료체제와 연계를 맺는 중간단계"로 규정하면서, "다음 단계는 병원과 연계하고, 국민건강보험과 부분적으로 경쟁하는 민간의료보험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의료공공성 하위권인데도 의료사유화 추진해야 하나?

그런데 한국의 보건의료체제는 의료사유화정책을 추진해야 정도로 의료공공성 정도가 높은 것도 아니다. OECD(2007년)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국민의료비 중 공공지출의 비중은 53.0%로 영국(87.1%), 스웨덴(84.6%), 프랑스(79.8%), 독일(76.9%)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미국 정도가 우리보다 낮은 45.1%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민간병원(비영리법인)의 비중은 훨씬 높다. 2002년 현재 민간병원의 비중은 전국 병상수의 84.8%, 전국 병원수의 93.4%를 차지하고 있다. 즉 국립대 병원이나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 비중은 전체 병원의 10%도 안 된다는 것. 반면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공적 의료보장을 제공하지 않는 유일한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 공공병원의 비중은 20% 정도에 이른다.

저자들은 "공공병원이 국립대 병원까지도 돈벌이 병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며 "특히 재벌병원의 시장진입으로 경쟁이 강화되면서 과잉진료와 중복처방 및 검사가 증가하고, 상급 병실료와 특진료로 대표되는 비급여 진료가 확대되고 있으며, 고가의 종합검진 등 비필수 진료영역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조차 '의료보험개혁'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근거도 없는 '성장동력론'을 내세우며 의료사유화정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동떨어진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저자들은 이러한 진단들을 통해 '의료공공성의 복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사보험을 최소화하고 건강보험을 중심으로 공적 의료보장체제를 재구성하자"는 것.

저자들은 의료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해 ▲ 비급여 항목 최소화 ▲ 포괄주의 건강보험 적용(최소화된 비급여 항목을 제외한 모든 항목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 ▲ 병원(입원기능)-의원(외래기능)의 기능 분리 ▲ 1차 의료기관 주치의 제도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