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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순대는 어느 밑반찬과 먹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 순대 이 집 순대는 어느 밑반찬과 먹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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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참거리나 술안주로 그만인 순대... 입김 호호 부는 겨울철에 더욱 맛이 좋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서민음식 순대... 순대는 숙주나 우거지, 찰밥, 채소 등에 돼지피를 골고루 섞어 돼지 창자에 채워 삶아낸 우리 고유 음식으로, 어느 자리에 내놓아도 궁합이 아주 잘 맞는 참 맛난 먹을거리이다.

얼마 전, 늘상 막걸리를 마실 때마다 순대를 안주 삼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살갑게 나누는 가까운 벗에게 서양에서 만든 소시지가 우리나라 순대 자리를 흘깃흘깃 넘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이게 무슨 소리! 지금 김치, 된장에 이어 막걸리, 비빔밥까지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있는 마당에...

사실, 소시지는 만드는 방법부터 순대와 다르다. 소시지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등 여러 가지 고기를 소금에 절인 뒤 가루를 내 사람이 만든 케이싱(casing, 소시지 재료를 채워 넣는 얇은 막)에 채워 삶거나 연기로 그을려 만든 가공식품으로 순대와 엇비슷하기는 하다. 하지만 순대는 케이싱을 쓰는 게 아니라 돼지 창자를 쓰며, 고기 대신 여러 채소와 찰밥, 돼지피를 넣어 만든다는 것이 다르다.

영양가 또한 소시지에 비해 순대가 훨씬 뛰어나다. 중국 명나라 때 본초학자 이시진(1518∼1593)이 엮은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돼지 내장은 납, 수은, 부자 등 갖가지 독을 풀어주는 우수 건강식품"이라고 적혀 있다. 인산 김일훈이 지은 <본초신약>에도 "돼지피는 빈혈, 심장쇠약, 두통, 어지럼증에 좋다"고 씌어져 있다.

근데, 고기를 훈제해 인공 비닐로 만든 서양 소시지가 자연 그대로 만드는 우리 토종 순대를 이길 수 있다고? 한 마디로 택도 없는 소리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는 웰빙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웰빙바람 하나만 보아도 가공식품인 서양 소시지가 자연 식품인 우리 순대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니겠는가. 

이 집 앞에 다가가자 '24시간 영업합니다'란 글씨가 빨강, 파랑, 노랑빛으로 반짝거리며 한 줄로 빙빙 돌아가고 있다
▲ 동네 먹거리집 이 집 앞에 다가가자 '24시간 영업합니다'란 글씨가 빨강, 파랑, 노랑빛으로 반짝거리며 한 줄로 빙빙 돌아가고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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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이 있다
▲ 막걸리와 순대 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이 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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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는 만주어 '셍지 두하'에서 딴 이름

아이들도 즐겨 먹는 순대. 순대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을까. 그 뿌리는 몽골이다. 중국에 있는 가장 오래된 종합 농업기술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양피와 양고기를 다른 재료와 함께 양 창자에 넣어 삶아 먹는 방법이 적혀 있다. 칭기즈칸이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 때 병사들에게 돼지 창자에 쌀과 채소를 넣어 말리거나 얼려 갖고 다니게 했다는 것.

이 음식이 순대이다. 그러니까 순대가 세계를 휘어잡는 데 한몫 단단히 한 것이다. 순대는 만주어로 '셍지 두하'(senggi-duha)라 불렀다. 순대 첫 글자인 '순'은 피를 뜻하는 '셍지'에서 나왔고, '대'는 창자를 뜻하는 '두하'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만주에서는 가축을 잡으면 고기뿐 아니라 내장과 뼈, 피, 가죽까지 버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우리나라 순대는 1809년 순조 9년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가 엮은 생활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와 조선시대 가정백과전서로 집안 살림을 다루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중보산림경제>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책에는 "소 창자 안팎을 깨끗이 씻어 한자 길이씩 베고 쇠고기와 꿩, 닭고기를 두드려 온갖 양념과 기름장을 섞어 창자 속에 가득히 넣고 실로 두 끝을 맨 다음 솥에 먼저 물을 붓고 대나무를 가로지르고 그 위에 얹되 물에 잠기게 말고 뚜껑을 덮어 뭉근한 불로 고아 꽤 익은 후 내어 식거든 말굽 모양으로 저며 초장에 써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첫 순대는 지금처럼 돼지 창자를 쓴 게 아니라 소 창자를 이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순대는 함경도부터 제주도까지 한반도 곳곳에 있으며, 지역마다 먹는 방법과 만드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평안도와 함경도에서는 아바이순대를, 강원도에서는 오징어 순대를, 충청도에서는 병천순대를, 전라도에서는 암뽕순대를 만든다.

옛말에 '돼지 창자국 자주 먹는 놈은 독약을 먹어도 안 죽는다'고 했다. 여기에 지독한 사람을 보고 '돼지창자처럼 독한 넘'이란 말을 쓰기도 한다. 이 말은 돼지창자가 지니고 있는 엄청난 해독작용 때문이다. 한약을 먹을 때에도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는 것은 돼지고기 또한 해독작용이 강해 막말로 '약발'이 받지 않기 때문이다.

벽면 곳곳을 삐뚤삐뚤 빼곡히 채우고 있는 여러 가지 낙서가 이 집 오랜 역사를 은근슬쩍 끄집어내고 있다
▲ 낙서 벽면 곳곳을 삐뚤삐뚤 빼곡히 채우고 있는 여러 가지 낙서가 이 집 오랜 역사를 은근슬쩍 끄집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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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에 막걸리 두 병과 순대까지 먹어도 1천 원이 남는 서민들 벗
▲ 막걸리와 순대 만 원에 막걸리 두 병과 순대까지 먹어도 1천 원이 남는 서민들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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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막걸리하고 순대 드실 거죠?"

"오늘 저녁 따끈따끈한 순대에 막걸리 한 잔 어때?"
"그 참 좋지. 그렇잖아도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게 순대 생각이 간절했는데..."
"그럼 이따 저녁 7시쯤 그때 갔던 동네 순대집에서 봐."
"날씨도 춥고 한 데 좀 일찍 마치고 저녁 6시쯤 어때?"
"그래, 그러자구."

우리나라 서민들이 즐겨 먹는 막걸리와 순대는 찰떡궁합이다. 한때 '탁주 반 되는 밥 한 그릇'이란 표어가 붙을 정도로 서민들 고픈 배를 채워주던 음료수가 막걸리 아니던가. 여기에 순대는 술안주로도 좋을 뿐만 아니라 막걸리만으로 부족한 공기밥 역할까지 하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음식이라 어찌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 17일(일) 저녁 6시. 출판사를 꾸리고 있는 벗과 함께 중랑구 상봉전철역 옆에 있는 동네 순대집인 '먹거리' 집을 찾았다. 메디앙 병원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술도 팔고 밥도 파는, 나그네가 일주일에 서너 번은 가는 값 싼 목로주점이자 목로식당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순대와 막걸리다.  

이 집 앞에 다가가자 '24시간 영업합니다'란 글씨가 빨강, 파랑, 노랑빛으로 반짝거리며 한 줄로 빙빙 돌아가고 있다. 50평 남짓한 이 집에 들어서자 순대와 돼지 간을 열심히 썰고 있는 주인이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나그네는 지금까지도 이 집 주인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왜? 그저 바라만 보아도 기분이 좋은데 이름까지 알아서 무엇하랴. 

"지금 드릴까요? 아니면 좀 있다 손님 오시면 그때 드릴까요?"
"지금 주세요."
"오늘도 막걸리하고 순대 드실 거죠?"
"그럼요."

머리 희끗희끗한 이 집 주인과 짤막하게 인사를 나눈 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저만치 구석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아직 술을 마시기에는 좀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제법 많이 있다. 벽면 곳곳을 삐뚤삐뚤 빼곡히 채우고 있는 여러 가지 낙서가 이 집 오랜 역사를 은근슬쩍 끄집어내고 있다. 

이 집에서 막걸리 1병과 순대를 시키면 밑반찬으로 김치, 깍두기, 송송 썬 풋고추와 마늘, 새우젓, 막장이 나온다
▲ 순대와 막걸리 이 집에서 막걸리 1병과 순대를 시키면 밑반찬으로 김치, 깍두기, 송송 썬 풋고추와 마늘, 새우젓, 막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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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에 막걸리 두 병과 순대까지 먹어도 1천 원이 남는 서민들 벗

단돈 만 원에 막걸리 두 병과 순대까지 먹어도 1천 원이 남는 이 집 값 싼 차림표를 살펴보자. 막걸리 맥주 소주가 한 병에 3천원, 순대 3천원, 족발 4천원, 순대국과 북어해장국 5천원, 술국 편육 제육볶음 머리고기 6천원, 내장 수육 고기모듬 9천원(작은 것)~1만2천원, 공기밥 1천원이다. 한 가지 더 기분이 좋은 것은 이 집 음식은 모두 국내산만 쓴다는 점이다.

이 집에서 막걸리 1병과 순대를 시키면 밑반찬으로 김치, 깍두기, 송송 썬 풋고추와 마늘, 새우젓, 막장이 나온다. 밑반찬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잔을 쭈욱 들이키고 순대 하나 젓가락으로 마악 집고 있는데 '어이 추워! 날씨가 미쳤나 봐' 하며 살가운 벗이 들어와 함박눈처럼 가득한 웃음을 띠며 맞은 편 자리에 앉는다.  

이 집 순대는 어느 밑반찬과 먹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김치에 싸서 먹으면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김치순대가 되고, 깍두기와 함께 먹으면 시각사각 씹히는 맛에 어우러지는 구수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한 깍두기순대가 된다. 막장에 찍어 먹으면 된장 순대가 되고,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새우순대가 된다는 그 말이다. 

순대 위에 덤으로 수북이 올라오는 간도 마찬가지다. 시루떡처럼 쫄깃하면서도 팥처럼 파삭파삭 부서지는 간을 풋고추, 마늘과 함께 새우젓에 찍어 먹으면 쫀득쫀득하면서도 짭쪼롬한 감칠맛이 배어나는 새우간이 되고, 간을 막장에 찍어먹으면 구수하고도 깔끔한 맛이 깊은 된장간이 된다. 막걸리와 순대, 간을 먹으며 가끔 떠먹는 뜨끈하고도 구수한 순대국물도 혀를 끝없이 희롱한다.

순대 위에 덤으로 수북이 올라오는 간도 마찬가지다
▲ 순대 순대 위에 덤으로 수북이 올라오는 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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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삶'이 거기 있었네

"아저씨! 벌써 그렇게 많이 버셨어요?"
"많이 번 것 같아도 워낙 가격을 싸게 받게 때문에 재료값에 집값, 여러 가지 세금 내고 나면 크게 남는 게 없어요."
"장사하는 사람 치고 남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아직까지 못 봤어요.^^"
"그래도 동네 사람들 보고 하는 장사이기 때문에 값을 올릴 수도 없잖습니까. 하긴, 그래도 쬐끔 남으니까 장사를 하긴 해요.^^"

단돈 9천원에 살가운 벗과 마주보고 앉아 도란도란 2MB 씹는 이야기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막걸리 두 병과 순대를 순식간에 비우고 나자 어느새 속이 든든해지면서 얼큰한 취기가 올라오면서 기분까지 아주 좋아진다. 그때 벗이 "술은 짝수로 먹는 게 아니다"라며 막걸리를 1병 더 시킨다.

이 집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 늘상 웃음기를 가득 물고 있는 대학생이 막걸리 1병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을 새로 한 그릇 더 올린다. 덤으로 주는 우윳빛 순대국 한 그릇에 따끈따끈한 정이 피어오른다. 나그네와 살가운 벗이 이 집에 자주 오는 것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늘상 말한 '사람 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삶'이 이곳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시킨 막걸리 1병을 비우고 난 뒤 계산대로 가서 계산을 하고 있는 데 이 집 주인이 5만원권과 1만원권을 한손 가득 들고 기분 좋은 얼굴로 돈을 세고 있다. 세어도 세어도 자꾸만 나오는 5만원권과 1만원권이 인심 좋은 주인과 지갑 얇은 손님들 마음을 뜨거운 구들장처럼 훈훈하게 만든다.   

"나는 이 집에만 오면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 들어."
"왜?"
"돈 만원의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집이거든."
"내가 이 동네를 벗어나지 못하고 꾹 눌러 살고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야."

덧붙이는 글 |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태그:#순대와 막걸리, #동네 먹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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