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엊그제(22일) 내린 안개비로 다시 추워졌다. 바닥에 쌓여 있던 눈들은 얼추 녹았으나 녹지 않은 곳은 얼음이 되어 오히려 위험한 길이 된 곳도 보인다. 워낙에 많이 내린 눈에다 비가 온 뒤에 다시 추워져서, 길 군데 군데가 빙판길이 되어 다리에 힘 풀고 걷다 밟으면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이번에 오르려는 북한산 자락은 구기계곡 방향이었다. 일행들과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만나 0212 버스를 탔다. 서울 성곽의 창의문이 있는 자하문 고개를 넘어 세검정을 지나 구기동 계곡 입구인 승가사 앞에서 내렸다. 향로봉과 비봉이 눈 안으로 가득 들어찬다.

눈이 녹아 계곡에 물이 많았다.
▲ 북한산 구기계곡 눈이 녹아 계곡에 물이 많았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구기계곡을 끼고 오르는 한쪽에는 산 입구까지 고급 주택들이 철옹성처럼 담장을 치고 들어선 모습도 가끔 보인다. 10분 쯤 계곡 대로를 걸어 들어가니 북한산 국립공원 구기분소가 나오면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인솔자는 그곳에 있는 만남의 장소에서 오늘의 일정을 풀어 놓는다.

"오늘은 그동안 다녀온 우이령과 북한산성 대서문 자락과는 달리 조금 힘든 길이 될 거예요. 바위도 많고 가파르게 오르막길도 나옵니다."

눈 녹은 물이 계곡 길을 넘쳐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빙판이 되었다. 눈이 없는 돌길이라 아이젠을 할 수도 없었다.
▲ 북한산 구기계곡 눈 녹은 물이 계곡 길을 넘쳐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빙판이 되었다. 눈이 없는 돌길이라 아이젠을 할 수도 없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목적지는 승가사와 비봉 옆에 있는 사모바위까지다. 바람이 품속으로 파고들어 체감온도가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다치는 사람 없이 내려오는 것이고, 내가 다치면 다친 사람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사람들도 힘드니 조심하고 우선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자고 한다. 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산을 오르다 말고 귀퉁이에 서서 이런 저런 모양의 스트레칭을 하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은 그날 날씨와 등산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곡은 여름날 장마 뒤끝처럼 눈 녹은 물이 콸콸 흘러내리고 있었다. 깨진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을 보니 분명 봄을 알리는 전령사 같았으나 길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발밑에 묻은 물이 밟고 오르는 바위에 닿으면 그대로 얼음이 되어서 미끌미끌 했다. 거의 바위길이라서 흙 땅이 아쉬웠다. 산행 완전 초보자들을 끌고 다녀야 하는 인솔자는 "자기를 앞서지 말고, 또 맨 뒤에 처지는 사람의 발걸음에 보조를 맞춰 서두르지 말고 오르자"고 한다.

바위 옆에 피어난 풀잎. 바위틈을 흐르는 물이 튀어 코팅을 입힌 것처럼 얼어있다.
▲ 북한산 구기계곡 바위 옆에 피어난 풀잎. 바위틈을 흐르는 물이 튀어 코팅을 입힌 것처럼 얼어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산 위에서 눈이 녹아 계곡으로 흘러들어가던 물이 길을 덮어 버린 곳에서는 벌벌 기다가 결국은 미끄러지기도 했고, 바위를 딛는 순간 가슴 철렁한 순간들을 맞으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의 길로는 좋은 계곡 길이었지만 눈이 녹다말고 얼음이 된 지금은 모두들 '만사불여튼튼'하는 마음으로 발길을 내딛었다. 그래도 겨울 산에서 폭포처럼 내려치는 계곡물을 보고는 다들 탄성을 질렀다. 선녀탕이 바로 저기지 싶게 푸른 소가 만들어지도록 물이 풍부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햇빛에 계곡 웅덩이가 폭포의 깊은 소처럼 푸른색을 더하고 있다.
▲ 북한산 구기계곡 햇빛에 계곡 웅덩이가 폭포의 깊은 소처럼 푸른색을 더하고 있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한 시간여를 걸어 사모바위로 오르는 길과 승가사로 오르는 갈림길에 당도했다. 우선 승가사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비구니 절이다. 고려 현종 때 만들어진 승가대사 상이 있고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승가대사는 인도의 유명한 승려라고 하며 그 승려를 기려서 상을 조각하고 절 이름을 승가사라고 했단다.

스님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대웅전 마당을 돌고 있다. 점심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
▲ 북한산 승가사 스님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대웅전 마당을 돌고 있다. 점심공양을 마친 스님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점심시간이었다. 절을 찾아온 불자가 아니라도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식당에 들어갔다. 나물반찬과 된장국으로 얼린 속을 데웠다. 각자 먹은 식판은 각자가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나오면서 식당 문 앞에 있던 불우이웃돕기 성금함에 점심공양 값을 또 각자의 생각대로 냈다. 대웅전 앞에서 스님들이 줄을 지어 마당을 돌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스님이 다가온다.

"무슨 수행을 하는 건가요?"
"종교가 불교 아니시죠?"
"네."

스님이 웃으면서 "그냥 걷는 거예요"한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더니 맨 앞에 죽비를 든 스님이 죽비를 "딱"소리 나게 치는 것을 끝으로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들 가신다. 대웅전 뒤쪽에 108계단이 나있고 승가대사상이 들어있는 암자가 있다고 해서 일행들은 그곳까지 올랐다. 절 앞산 멀리 서울성곽의 능선이 길게 이어져 나타나고 그 뒤 끝으로 남산타워가 흐릿하게 솟아 보인다.

승가사 절에서 바라다본 앞 능선. 흐릿하게 보이면서 길게 뻗어 보이는 능선이 서울성곽 삼청동 쪽이란다.
▲ 북한산 승가사 절에서 바라다본 앞 능선. 흐릿하게 보이면서 길게 뻗어 보이는 능선이 서울성곽 삼청동 쪽이란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절에서 나와 승가사에서 800m 거리에 있다는 사모바위 쪽으로 길을 잡아 올랐다. 산길이 가파르다. 그래도 물이 넘치는 계곡하고 멀어서 미끄러움이 적었다. 사모바위가 있는 곳은 마당바위처럼 평평한 넓은 평지였다. 왼쪽에 보이는 비봉은 눈으로 감상을 하는데 비봉 밑에 있는 나뭇가지들이 하얗다. 산 정상 가까이에 있는 눈들은 녹지 않고 얼음 꽃이 되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비봉 바로 아래쪽의 희끗거리는 것이 얼은 꽃이다.
▲ 북한산 비봉 비봉 바로 아래쪽의 희끗거리는 것이 얼은 꽃이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오른 쪽에 있는 사모바위에 도착했다. 최종목적지다. 거대한 바위가 사모를 쓴 듯 우뚝하니 세워져 있다. 그 곳의 나무들은 햇빛이 든 곳은 그냥 나무고 그늘진 곳은 얼음 꽃이 피어 한 지붕 두 가족 같았다. 갈 길을 재촉하던 등산객들은 사모바위와 얼음 꽃에 발길을 멈추고 그곳에서 다리쉼들을 한다.

사모바위의 옆모습.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나무에 핀 얼음 꽃이 사모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꽃받침 같다.
▲ 사모바위 사모바위의 옆모습. 한 지붕 두 가족처럼 나무에 핀 얼음 꽃이 사모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꽃받침 같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사모바위는 여인을 기다리던 청년이 망부석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고, 사모를 쓴 것 같다하여 사모바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직접 보니 꼭 사모를 쓰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거대하고 웅장해 보이는 네모난 바위가 군더더기 없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여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것치고는 너무 당당한 모습이다. 사모를 쓴 장군 전설이 더 어울린다.
▲ 사모바위 여인을 기다리다 망부석이 된 것치고는 너무 당당한 모습이다. 사모를 쓴 장군 전설이 더 어울린다.
ⓒ 박금옥

관련사진보기


올라갔던 길을 되잡아 내려오는 밋밋한 시간이었지만, 미끄러운 길 때문에 더뎌져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바람막이가 없어진 평지에 내려서니 바람이 차갑게 다가왔다. 산에서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내려오니 겨울이다. 일행들 모두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태그:#북한산, #구기계곡, #사모바위, #승가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민기자가 되어 기사를 올리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